[餘滴] 檀君肖像畵 : 趙ウンチャン論說委員 - 번역 [飜譯]/韓日飜譯 [한일번역]
*京鄕新聞 : 2019. 10. 02
1920年4月11日の東亞日報に檀君影幀を懸賞公募する社告を揭載した. 新聞は「檀君はわが民族の宗祖であり歴史的に最も神聖な偉人であるので忠心で奉安する為だ」と趣旨を明かした. だが公募で当選作は出なかった. 2年が過ぎた1922年11月22日(陰曆10月3日)の開天節に東亞日報は檀君の肖像畵を出した. 大宗敎が奉安して来た「檀君天眞」だった. この影幀は檀君肖像の基準になった. 1949年制憲国会はこれを国家檀君影幀として公認した.
1978年文化公報部は、社団法人顯正会が洪石蒼畫伯に依賴して制作した檀君肖像画を「政府標準 影幀」に指定した. 2年前大倧敎総本司で制作した檀君天眞を「檀君の標準聖像」に承認して置き再び標準影幀を指定したのだ. 政府が事実上二つの檀君標準影幀を認めたわけだ. 現在、政府指定標準影幀目錄(98位)には顯正会が制作した檀君肖像のみ上がっている. それでも相変わらず「草と木葉の服裝」をした大倧敎の檀君肖像画を標準影幀と思う人々が少なく無い. 檀君影幀に対する国民的共感が成されてないとの話だ.
檀君肖像の歴史は短くない. 高麗王祖は檀君を仕える聖帝祠を置いた. <世宗実錄>11年條には平壤に檀君の位牌を奉る祠堂を立てたとの記錄が伝えている. この祠堂に檀君の影幀が奉安されいる可能性がある. 1910年發刊された<神宮建築地>には檀君の木版本肖像が載せている. 韓末の画家、心田安中植が檀君の肖像画を描いたとの話も伝えている. 国立扶餘博物館には1922年以前に描かれた檀君肖像画が所藏されている. 今年の開天節には「光緖9年(1883年)」と画記が書かれた檀君肖像画が公開された. 画期が正しいならば最古の檀君影幀だ.
神話人物である檀君の肖像画が何の意味があるかと反問する事もあろう. しかし「想像の共同体」が民族を創る如く、民族無意識の中に傳承されて来た「国祖檀君」はそれ自体が歴史である. 開天節は檀君が国を建てた日だから記念するのではない. 国難の中で民族を結集させた檀君の精神と意味を記憶しようとの事だ. 檀君肖像画は民族の共同体を記憶し傳承させる象徵である.
*경향신문 : 2019. 10. 02
[여적] 단군 초상화 : 조운찬 논설위원
1920년 4월11일자 동아일보는 단군 영정을 현상 공모하는 사고를 게재했다. 신문은 “단군은 우리 민족의 종조(宗祖)이고 역사적으로 가장 신성한 위인이어서 충심으로 봉안하기 위함”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공모에서 당선작은 나오지 않았다. 2년이 지난 1922년 11월22일(음력 10월3일) 개천절, 동아일보는 단군의 초상화를 내보냈다. 대종교가 봉안해온 ‘단군 천진(天眞)’이었다. 이 영정은 단군 초상의 기준이 됐다. 1949년 제헌 국회는 이를 국가 단군 영정으로 공인했다.
1978년 문화공보부는 사단법인 현정회가 홍숙호 화백에게 의뢰해 제작한 단군 초상화를 ‘정부 표준 영정’으로 지정했다. 2년 전 대종교 총본사에서 제작한 단군 천진을 ‘단군의 표준 성상’으로 승인해놓고 또다시 표준 영정을 지정한 것이다. 정부가 사실상 두 개의 단군 표준 영정을 인정한 셈이다. 현재 정부 지정 표준영정 목록(98위)에는 현정회가 제작한 단군 초상만 올라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풀과 나뭇잎 복장’을 한 대종교의 단군 초상화를 표준 영정으로 아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단군 영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단군 초상의 역사는 짧지 않다. 고려왕조는 단군을 모시는 성제사(聖帝祠)를 두었다. <세종실록> 11년조에는 평양에 단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세웠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들 사당에 단군 영정이 봉안됐을 가능성이 있다. 1910년 발간된 <신궁건축지>에는 단군의 목판본 초상이 실려 있다. 한말 화가 심전 안중식이 단군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얘기도 전한다. 국립부여박물관에는 1922년 이전 그려진 단군 초상화가 소장돼 있다. 올해 개천절을 앞두고는 ‘광서 9년(1883년)’ 화기(畵記)가 쓰인 단군 초상화가 공개됐다. 화기가 맞다면 가장 오래된 단군 영정이다.
신화 속 인물인 단군의 초상화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상상의 공동체’가 민족을 만들어가듯, 민족의 무의식 속에 전승되어온 ‘국조 단군’은 그 자체가 역사다. 개천절은 단군이 나라를 세운 날이어서 기념하는 게 아니다. 국난 속에서 민족을 결집시킨 단군의 정신과 의미를 기억하자는 것이다. 단군 초상화는 민족 공동체를 기억하고 전승하게 하는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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