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本文緖의 「みんないってしまう」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모두 가버리다 (上)
거리에서 지인과 딱 마주쳤다, 라는 경험이 내게는 없었던 것 같다. 동네 역에서 동네사람과 지나치거나, 직장 부근에서 거래처 사람과 얼굴을 마주친 일은 있지만, 그런 건 필연이고 우연은 아니다.
하지만 긴 인생, 한번쯤은 이런 우연도 있을 것이다. 드라마 같지 않은 평범한 삶을 보내 온 내게 있어, 그 날은 상당히 특이한 하루였다.
‘논짱 아냐?’
오후의 백화점 안에서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없다. 놀라서 뒤돌아본 내 눈에 밝은 풀색으로 물들인 외출복을 입은 여성이 비쳤다. 그 사람은 들뜬 목소리로 또한번 ‘역시 논짱!’이라고 한다.
‘혹시 데미짱?’
무의식중에 그리운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눈가장자리에 주름을 잡으며 끄덕였다.
어머! 하고 우리들은 목소리를 맞추며 손을 맞잡았다. 그 소리가 높았던지 가까이에 있던 점원이 깜짝 놀란 모습으로 뒤돌아봤다.
‘논짱은 변하지 않았어. 금방 알았지.’
그녀는 만면에 웃음을 띠우고 내 손을 꽉 잡는다.
‘에미짱이야 말로 그래. 지금 어디 살지?’
‘예날 그대로야. 논짱은?’
‘난 이사한지 얼마 안 됐어. 아, 여기서 꽤 가까워. 그래서 모자라는 물건 같은 거 사러왔어.’
‘굉장하다. 이런 도심에서?’
‘하지만 좁은 맨션이야. 모양내고 어딘가 가는 중이야?’
‘아니. 아는 사람이 이곳 전시장에서 꽃꽂이전시회를 하고 있어. 의리로 보러 온 것뿐이야.
이럴 때 아니면 애써 장만한 기모노 입지 못하니까.‘
‘예쁜 색이네.’
‘고마워. 싸구려야. 논짱은 무척 날씬하고 세련됐네. 피어스가 어울려.’
‘피어스 말인데, 요전에 구멍 뚫었어.’
‘그래? 이제 와서? 무슨 일 있었어?’
‘있었다고 하나, 없었다고 하나.’
거기까지 단숨에 이야기 했을 때 우리들은 사람의 시선을 느꼈다. 앞서의 점원이 기가 차다는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린 얼굴을 붉히며 서로 손을 맞잡은 채 재빨리 매장을 떠났다. 둘이서 나란히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자마자 우린 성대히 웃음을 터뜨렸다. 지나치는 사람이 모두 우리들을 뒤돌아보는 게 보였다.
우리는 최상층에 있는 특별 식당에 들어갔다. 오래된 백화점의 그 식당은 전에 몇 번 들어간 적이 있고, 값은 비싸지만 비교적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식당에 들어서자 이전과 조금 느낌이 달랐다. 테이블과 테이블의 간격이 좁아진 듯하다. 하지만 호텔의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우리들은 단팥죽을 주문하고 또다시 서로 반가와 했다.
‘몇 년 만이야. 우연이란 게 있구나.’
테이블 너머에서 에미짱은 고상하게 가슴을 누르면서 웃고 있다.
‘정말. 지금도 그 집이야?’
‘아니, 대지가 좀 넓었잖아. 작지만 맨션을 다시 지어서, 그 한 층에 살고 있어. 그래서 주소도 전화번호도 옛날 그대로야.’
‘굉장하네.’
‘굉장하긴. 주위에 맨션이 늘어서서 입주자가 좀처럼 없어 집세 내리고 머리 숙이고, 보통일 아냐. 대출 받은 거 아직 남아있고.’
‘그렇구나. 난 오랫동안 그쪽 방면으로는 안 가서.’
‘놀러 와. 방에서 초등학교 잘 보여. 교사는 변했지만 니노미야킨지로(二宮金次郞)가 아직 서있다고.’
‘으응? 정말?’
나와 그녀는 어렸을 적 친구로, 태어난 집이 근처였다. 에도가와(江戶川) 곁의, 물 냄새가 나는 동네였다. 중학 중도까지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우리 집이 역 두 정거쯤 떨어진 장소로 이사를 해서 전학을 했던 것이다.
그 후로도 편지를 주고받거나, 여름방학에는 우에노(上野)까지 둘이서 영화를 보러 가거나 했다. 피차에 담백한 성격으로, 친하다고 해도 끈끈한 관계는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가늘고 길게 교우가 이어졌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자 각자의 생활 비중이 무거워져서 점점 소원해졌다. 서로의 결혼식에는 출석했지만 아이가 탄생한 건 편지로 했고, 축하도 우송해버린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본 건 간염으로 급거(急遽)한 우리 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그 후 전화로는 몇 번 이야기 했으나, 지금은 연하장마저 끊어져버리고 말았다.
옛날 그대로인 유리그릇에 담겨진 우지(宇治)단팥죽을 먹으면서, 우리들은 공통의 친구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계속 그 동네에 살고 있기 때문에 동급생의 소식은 밝았다. 누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 누구는 결혼하지 않고 있다, 누구는 외국에 가버렸다 라고 그녀가 말할 때 마다, 나는 바보처럼 감탄의 목소리를 냈다.
‘남편과 게이스케(圭介)군은 건강해?’
갑자기 물어와 난 스푼을 든 손을 멈췄다.
‘응, 건강해. 게이스케는 건방져저서 제법 그럴듯하게 말을 하지. 에미짱네는? 아 그런데 부모님은? ’
‘믿을 수 없을 만큼 건강하셔. 300백년 정도 살 것 같아.’
그녀의 말투에 난 웃었다. 한동안 웃자 세트로 되어있던 다시마차(昆布茶)를 마침 가져왔다. 갈색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자아이가 소리를 내면서 난폭하게 찻잔을 놓는다. 나와 에미짱은 쓴웃음을 지으며 눈을 내려떴다.
그녀는 양손으로 찻잔을 들고, 조용히 차를 마셨다. 그리고 약간 주저하는 표정을 짓더니, 얼굴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논짱, 나루이(成井)군 기억하고 있어?’
당돌하게 그 이름을 듣고, 난 대답을 잘못 했다.
‘응?’
‘중학교에서 함께였던 아이말야.’
‘집에서 화과자집을 하던 아이? 나루이교이치군?’
‘그래그래, 잘 외우고 있네.’
차와 함께 나온 과자를 먹으면서, 난 주의 깊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갑자기 그의 이름이 나온 것일까.
나루이군과 나와 에미(繪美)짱은 중학교 일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다지 친했던 생각은 나지 않는다.
‘왜? 나루이군과 사이가 좋았어?’
좋지 않은 느낌으로 들리지 않도록 나는 밝게 질문했다.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논짱이 전학하고 나서 조금 이야기하게 되었다고 할까.’
‘2학년인가 3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
‘그렇지 않았지만.’
어째 이야기가 요령을 잡을 수 없다.
‘서로 사궈었어?‘
정통으로 난 물어봤다. 어느 쪽이든, 이제 꽤 옛날의 이야기다. 이것저것 추측해 봐도 별수 없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그래. 중학생일 때는 그저 친구였었지만. 나루이군, 남자학교에 갔잖아. 고교 3학년일 때였던가, 역에서 딱 마주쳐서, 그때부터 그냥.’
부끄러운 듯 그녀는 머리에 손을 댔다.
‘취직하고 2년 정도는 사귀었던가. 그 때 나도 순정이었다고 할까 어린애였으니까, 절대로 나루이군과 결혼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뭐?’
‘남자와 여행한 거 처음이었으니까’
난 엉겁결에 기침을 했다. 무릎의 손수건을 입에 대고 심하게 기침을 했다. 스스로도 자신의 반응에 놀라고 말았다.
‘괜, 괜찮아?’
허둥거리며 그녀는 몸을 앞으로 내민다.
‘물 마셔. 약 사올까?’
‘괜찮아, 공기를 먹어버린 것 같아.’
웃으면서 난 눈가에 흐른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기침과 함께 끌어 오른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쿡쿡 어깨를 흔들며 웃고 있는 나를, 그녀가 이상하다는 듯 드려다 본다.
‘논짱?’
‘아, 몰라. 우스워서 죽을 것 같아.’
‘왜 그래? 내가 뭔가 이상한 말 했어?’
‘저어, 에미짱은 심장 약해?’
‘왜? 몸은 늘 건강한데... 지금도 일주일에 사흘은 1킬로씩 헤엄치고 있고.’
‘뭐? 거짓말이지?’
‘수영부였던걸, 나. 그런 것 보다, 어째서 웃고 있어?’
레몬이 들어간 유리컵의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는 후우 하고 숨을 토했다.
‘나도 나루이군과 사귀고 있었거든.’
‘뭐?’
‘사귀고 있었다고. 그것도 열일곱부터 스물두살 까지’
에미짱이 미묘하게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논짱, 나 놀리고 있지?’
‘정말이야. 나도 지금 까지 나하고만 사귀고 있었다고 생각했어. 나루이군의 할아버지가 나스(那須)에 별장 가지고 있었잖아. 그곳에 여자친구네라고 부모에게 거짓말하고 따라 갔어. 에미짱도 그랬어? 별장이라는 이름뿐인 허름한 산속 오두막 같은 곳.’
그녀는 작게 입을 빠끔거렸다. 말이 나오지 않는 듯했다.
‘우리들, 양다리 걸친다는 걸 시킨 듯하네.’
‘믿을 수 없어. 굉장히 놀라워서....’
‘놀란 건 이쪽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그럼, 뭐야, 이런 거? 나하고 논짱은 같은 시기에 같은 사람에게 처녀를 바쳤다는 거?’
처녀를 바치다, 라는 말투가 옛스러워 더욱 웃겼다.
‘그런 것 같네.’
‘나루이 자식.’
아-, 하고 말끝을 끌며 그녀는 신음했다.
‘가정을 꾸리자고 했다고, 그녀석.’
‘나에게도 그랬어.’
‘하지만, 맛선 보고 결혼하게 됐다면서 도망갔거든.’
‘나에게도 그렇게 말 했어.’
‘정말 맛선 보고 결혼했을까. 거짓말이었을까.’
‘그건 나도 모르지.’
‘전화 해보자.’
딱 잘라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는 백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에미짱, 휴대전화 가지고 있어?’
난 놀라서 나도 모르게 물었다.
‘음, 편리하다고, 이거.’
‘하지만, 나루이군의 연락처 알고 있어?’
‘부끄럽지만 나루이군의 전화번호 아직 나 외우고 있어. 틀림없이 평생 잊지 않을 거야.’
다시 말해 그녀에게 있어 그만큼 특별한 연애고, 괴로운 체험이었다는 것일까.
‘화과자(和菓子)집은 그대로 있으니까, 나루이군은 없어도 누군가 가족이 살고 있을 거야.’
또박또박 이야기 하면서 전화를 거는 그녀를 난 존경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옛날부터 그랬다. 여자다운 외모에서 상상할 수 없는 행동력을 그녀는 가지고 있다.
‘아, 나루이씨 댁입니까? 전 쿄이치씨와 중학교 동창이었던 츠다(津田)라고 하는데요, 네, 그렇습니다.’
두근두근하면서 난 그녀의 장미색으로 칠해진 입술을 지켜보았다.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상대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고 있던 그녀가 시선을 이쪽으로 돌렸다. 그 얼굴이 서서히 찌그러진다.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애통합니다, 라 말하고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난 눈을 크게 떴다.
‘나루이군, 죽었어.’
한숨과 함께 그녀가 말했다.
‘어 어떻게?’
‘딸이 받았어. 재작년이래, 위암.’
‘....위암.’
난 그녀의 말을 되풀이했다.
‘불평 늘어놓으려고 했는데.’
‘죽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아.’
우리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한동안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처럼 그리운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없어지네.’
그녀는 핸드폰을 백에 넣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벌써 60세인걸.’
‘환갑이지. 난 내달이지만, 딸이 빨간 짱짱꼬 같은거 주면 어떻지.’
‘요즘 그런 거 선물하는 사람 없어. 난 빨간 캐시미어 세-타- 받았어.’
‘그 빨간 색이 맘에 들지 않지, 왠지.’
에미짱은 양 눈섭 사이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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