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오사무(太宰治)의 "자작(自作)을 말하다"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 자작을 말하다 - 다자이오사무(太宰治)
나는 오늘까지 자작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싫기 때문이다. 독자가
읽고 알 수 없었다면 그뿐인 이야기다. 창작집에 서문을 붙이는 일마저 싫은 것이다.
자작을 설명한다는 일은 이미 작자의 패배라고 생각하고 있다. 불유쾌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내가 A라는 작품을 짓는다. 독자가 읽는다. 독자는 A를 재미없다고 말 한다. 싫은 작품이라고 한다. 거기까지의 이야기다. 아니, 재미있을 텐데, 라는 항변은 성립할 수 없다. 작자는 점점 비참해질 뿐이다.
싫으면, 관둬, 다. 되도록 모두에게 알아줬으면 해서 가능한 한 정성껏 썼을 게다. 그래도 모른다면 말없이 물러날 뿐이다.
내 친구는 겨우 셀 정도밖에 없다. 나는 어떤 소수의 친구에게도 자작의 주석을 말한 일이 없다. 발표해도 묵묵히 있을 뿐이다. 그 곳은 고심을 했습니다, 등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흥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심담을 가지고 사람을 압도하면서 까지 의리의 박수갈채를 얻고자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술은 그처럼 사람에게 강요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루에 30매는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는 작가도 있다고 한다. 나는 하루 다섯장 쓰면 크게 뻐긴다. 묘사가 시원치 않아 애를 쓰는 것이다. 어휘가 빈약해서 펜이 주저하는 것이다. 지필(遅筆)은 작가의 치욕이다. 한 장 쓰는데 두세번은 사전을 찾고 있다.
틀린 한자인지 아닌지 불안한 것이다.
자작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어째서 난 이처럼 화를 내는 것인지. 나는 자신의 작품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의 작품도 별로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면, 사람들은 금세 나를 광인 취급을 할 것이다. 광인 취급은 싫다. 역시 나는 침묵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아아, 빨리 한 장에 3엔(三円) 이상의 소설만을 쓰고 싶다. 이래가지고는 작가는 쇠약해질 뿐이다. 내가 처음으로 「문예(文藝)」에 창작을 팔고부터 벌써 7년이 된다.
유행하고 싶지 않다. 또, 유행할리도 없다. 유행의 허무도 알고 있다. 1년에 한권의 창작집을 내고, 3천부 정도는 팔려다오. 나의 지금까지의 10권 가까운 창작집 가운데서, 2500부 출판이 최고다.
나의 작품은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영화화도 연극화도 될 여지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뛰어난 작품인 것이다, 라는 뜻이 아니다. 「죄와 벌」도, 「전원교향악」도, 「아베 일족(阿部一族)」도, 틀림없이 영화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여자의 결투」 영화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왠지 자작을 말하는 건 싫다. 자기혐오로 꽉차있다. 「나의 자식을 말하라」고 한다면, 시가나오야(志賀直哉)와 같은 달인이라도 약간 주저할게 틀림없다. 착한 아이는 착해서 귀엽고, 못된 아이는 더욱 서글프고 귀엽다. 그 중간의 기미를, 틀리지 않게 남에게 전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또한 무리하게 말하도록 하는 것도 가혹하지 않은가.
나는, 나의 작품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언제든, 말하고 싶은 일은 작품 속에서 말하고 있다. 그 밖에 말하고 싶은 일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작품이 거절당하면 그뿐이다. 한마디도 안한다.
나는 나의 작품을 칭찬해주는 사람 앞에서는 극도로 왜소해진다. 그 사람을 속이고 있는듯 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반대로, 나의 작품에 더러운 욕설을 던지는 사람을 예외 없이 경멸한다. 무슨 개소리야 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가와이데쇼보(河出書房)로부터 근작만을 모은 「여자의 결투」라는 창작집이 출판되었다. 여자의 결투는, 이 잡지((文章)에 반년 간 연재되어, 매우 독자를 지루하게 한 모양이다. 이번에 한데모아 한권으로 만든 걸 기회로, 감상을 쓰십시오, 그 밖의 작품도 곁들여 써주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라는 것이 편집자, 츠지모리(辻森)씨의 언급이었다. 츠지모리씨에게는 지금까지 버릇없이 굴어 거절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새삼스런 감상은 아무것도 없다. 요즘은 다음 제작에 정신이 없다. 친구 야마기시(山岸外史)군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달려라 메로스(走れメロス)」 그 뜻, 신에게 통할 리 없고, 「직소(駈込み訴え)」 그 애욕,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가메이쇼이치로( 亀井勝一郎)군으로부터도 편지를 받았다. (「달려라 메로스」 재독, 삼독, 점점 좋다. 걸작이다.)
친구는 고마운 것이다. 한권의 창작집 중에서, 작자의 의도를, 틀리지 않고 적출해준다. 야마기시군도, 가메이군도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경박한 인물이 아니다. 이 두 사람이 알아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자작을 이야기하는 것이란, 노대가가 되고 나서 하는 일이다.
自作を語る - 太宰治
私は今日まで、自作に就いて語った事が一度も無い。いやなのである。読者が、読んでわからなかったら、それまでの話だ。創作集に序文を附ける事さえ、いやである。
自作を説明するという事は、既に作者の敗北であると思っている。不愉快千万の事である。私がAと言う作品を創る。読者が読む。読者は、Aを面白くないという。いやな作品だという。それまでの話だ。いや、面白い筈だが、という抗弁は成り立つわけは無い。作者は、いよいよ惨めになるばかりである。
いやなら、よしな、である。ずいぶん皆にわかってもらいたくて出来るだけ、ていねいに書いた筈である。それでも、わからないならば、黙って引き下るばかりである。
私の友人は、ほんの数えるくらいしか無い。私は、その少数の友人にも、自作の註釈ちゅうしゃくをした事は無い。発表しても、黙っている。あそこの所には苦心をしました、など一度も言った事が無い。興覚めなのである。そんな、苦心談でもって人を圧倒して迄まで、お義理の喝采かっさいを得ようとは思わない。芸術は、そんなに、人に強いるものではないと思う。
一日に三十枚は平気で書ける作家もいるという。私は一日五枚書くと大威張りだ。描写が下手だから苦労するのである。語彙ごいが貧弱だから、ペンが渋るのである。遅筆は、作家の恥辱である。一枚書くのに、二、三度は、辞林を調べている。嘘字か、どうか不安なのである。
自作を語れ、と言われると、どうして私は、こんなに怒るのだろう。私は、自分の作品をあまり認めていないし、また、よその人の作品もそんなに認めていない。私が、いま考えている事を、そのまま率直に述べたら、人は、たちまち私を狂人あつかいにするだろう。狂人あつかいは、いやだ。やはり私は、沈黙していなければならぬ。もう少しの我慢である。
ああ早く、一枚三円以上の小説ばかりを書きたい。こんな事では、作家は、衰弱するばかりである。私が、はじめて「文藝」に創作を売ってから、もう七年になる。
流行は、したくない。また、流行するわけも無い。流行の虚無も知っている。一年一冊の創作集を出し、三千部くらいは売れてくれ。私の今までの十冊ちかい創作集のうちで、二千五百部の出版が最高である。
私の作品は、どう考えたって、映画化も劇化もされる余地が無い。だから優れた作品なのだ、というわけでは無い。「罪と罰」でも、「田園交響楽」でも、「阿部一族」でも、ちゃんと映画になっている様子だ。
「女の決闘」の映画などは、在り得ない。
どうも、自作を語るのは、いやだ。自己嫌悪で一ぱいだ。「わが子を語れ」と言われたら、志賀直哉ほどの達人でも、ちょっと躊躇ちゅうちょするにちがいない。出来のいい子は、出来のいい子で可愛いし、出来の悪い子は、いっそう又かなしく可愛い。その間の機微を、あやまたず人に言い伝えるのは、至難である。それをまた、無理に語らせようとするのも酷ではないか。
私は、私の作品と共に生きている。私は、いつでも、言いたい事は、作品の中で言っている。他に言いたい事は無い。だから、その作品が拒否せられたら、それっきりだ。一言も無い。
私は、私の作品を、ほめてくれた人の前では極度に矮小わいしょうになる。その人を、だましているような気がするのだ。反対に、私の作品に、悪罵あくばを投げる人を、例外なく軽蔑する。何を言ってやがると思う。
こんど河出書房から、近作だけを集めた「女の決闘」という創作集が出版せられた。女の決闘は、この雑誌(文章)に半箇年間、連載せられ、いたずらに読者を退屈がらせた様子である。こんど、まとめて一本にしたのを機会に、感想をお書きなさい、その他の作品にも、ふれて書いてくれたら結構に思います、というのが編輯者、辻森つじもりさんの言いつけである。辻森さんには、これまで、わがままを通してもらった。断り切れないのである。
私には、今更、感想は何も無い。このごろは、次の製作に夢中である。友人、山岸外史君から手紙をもらった。(「走れメロス」その義、神しんに通ぜんとし、「駈込み訴え」その愛欲、地に帰せんとす。)
亀井勝一郎君からも手紙をもらった。(「走れメロス」再読三読いよいよ、よし。傑作である。)
友人は、ありがたいものである。一巻の創作集の中から、作者の意図を、あやまたず摘出してくれる。山岸君も、亀井君も、お座なりを言うような軽薄な人物では無い。この二人に、わかってもらったら、もうそれでよい。
自作を語るなんてことは、老大家になってからする事だ。
'번역 [飜譯] > 일한번역 [日韓飜譯]'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치하라마사아키(立原正秋)의 수필 (2) | 2018.07.18 |
---|---|
일본 여름시 하나 더....^^ (0) | 2018.06.18 |
[隨筆] 아침은 빵과 검정깨 페이스트 : 무레요오코(群ようこ) (0) | 2018.04.23 |
일본 수필 한편 (宮田珠己미야타다마끼) (3) | 2018.04.10 |
[隨筆] 지금의 자신이 좋습니까? : 唯川惠(유이가와케이) (2) | 2018.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