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 지금의 자신이 좋습니까? : 唯川惠(유이가와케이)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여자 친구 여러명이 모이면 때때로 이런 회제로 떠들썩해지는 때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어느 쪽이 득인가.
“그야 남자로 정해져있지. 이 세상에서, 이러니저러니 해도 남자가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아. 우리 회사의 중역직 비율을 보면 일목요연하지. 여성이 출세할 때는 남자의 세배 정도 일하할 수 있고 실력이 없으면 인정받지 못하지. 내 동기남자는 나보다 일을 못하는 주제에 월급은 많다고. 정말 열 받는지.” 라는 의견은 대형전기메이커에 근무하는 교오꼬.
별로 뛰어난 경력을 지향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일에 대한 책임감은 충분하고, 그 분야에는 매우 엄격한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미찌에. 그녀도 근무하고 있지만 출세 같은 것에 전혀 흥미 없음. 기본은 걸터앉은 OL. 인생,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한 여성입니다.
“확실히 출세 등을 생각하면 남자 쪽이 득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삶이라면 절대로 여자죠. 남자란 여자보다 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던가, 일생을 걸 일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던가, 제한 받는 경우가 많지 않아. 스트레스라고, 그런 건. 그 점, 여자라면 무엇을 해도 좋다는 점이 있잖아. 일하는 게 싫어서 남자에게 부양해달라고 해도, 그다지 비난을 뒤집어쓰는 일도 없고. 난 절대로 여자 쪽이 득이라고 생각해. 미인으로 태어나면 더더욱 좋고.”
음, 그것도 일리 있네.
나로 말하자면, 어느 쪽이 득인가 보다도 부럽다고 생각하는 건 몇 개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생리. 이건 개인차는 있어도 매달매달 쿡쿡 쑤시는 배를 안고 우울한 기분으로 지내지 않으면 안 되죠. 어째서 여자만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나 생각하고 말죠. 아이를 낳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면, 남자도 같은 생각을 해도 좋을 듯한데. 이 말을 하면, 좀 더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 왜 여자만이 괴로움을 당하면서 아이를 낳지 않으면 안되느냐는 말을 입에 담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혼 했을 때, 부부의 어느 쪽이 낳을 것인가 선택할 수 있으면 좋은데”
옳거니. 그렇게 된다면 산부인과에는 남녀가 섞여 들어가겠군요. 산부인신사과라고 불리게 될까요.
그 의견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낳는다는 건 손해뿐만이 아닌듯한 기분이 듭니다. 출산이라는 즐거움 또한 실감으로 맛보게 되지 않나요. 생각에 따라서는 남자보다 득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나로서는 생각되는데요.
또한 앞날의 아이 키우기 운운에 대해서 까지 이야기가 진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건 벌써 남자 편이 득이라고 정해져 있지. 우리 집 주인은, 일이라는 대의명분을 업고, 아이 키우기를 몽땅 내게 밀어붙이고 있으니까.”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 나는 확실하게 이론을 주창합니다만. 이건 이제 ‘여자이니까 남자이니까’ 라는 문제가 아니지요. 아이 키우기 경험이 없는 내가 말하는 것도 기가 죽지만, 이거야 말로 양친이 된 두 사람의 의식으로 어떻게든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남자를 선택한 건 결국 당신이잖아요”
하긴 최종적으로 이 말을 하고 말아 상대가 싫어하게 되지만요.
이야기를 원래로 돌릴까요. 남자가 부럽다고 생각하는 또 하나에, 화장실이 있습니다.(꽤나 구체적이군). 서서 오줌 누는 건 훌륭한 경범죄로, 거리 가운데서 하다니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지만, 남자의 기능이란 편리하게 되어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훨씬 전에 캠프 갔을 때, 그곳은 캠프장이 아니고 대부분 노숙 상태였습니다만, 풀밭에서 변을 보는 게 정말 무서웠어요. 엉덩이를 이상한 것에 물리거나 하면 어쩌나 하고.
이처럼 남자와 여자가 지니고 태어난 신체의 구조 같은 건,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에, 부럽다고 느끼고 만다는 겁니다.
헌데, 만약 다시 태어난다고 하면 어떤가. 남자가 되고 싶다, 고 그렇게 강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한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정도.
그러고 보니, 오래 전 어딘가의 앙케트에 같은 것이 있었네요.
“이번에 태어난다고 하면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그 때의 대답은 확실히 이렇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1위는 여성.
그리고 남성의 1위는 새.
아-아, 남자도 여러모로 괴로운가봐요. 간단히 되고 싶다고 말 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건 그렇고, 여자친구들이 모이면 이런 화제도 곧잘 나옵니다.
있지,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모두 마음속 어딘가에 ‘그 때, 그렇게 했다면’ 하는 후회 같은 것을 안고 있을 겁니다. 나도 물론 있습니다. 그 때의 그 남자, 왜 잘 잡아두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죠.
물론 그런 것뿐만 아니고, 그 때 좀 더 공부 했었다면, 직장을 바꾸었다면, 그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면, 같은 건 뿌리 깊게 남아있습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그 때는 확실히 잘 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을 몇 번이나, 아니 몇 십번이나 상상하고, 침대 안에서 괴로워하거나 하는 겁니다.
하지만요.
하지만, 난 사실은 알고 있답니다.
만약 정말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도, 난 틀림없이 같은 길을 더듬어 오늘의 자신으로 당도할 것이라고.
그 때는 그 때 식으로 이것저것 생각하거나 괴로워하거나 하면서 선택한 것입니다. 물론 겁쟁이였던가 게을렀던가 하는 걸 포함해서입니다만, 다시 말해 그것이 나다운 선택이었던 겁니다. 내가 나인 이상 과거로 돌아가도 같은 일을 할 것으로 정해져있습니다.
후회를 하고 있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난 과거로 돌아가고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럴거라면 실패도 포함해서 지금의 자신을 인정하고 싶어요.
“만일 그 때 그렇게 하고 있었다면”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 인생 같은 거 애초부터 그림의 떡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될 수 없고, 아무런 득도 되지 않기 때문에요.
그렇다면 같은 ‘만약’이라도, ‘만약 지금부터 이렇게 한다면’을 상상해 보지 않겠습니까? 미래는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양손을 펴고 그 ‘만약’의 모든 걸 받아들여주는 동안은 넓은 공간을 갖고 있는 겁니다.
그 편이 훨씬 유리한 계책이라는 것. 뒤만 돌아보고 있으면 발밑의 돌에 걸려 넘어진다던가, 모처럼의 찬스를 놓쳐버릴는지도 모릅니다.
헌데 실은 단 하나, 과거를 무척 부럽다고 생각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거울을 보고 ‘어머, 이런 데에 주름이, 검버섯이’ 할 때. 역시 이건 싫은데. 팽팽한 젊은 피부,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어.
그런 걸 이야기하고 있었더니, 나보다 훨씬 연상의 여성이 느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름이 아름답지 않다, 라는 관념은 어느틈엔가 세상에 박혀버린 거야. 난 자신의 주름도 검버섯도 모두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이건 말이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의 훈장 같은 거니까.”
아직은 거기까지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만, 언젠가 나도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오는 여성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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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川惠의 수필집 [5年後, 幸せになる] 가운데 한 꼭지를 번역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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