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필 한편 (宮田珠己미야타다마끼)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기억을 할 수 없다 : 「ときどき意味もなくずんずん歩く」 중에서

                                                                                   
늘 여행만 하고 있기 때문인가, 사람들과 만나면 반드시 질문 받는 것이,
‘여행 중에 언어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라는 질문이다.
해외여행에 나갈 경우에는 되도록 현지 언어를 할 수 있는 편이 편리하고 재미있을 터이나, 원래 기억력이 약하고 외국어가 서툰 나는 처음부터 그 점은 단념한다. 나의 기억력 약한 점은 대단해서 예를 들어 초등학교 4학년 이전의 기억이 거의 없는 것이다. 난 열 살에 태어난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다. 사람의 이름도 전혀 외우지 못해, 샐러리맨이었던 시절에는 명함을 받아 그걸 테이블에 놓는 순간 이미 상대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얼굴도 외울 수 없었다. 얼굴을 외우려고 생각하면, ‘이 얼굴을 외우는 거다’ 마음속으로 다짐하고는 상대방을 빤히 처다 보면서 눈의 특징은 어떻고 입은 어떤 느낌이고 등등 하나하나 분석하여 확실하게 데이터로 만들 필요가 있다. 가능하면 메모지를 꺼내 닮은 얼굴을 그려놓고 싶을 정도다.
그런 이유로 무슨 일이건 가능한 한 작은 노력으로 해결하고 싶은 나로서는、 겨우 여행 가는 정도로도 머릿속에 꽉꽉 힘을 넣어주는 게 귀찮아 가이드북에 붙어있는 간단한 단어장마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떠나는 일이 많다.
물론 처음엔 글씨 발음부터 하나하나 외우던 적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 외우기도 전에 출발일이 다가와서 일본어로 말하자면 “아이우에오”를 생각 안 해도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후 생각을 고쳐,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ooo입니다’와 같은 기본 단어만은 외우려고 했는데, 그것마저도 현지에 도착하는 순간 잊어버렸다. ‘안녕하세요.’ 와 ‘처음 뵙겠습니다.’가 헷갈려 선뜻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언어는 순간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헷갈려서는 사용할 수 없다.
애당초 ‘안녕하세요.’ 같은 건 여행 시 중요한 국면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이름은 ㅇㅇ입니다’ 같은 자기소개도 사용 장면이 거의 없다. 지나쳐버리는 여행자의 이름 같은 거 아무도 알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이쪽이 여행 중에 알고자 하는 것으로는 물건 값이라던가 열차 시각과 같은 구체적 정보다. 그래서 자주 쓰는 ‘이것 얼마에요?’ 라던가, ‘언제요?’ 만 외워서 매끄럽게 사용하려 했더니 상대방이 현지어로, ㅇㅇㅇ요, 라고 술술 대답해 전혀 알아듣지를 못했다. 서툴게 현지어를 쓰려고 하면 그렇게 되어버린다. 숫자를 알지 못하는 동안에는 현지어로 ‘얼마입니까?’는 금구(禁句)인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동남아를 여행하고 있으면 곧잘 나를 현지인으로 잘못 아는데, 베트남을 여행하고 있을 때는 캄보디아인으로 착각하여 캄보라는 별명이 붙여졌었다. 미얀마에서도 곧잘 헷갈렸기에 ‘체노 바마자카 마뵤타부’ 라는 버마어를 외우기로 했다. ‘체노’는 나는 이고 ‘바마자카’는 ‘버마어’고, ‘마뵤타’는 말할 수 있다 이고 ‘부’는 부정형이었다고 생각된다. 즉, ‘나는 버마어를 할 줄 모릅니다.’ 라는 뜻이다. ’나는 버마어를 할 수 없습니다.‘ ’아, 할 수 없구나.‘ 로 모든 게 전달될 게 아닌가.
그런데 길어서 좀처럼 떠오르질 않는 것이다.  어떻게든 금방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연습하고, 지나치도록 연습해서 잘하게 되자, 이번에는
‘난 버마어를 할 줄 모릅니다.’
‘뭐야 할 줄 알잖아, 역시 미얀마인이군.’ 하고 더욱 잘못 아는 게 큰일이었다.
결국 그렇게 시행착오를 하는 가운데 점점 현지어를 익히는 동안, 뭐야, 언어 같은 거 전혀 필요 없잖아, 하는 발견이었다. 현지에서 살려고 한다거나 뭔가를 연구하자는 게 아니다. 그저 여행 중의 이야기 아닌가. 어느 나라의 인간이든 결국은 같은 인간이므로 일본어든 뭐든 계속 말하고 있으면 뭔지 모르게 대충은 전달되지 않겠는가.
처음으로 외국에 나갔을 때, 화장실에 가고 싶을 경우 영어로 레스트룸이라고 하는 건가 생각하고, ‘레스트룸은 어딥니까?’ 라고 물어도 전혀 전달되지 않고, 쌀 것 같아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보고 ‘토이레?’ 라고 저쪽에서 묻던 일이 있었다.
다시 말해 언어가 아니라 태도와 상황으로 전달된 것이다. 대체로 레스토랑에서 아직 식사가 시작되지 않았는데 일어서서 점원에게 뭔가를 묻는 손님은, 국제적으로 73% 정도의 확률로 화장실이 정해져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어려운 이야기는 몰라도 여행 중의 대체적인 문제는 언어 없이도 어떻게든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요르단에서 헐어빠진 승합택시에 탔는데, 타자마자 금방 남자운전수가 뭔가 내게 주의를 하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현지어니 전혀 알 수 없는데, 이런 경우, 상황적으로, 상대방 어조로, 81% 정도의 확률로, 문이 반쯤 열렸다고 말하는 걸 금방 이해했다. 그래서 다시 문을 닫자, 더욱 뭔가 말하기에, 여전히 문이 덜 닫혔나 싶어 다시 문을 꽉 닫자 운전수가 더 화를 벌컥 내면서 주의를 한다. 뭔가가 끼어있다고 말하는 건가 생각하고, 잘 봐, 아무것도 안 끼어있어, 하는 얼굴로 호소하면서 문을 확 열었다 닫자, 다른 손님이 ‘문을 조용히 닫으라고 하는거요.’ 라고 통역해주는 것이었다. 이처럼 현지어를 전혀 알지 못해도 문에 대해 운전수가 뭔가를 주의했다는 점에서 난 틀리지 않은 것이다. 운전수는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인간은 언어 없이도 뭔가를 서로 전달할 수 있다는 건 확실해서, 최초의
‘여행 중, 언어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가면, 아무렇지도 않다, 가 대답이다.
다만 전혀 현지어로 아무 말 하지 않는 것도 상대에게 실례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최소한 단어 하나쯤은 외워가지고 가자, 라고 최근에는 생각하고 있다.  뭔가 하나를 외우는 것만으로, 폭넓게 대응할 수 있는 편리한 단어가 있으면 좋겠다.
현 단계에서 가장 사용하기 좋다고 생각하는 건 ‘고맙습니다.’ 다. 그저 한마디 ‘고맙습니다.’만 현지어로 외워둔다. 세세한 건 괜찮다. 감사한 마음만은 아무튼 전달된다.
가령 사과를 해야 할 때도, 예를 들어 버스 안에서 누군가의 발을 밟았을 때 ‘고맙습니다’ 한다. 전혀 사과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미안합니다]를 알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고, 알고 있으면 사용하지만 알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므로, 그럴 때는 ‘고맙습니다.’로 간다.
발을 밟혔다고 생각되면 외국인에게 미안한 듯한 얼굴로 ‘고맙습니다.’ 라고 한다. 기가 막혀 할 것이다. 기가 막히기는 해도, 얼굴 표정과 잘못 사용한 ‘고맙습니다’ 라는 상냥한 어감에서  죄송하다는 마음은 전달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잘못되어 있으나, 적어도 이 자는 사과하려고 한다, 그 의지는 좋다, 현지어에 능통한 현지인은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할 것으로 믿었으면 한다.
참으로 한심하다고 말하면 그럴는지도 모르나, 그렇게 그럭저럭 해왔으니 여행은 참 별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