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있는 건 없는 것과 같다 – 무레요오꼬(群よう子)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내가 살고 있는 맨션 주인이 케이블 텔레비전을 도입해주었다. 지금은 학생이 사는 원룸맨션에도 케이블 텔레비전 등의 시설이 완비되어있는 듯한데, 지은 지 18년이 된 맨션 방에 디지털의 물결이 도래한 것이다.

요즘 지상파에서는 보고 싶은 프로가 없어 텔레비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먼저 텔레비전이 망가졌을 때부터 작은 액정으로 바꿨다. 사실은 없어도 괜찮겠지 생각했었지만, 역시 그렇게도 할 수 없었기에 최소한의 감상으로 견딜 수 있는 화면으로 했던 것이다. 사람들 소문으로는, 지상파는 요 몇년 안에 없어지고 모두 디지털화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 텔레비전은 디지털 대응이 아니기 때문에,

볼 수 없어지면 텔레비전 보는 건 그만두자. 비디오나 DVD를 볼 수 있으면 되니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차의 도입이었다. 시설 담당 영업사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니 계약에 따라 디지털이냐 아나로그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방송되고 있는 디지털 방송도 보고 싶은 기분이 들어, 디지털 방송을 계약했다. 임대이니 언제 이사를 할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동안의 이야기꺼리라도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옛날 일본 영화가 보고 싶었기에,

옵션으로 채널 하나를 더 붙여 우리 집에는 65개의 채널 프로가 보이게 된 것이다.

최초에는 신기해서 틈만 있으면 맨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 그리운 퀴즈프로라던가, 드라마, 바라이어티 프로가 차례로 나타난다. 또 마아사 스튜어트의 프로를 보고는, 집안일을 빈틈없이 커버하는 일솜씨라고나 할까, 끈질김에 어떤 의미로는 감탄을 했다. 디지털 프로의 깨끗한 화면에도 놀랐다. 아날로그 방송을 보고 있을 때는 텔레비전을 사서 바꾸니까 잘 보이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그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쪼끄만 화면의 액정 텔레비전에는 차례차례 그리운 프로, 영화, 정보프로, 다큐멘터리, 알지 못했던 외국 드라마, 영화관에서도 비디오로도 보지 못했던 서양영화, 방화가 리모컨 단추 하나로 나타난다.

이 배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곳에 출연하고 있었구나.’

하는 새로운 발견도 여러 가지 있다. 오랜만에 쪼끄만 텔레비전은 풀가동하고, 나는 처음으로 이성의 나체를 본 젊은이처럼 흥분하고 있었으니, 더 보고 싶다, 더 보고 싶다 생각하고만 있어, 마지막에는,

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니 24시간으론 모자라네하고 괴로워하게 되었다. 당연히 눈의 피로도 심해져서 안약을 넣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고 싶은 프로가 많이 있어 이번에는 녹화를 하고 싶어졌다. 케이블 텔레비전에 대해서 적극적이 되었던 건, 옛날 방화를 DVD에 녹화하여 몇 번씩 다시 보고 싶었던 적도 있다. 공사하는 아저씨에게 배운 대로 DVD를 세트하긴 했는데, 비디오테이프는 몇 번이든 녹화 가능하나, DVD의 경우는 저작권 보호 때문인지 겨우 한번밖에는 허가를 하지 않는다. 프로그램은 한번뿐이 아니라 몇 번 되풀이해서 방송되고 있는데,

이건 실패해서는 안되하면서 바보짓 하지 않도록 시험으로 녹화를 해보았다. 낮 동안은 보고 싶은 프로가 많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잠든 동안에 녹화되어있는지 어떤지 확인해보면 된다. 프로그램을 확인한 채로, 아무튼,

케이블텔레비전의 녹화는 L2로 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가르쳐준 것만을 지켜, 녹화시간을 15분만 세트하고 잤다.

다음날 아침, DVD 기기의 표시를 확인하자 무사히 녹화되어있는 것 같았다.

좋아, 좋아

자 어떻게 되어있나, 하고 재생해보니, 쪼끄만 액정화면에 나타난 건, 옛날의 [닛카츠(日活) 로망 푸르노] 였다.

뭐야, 이건

심야 시간대에는 이런 영화도 방영되고 있다는 걸 이 때 처음 알았다. 아무튼 녹화 할 수 있는 건 알았기 때문에, 전에 비디오테이프에 프로를 마구 녹화했듯, 영상이 깨끗한 DVD 컬렉션이 늘어날는지도 하는 즐거움이 생겼다.

그런데 어쩐지 우리 집 DVD기기와 케이블텔레비전은 궁합이 안 맞는 듯, 녹화되는 것과 되지 않는 프로가 있다. 서글프게도, 무슨 일이 있어도 녹화하고 싶은 프로가 녹화되지 않는 것이다. 비디오 덱은 있지만 재생전용이고, 그 때문에 기기를 다시 사 바꿀 수도 없어보고 싶은 프로가 산처럼 있었던 나는,

녹화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하고 머리를 감쌌다. 그로부터 몇 번이나 DVD 녹화에 도전했지만, 케이블텔레비전의 프로 대부분이 우리 집 기기로는 녹화되지 않음을 알았다.

설마 로망포르노만이 녹화될 리 없지 않은가하고 생각했으나, 별로 그것을 시도할 마음도 없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아무 흥미도 없어,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계속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녹화가 되지 않으면 보고 싶은 프로는 리얼타임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일을 해야 하고, 그 밖에도 볼일은 있다. 그런 나날을 되풀이 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케이블텔레비전 같은 거 아무래도 좋게 되고 말았다. 최초에 나체를 보고 크게 흥분한 젊은이도 점점 보는데 익숙해지면 당초의 텐션이 뚝 떨어져버리는 것과 같은 듯 했다.

내 감각으로는 진정 귀신이 떨어졌다같은 느낌이었다.

여전히 우리 집 텔레비전은 스위치를 넣고, 리모콘을 조작하면 65채널에서 맘대로 선택할 수 있는데, 선택지가 많아 좋아한 건 처음뿐이고, 이만큼 수가 많으면 하나를 고르기가 힘들다. 솔직히 말해 채널이 하나도 없는 것과 다름없다.

저 프로를 봐야지하고 외우고 있어도, 다른 볼일 때문에 잊어버리는 일이 있다. 최초에는 무척이나 아까웠으나 최근은,

정말 보고 싶은 프로라면 아무리 기억력이 둔해진 나라도 기억해낼 거야하면서 그 프로가 내게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 이후, 이전과 마찬가지로 지상파 프로를 가끔씩 디지털 화상으로 볼 뿐이 되었다.

하지만 수확도 있었다. 프랑스의 여자경찰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가끔 본 나는, 그 프로에 흠뻑 빠져버렸다. 케이블텔레비전을 시설하지 않았으면 이 드라마를 전혀 모른 채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드라마나 영화에 빠진 적이 없고, 일본의 트렌디 드라마도 [트윈 피크스] [ER 긴급구명실] [24-Grenty four] 등도 화게가 되었기에 타이틀 정도는 알고 있지만 내용은 전혀 모른다. 그런 내가 이 드라마에 빠져버렸다. 그런데 방송이 언제나 두 시간이라는 대장정으로. 매회 볼 수가 없게 되었고, 게다가 최종회도 가까워진 것 같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찾고 있던 차에, DVD박스가 판매되고 있어 조속히 주문했다. 일이 한가해졌을 때 천천히 보자고 지금부터 낙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나는 깨달았다. DVD박스 전 시리즈의 정가를 생각해보니, 케이블텔레비전과 궁합이 맞는 새로운 DVD 기기를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 이 드라마를 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내게는 많은 채널이 필요 없다. 흥분이 오래가지 않는 성질로서는

많이 있는 건 없는 것과 같다하고 깊이 인식한 것이었다.

                            - 무레요오꼬(ようこ)지갑의 중얼거림(財布のつぶやき)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