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풍경:黄金風景] 다자이오사무(太宰治)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황금 풍경] 다자이오사무(太宰治)
바닷가에 초록빛 떡갈나무, 그 떡갈나무에 가느다란 황금 줄이 묶인.. -푸슈킨-
어렸을 적 나는 그다지 질이 좋은 편이 못되었다. 하녀를 괴롭혔다. 난 느려터진 걸 싫어해서, 그래서, 느려터진 하녀를 특히 괴롭혔다. 오케이는 느려터진 하녀였다. 사과 껍질을 깎아 달라고 하면, 깎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두 번이나 세 번이나 손을 놓고 있어, 야! 하고 그 때마다 무섭게 소리 지르지 않으면, 한손에 사과, 또 한손에 나이프를 든 채, 언제까지나 멍청이 있는 것이었다. 모자라는 건 아닌데, 라고 생각은 했다. 부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멀건이 서있는 모습을 나는 자주 발견했는데, 어린 마음에도, 꼴 보기 싫고, 묘하게 신경질이 나서, 야, 오케이, 해는 짧다고, 라고 어른스러운,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심한 말을 던지고, 그래도 모자라서 한번은 오케이를 불러놓고, 내 그림책 속 관병식에서 수백명이 북적거리는 병정들, 말을 타고 있는 자도 있고, 기를 들고 있는 자도 있고, 총을 메고 있는 자도 있는, 그 하나하나의 병정 모습을 가위로 잘라내도록 했는데, 솜씨가 서툰 오케이는 아침부터 점심도 먹지 않은 채 해가 질 무렵까지 걸려 겨우 30명 정도, 그것도 대장의 수염을 한쪽 잘라버리기도 했고, 총 든 병정의 손을 갈퀴처럼 무섭게 크게 잘라내기도 해서 일일이 내게 혼이 나던, 여름날의 일이었다. 오케이는 땀순이라, 잘라낸 병정들은 모두 오케이 손의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어, 난 마침내 신경질이 뻗쳐 오케이를 걷어찼다. 틀림없이 어깨를 찼던 것 같은데, 오케이는 볼을 감싸고 팍 엎어져 울면서 말했다.
“부모에게 조차 얼굴을 밟힌 적 없어요. 평생 잊지 않고 있을거에요.” 낑낑대는 소리로 뜨문뜨문 그렇게 말을 해, 난 정말 기분이 나빴다. 그 밖에도, 나는 거의 그것이 천명이기나 한 것처럼 오케이를 구박했다. 지금도 다소 그렇기는 한데, 난 무지하고 우둔한 자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재작년, 난 집에서 쫓겨나, 하룻밤 사이에 궁핍해져서 항간을 떠돌면서, 여기저기 애원해가며 그날그날 목숨을 이어갔고, 조금씩 문필로 자활할 수 있는 방법이 몸에 붙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자마자 병을 얻었다. 사람들의 인정으로 한 여름, 치바켕 후나바시쵸(千葉県船橋町) 진흙바다 가까이의 작은 집을 빌려, 자취로 보양保養)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밤마다 잠옷을 짜낼 만큼의 땀과 씨름하면서, 그런데도 일은 안하면 안 되기에, 매일 차가운 한 홉의 우유만이, 단지 그것만이 기묘하게도 삶의 기쁨이었을 뿐, 마당 한구석에 핀 협죽도가 불이 활활 타는 것으로 밖에 느끼지 못할 만큼 나의 머리 까지 많이 아프고 피곤해져 있었다.
그때쯤의 일인데, 호적 조사를 나온 40 가까운 마르고 작으마한 순경이 현관에서, 장부의 내 이름과, 그리고 덥수룩하게 멋대로 자란 수염을 한 내 얼굴을 찬찬히 비교해 보더니,
“아, 당신은 ....의 도련님 아니십니까?” 그렇게 말하는 순경의 말투에 강한 고향 사투리끼가 있기에,
“그렇소” 나는 무뚝뚝하게 대답을 했다. “당신은?”
순경은 마른 얼굴에 역겨울 만큼의 웃음을 띠고는,
“아아, 역시 그러시군요. 잊으셨는지 모르겠는데, 이래저래 20년쯤 전에 나는 K에서 마차집을 하고 있었습니다요” K란 내가 태어난 마을 이름이다.
“보시다 시피” 난, 미소도 띠지 않고 대응했다. “나도 이젠 몰락했소”
“별말씀을” 순경은 계속 즐거운 듯 웃으면서,
“소설을 쓰신다니, 그건 굉장한 출세이십니다” 난 쓴웃음 지었다.
“그런데 말이죠” 하고 순경은 약간 목소리를 낮춰,
“오케이가 늘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요”
“오케이?” 금방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오케이 말입니다. 잊으셨겠네요. 댁의 하녀였던――”
생각 났다. 아아, 하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난 현관 턱에 쭈그리고 앉은 채, 머리를 늘어뜨리고, 20년 전, 느려터진 한 하녀에게 하던 나의 악행이 하나하나 뚜렷하게 떠올라 거의 자리에서 버틸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행복한가요?” 문득 얼굴을 들고 그런 생뚱맞은 질문을 던진 나의 얼굴은 확실히 죄인, 피고, 비굴한 웃음까지 띠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네, 뭐, 그럭저럭” 편안하게, 그렇게 밝게 대답하고는, 순경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은 뒤.
“괜찮겠지요? 다음에 그 사람을 대리고 한번 인사를 하러 오겠습니다.”
난 뛰어오를 만큼 깜짝 놀랐다. 아뇨, 이제, 그럴 건. 하고 열심히 거절하면서 난 알 수 없는 굴욕감에 몸부림쳤다. 하지만 순경은 쾌활했다.
“아이가요, 선생님, 이 역에서 일하게 되었는데요, 그게 장남입니다. 그리고 사내, 계집애, 계집애, 그리고 막내가 여덟살로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답니다. 이제 마음 놓았지요. 오케이도 애썼습니다. 뭐라고 할까, 마, 댁과 같은 큰댁에서 행실을 배운 사람은 역시 어딘가 달라서요,” 약간 얼굴을 붉히며 웃고는,
“덕택입니다. 오케이도 선생님의 이야기 늘 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휴일에 꼭 함께 인사하러 오겠습니다.” 갑자기 진지한 얼굴이 되어서는,
“그럼, 오늘은 실례하겠습니다. 몸조심 하십시오”
그로부터 사흘 후, 내가 일에 대한 것 보다 돈 걱정으로 집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대나무 지팡이를 들고 바다에 나가려고 현관문을 드르륵 열었더니, 밖에 세 사람, 유카다를 입은 부모와 빨간 양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그림처럼 아름답게 늘어서있었다. 오케이의 가족인 것이다. 난 스스로도 의외라고 생각할 정도로 노여움 띤 굉장히 큰 소리를 질렀다.
“왔소? 난 지금부터 볼일이 있어 나가봐야 되요. 미안하나 다른 날 와 주시오”
오케이는, 품위 있는 중년 부인이 되어있었다. 여덟살 아이는 하녀일 때의 오케이와 꼭 닮은 얼굴을 하고서, 멍청이 같은 탁한 눈으로 멀거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슬퍼져서, 오케이가 아직 한마디도 말을 꺼내지 않은 틈에 도망치듯 바닷가로 내달았다. 발을 구르듯 험힌 발걸음으로, 아무튼 해안을 따라 동네 쪽으로 똑바로 걸었다. 난 동네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저 의미도 없이 극장의 그림 간판을 올려다보거나, 양복점 장식 창을 들여다보거나, 쯧쯧 혀를 차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젔다, 젔다, 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심하게 몸을 추스르고는 다시 걷고, 그렇게 30분 정도 하고 있었을까, 난 다시 내 집으로 되돌아갔다. 바다 기슭으로 나서자 나는 멈춰 섰다. 보라, 전방에 평화의 그림이 있다. 오케이 가족 3명, 한가롭게 바다에 돌 던지기를 하면서 웃고 즐기고 있는 것이다. 목소리가 이곳까지 들려온다.
“굉장히” 순경은, 힘껏 돌을 던지고는,
“머리가 좋은 분 같은데. 저 분은 곧 훌륭하게 될거야”
“그렇고말고요. 그렇고말고요” 오케이의 자랑스러운 듯한 높은 목소리였다.
“저 분은 어렸을 적부터 혼자 달랐어요 아랫사람들을 무척이나 친절하게 보살펴줬지요”
난 선 채로 울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흥분이, 눈물로, 마치 기분 좋은 듯 녹아버리는 것이다. 졌다. 이건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그들의 승리는 아직 내일의 내 출발에도 빛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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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이 작가의 대표작 「사양(斜陽)」을 읽고, 얼마나 감동했던지...
명동 일본책방을 뒤져 「쓰가루(津經)」, 「인간실격(人間失格)」, 「만년(晩年)」등을
구입, 밤을 패고 읽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인터넷에, 사망한지 50년이 넘은 작가의 글을 모아 논 곳이 기에, 좋아하는 이 작가의
단편을 몇 개 퍼와 번역해보았습니다.
[黄金風景] 太宰治
海の岸辺に緑なす樫(かし)の木、その樫の木に黄金の細き鎖のむすばれて ―プウシキン―
私は子供のときには、余り質(たち)のいい方ではなかった。女中をいじめた。私は、のろくさいことは嫌(きら)いで、それゆえ、のろくさい女中を殊(こと)にもいじめた。お慶は、のろくさい女中である。林檎(りんご)の皮をむかせても、むきながら何を考えているのか、二度も三度も手を休めて、おい、とその度毎にきびしく声を掛けてやらないと、片手に林檎、片手にナイフを持ったまま、いつまでも、ぼんやりしているのだ。足りないのではないか、と思われた。台所で、何もせずに、ただのっそりつっ立っている姿を、私はよく見かけたものであるが、子供心にも、うすみっともなく、妙に疳(かん)にさわって、おい、お慶、日は短いのだぞ、などと大人びた、いま思っても脊筋(せすじ)の寒くなるような非道の言葉を投げつけて、それで足りずに一度はお慶をよびつけ、私の絵本の観兵式の何百人となくうようよしている兵隊、馬に乗っている者もあり、旗持っている者もあり、銃担(にな)っている者もあり、そのひとりひとりの兵隊の形を鋏(はさみ)でもって切り抜かせ、不器用なお慶は、朝から昼飯も食わず日暮頃までかかって、やっと三十人くらい、それも大将の鬚(ひげ)を片方切り落したり、銃持つ兵隊の手を、熊(くま)の手みたいに恐ろしく大きく切り抜いたり、そうしていちいち私に怒鳴られ、夏のころであった、お慶は汗かきなので、切り抜かれた兵隊たちはみんな、お慶の手の汗で、びしょびしょ濡(ぬ)れて、私は遂(つい)に癇癪(かんしゃく)をおこし、お慶を蹴(け)った。たしかに肩を蹴った筈(はず)なのに、お慶は右の頬(ほお)をおさえ、がばと泣き伏し、泣き泣きいった。「親にさえ顔を踏まれたことはない。一生おぼえております」うめくような口調で、とぎれ、とぎれそういったので、私は、流石(さすが)にいやな気がした。そのほかにも、私はほとんどそれが天命でもあるかのように、お慶をいびった。いまでも、多少はそうであるが、私には無智な魯鈍(ろどん)の者は、とても堪忍(かんにん)できぬのだ。 一昨年、私は家を追われ、一夜のうちに窮迫し、巷(ちまた)をさまよい、諸所に泣きつき、その日その日のいのち繋(つな)ぎ、やや文筆でもって、自活できるあてがつきはじめたと思ったとたん、病を得た。ひとびとの情で一夏、千葉県船橋町、泥(どろ)の海のすぐ近くに小さい家を借り、自炊の保養をすることができ、毎夜毎夜、寝巻をしぼる程の寝汗とたたかい、それでも仕事はしなければならず、毎朝々々のつめたい一合の牛乳だけが、ただそれだけが、奇妙に生きているよろこびとして感じられ、庭の隅(すみ)の夾竹桃(きょうちくとう)の花が咲いたのを、めらめら火が燃えているようにしか感じられなかったほど、私の頭もほとほと痛み疲れていた。 そのころのこと、戸籍調べの四十に近い、痩(や)せて小柄のお巡(まわ)りが玄関で、帳簿の私の名前と、それから無精髯(ぶしょうひげ)のばし放題の私の顔とを、つくづく見比べ、おや、あなたは……のお坊ちゃんじゃございませんか? そう言うお巡りのことばには、強い故郷の訛(なまり)があったので、「そうです」私はふてぶてしく答えた。「あなたは?」 お巡りは痩せた顔にくるしいばかりにいっぱいの笑をたたえて、 「やあ。やはりそうでしたか。お忘れかもしれないけれど、かれこれ二十年ちかくまえ、私はKで馬車やをしていました」 Kとは、私の生れた村の名前である。 「ごらんの通り」私は、にこりともせずに応じた。「私も、いまは落ちぶれました」 「とんでもない」お巡りは、なおも楽しげに笑いながら、「小説をお書きなさるんだったら、それはなかなか出世です」 私は苦笑した。 「ところで」とお巡りは少し声をひくめ、「お慶がいつもあなたのお噂(うわさ)をしています」 「おけい?」すぐには呑(の)みこめなかった。 「お慶ですよ。お忘れでしょう。お宅の女中をしていた――」 思い出した。ああ、と思わずうめいて、私は玄関の式台にしゃがんだまま、頭をたれて、その二十年まえ、のろくさかったひとりの女中に対しての私の悪行が、ひとつひとつ、はっきり思い出され、ほとんど座に耐えかねた。 「幸福ですか?」ふと顔をあげてそんな突拍子ない質問を発する私のかおは、たしかに罪人、被告、卑屈な笑いをさえ浮べていたと記憶する。 「ええ、もう、どうやら」くったくなく、そうほがらかに答えて、お巡りはハンケチで額の汗をぬぐって、「かまいませんでしょうか。こんどあれを連れて、いちどゆっくりお礼にあがりましょう」 私は飛び上るほど、ぎょっとした。いいえ、もう、それには、とはげしく拒否して、私は言い知れぬ屈辱感に身悶(みもだ)えしていた。 けれども、お巡りは、朗かだった。 「子供がねえ、あなた、ここの駅につとめるようになりましてな、それが長男です。それから男、女、女、その末のが八つでことし小学校にあがりました。もう一安心。お慶も苦労いたしました。なんというか、まあ、お宅のような大家にあがって行儀見習いした者は、やはりどこか、ちがいましてな」すこし顔を赤くして笑い、「おかげさまでした。お慶も、あなたのお噂、しじゅうして居(お)ります。こんどの公休には、きっと一緒にお礼にあがります」急に真面目(まじめ)な顔になって、「それじゃ、きょうは失礼いたします。お大事に」 それから、三日たって、私が仕事のことよりも、金銭のことで思い悩み、うちにじっとして居れなくて、竹のステッキ持って、海へ出ようと、玄関の戸をがらがらあけたら、外に三人、浴衣(ゆかた)着た父と母と、赤い洋服着た女の子と、絵のように美しく並んで立っていた。お慶の家族である。 私は自分でも意外なほどの、おそろしく大きな怒声を発した。 「来たのですか。きょう、私これから用事があって出か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お気の毒ですが、またの日においで下さい」 お慶は、品のいい中年の奥さんになっていた。八つの子は、女中のころのお慶によく似た顔をしていて、うすのろらしい濁った眼でぼんやり私を見上げていた。私はかなしく、お慶がまだひとことも言い出さぬうち、逃げるように、海浜へ飛び出した。竹のステッキで、海浜の雑草を薙(な)ぎ払い薙ぎ払い、いちどもあとを振りかえらず、一歩、一歩、地団駄踏むような荒(すさ)んだ歩きかたで、とにかく海岸伝いに町の方へ、まっすぐに歩いた。私は町で何をしていたろう。ただ意味もなく、活動小屋の絵看板見あげたり、呉服屋の飾窓を見つめたり、ちえっちえっと舌打ちしては、心のどこかの隅で、負けた、負けた、と囁(ささや)く声が聞えて、これはならぬと烈(はげ)しくからだをゆすぶっては、また歩き、三十分ほどそうしていたろうか、私はふたたび私の家へとって返した。 うみぎしに出て、私は立止った。見よ、前方に平和の図がある。お慶親子三人、のどかに海に石の投げっこしては笑い興じている。声がここまで聞えて来る。 「なかなか」お巡りは、うんと力こめて石をほうって、「頭のよさそうな方じゃないか。あのひとは、いまに偉くなるぞ」 「そうですとも、そうですとも」お慶の誇らしげな高い声である。「あのかたは、お小さいときからひとり変って居られた。目下のものにもそれは親切に、目をかけて下すった」 私は立ったまま泣いていた。けわしい興奮が、涙で、まるで気持よく溶け去ってしまうのだ。 負けた。これは、いいことだ。そうなければ、いけないのだ。かれらの勝利は、また私のあすの出発にも、光を与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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