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슈사쿠(遠藤周作)의 "용기 있는 말" 중에서 (3)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 방심은 대적 (油断大敵)
얼마전에 볼일이 있어 탄 여객기가 비행장에 기체를 내려치듯 착륙하기에,
‘서툰 파이럿이군’ 하고 중얼거렸더니 옆자리에 있던 사람이 ‘훌륭한 파이럿입니다’ 라는
것이다. 이 사람 말에 의하면, 내려치듯 착륙하는 방법에서 활주거리가 짧아야 안전하며,
오히려 매끄럽게 착륙하는 쪽이 훨씬 위험하다는 것이다.
올 해 나처럼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고마웠던 점은, 일본 비행기에
하이제크는 별도로 하고, 대형사고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대형사고가 없었던 만큼
‘앞으로 곧’ 하는 불안감이 비행기에 탈 때마다 일어나는 건 왜일까.
실은, 나의 정보망에 따르면 올해도 대형사고 직전이랄 수 있는 고장이 수차례 비행중의
여객기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일은 승무원만이 알고 있고, 승객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신문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회사명이나 당일의 기종을 말하는 건 피하겠는데,
엔진의 절반이 비행 중 정지된 상태로 하네다에 착륙하거나, 착지와 함께 화제폭발을
일으킬듯한 기체 고장을 도중에 알아차리고, 조종사만이 그 사실을 안 채, 필사적으로
착륙한 일도 있었던 모양이다. 요행이 사고는 모면했으나, 문자 그대로 요행이었을 뿐,
자칫 잘못되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한 사태에 이르렀을 것이다.
우리처럼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들 사이서는 “점보기가 가장 안전하다”
“저 노선은 오래된 기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등의 소문이 나돈다.
또는, “어떤 사고는 조종사가 전날 밤 마작으로 밤을 샜기 때문에 신경이 둔해져서
일으킨 것이다” 같은 이야기도 귀에 들어온다. 그러한 소문이 사실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어도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시 신경이 쓰인다.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텔레비전에서 평론가라 칭하는 사람이 나와, 이러한 사고가
일어나는 건 예상되었던 일입니다, 라고 말하는데, 그럴 때 마다 예상했던 것이라면
왜 미리 경고하여 그걸 막을 수 있는 노력을 회사도 하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었던 사고와 막을 수 있는 사고를 별도로 생각하고,
후자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도의 노력을 현재 하고 있는가 항공회사에 묻고 싶다.
올해는 사고가 나지 않았는데, 그건 앞서 말한바와 같이 요행에 따른 것인 이상
만족하고 있으면 곤란하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임시 뉴스로 바뀌면서 무서운 비행기 사고 보도와
함께 하네다에 조난자 가족들이 몰려오는 장면을 내년에는 보고 싶지 않다.
비행기 사고는 대부분 탑승 전원이 사망하는 이상, 막을 수 있는 한 막아주기 바란다고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는 한사람으로서 부탁하는 바이다.
<편집자 주> 와아, 그런 일이 금년에 있었습니까? 몰랐습니다.
* 원숭이의 엉덩이 웃음 (猿の尻笑い)
원숭이가 자기 엉덩이도 빨간 건 알지 못하고 다른 원숭이 엉덩이를 보고 웃는다.
이른바 눈꼽이 코딱지를 비웃는 것과 같은 의미다.
속된 말이지만 ‘자신의 똥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있다. 종전 직후, 여기저기서 전쟁
범죄인이나 전쟁협력자의 규탄이 한창이었을 때, 학생이었던 나는 왠지 이 말을 항상
떠올렸다. 진정으로 그들을 심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일본 중 한줌정도 밖에 없는데,
마치 자신들이 그 한줌의 사람인양, 옥중에서 신음하거나 압박에 견디거나 하지도
않았으면서 정의의 얼굴로 심판하는 쪽이 되어있는 게 뭔가 잘못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그 후 나이를 더해감에 따라, 사람을 심판하는 것만큼 용이한 것은 없음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또한 남을 심판함으로서 쉽사리 자신은 옳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도 느꼈다.
곧, 자신을 올바른 자로 보이게 하고 싶으면 타인을 심판하는 것 이상 없다는 것이다.
종전 직후의 일본인들 마음속에는, 특정의 전쟁협력자를 규탄하는 일로 자신의 켕기는
점이나 어정쩡한 마음을 속이고자 하는 기분이 없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을 정당한 측에 끼워 넣으려던 때도 있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전쟁
협력자를 심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여자로 누가 만들었나] 라는 유행가를 부르며
자신의 켕기는 마음을 진정시켰던 것이다.
그 옛날, 유태인이 한해에 한번씩 속죄양을 죽임으로서 종교적 양심을 충족시켰듯,
우리들에게도 거의 같은 심정으로 이 같이 특정인을 규탄하는 것으로서 마음의 밸런스를
취하고자 했던 경향이 있다. 우리들은 정부의 부패를 한편으로는 역겨워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부패에 길들어져 가고 있는 께름칙함을 오랫동안 지닌 채, 속죄양을 찾지 못해
애태우고 있었다. 이 때 어떤 잡지가 참으로 그에 적합한 속죄양을 발견했다.
개 한 마리가 뭔가를 보고 짖자 모든 개가 함께 짖어댄다. 마치 자신만은 같은 부패는
하지 않았다는 듯. 자신만은 청렴결백했던 것처럼.
그런데, 진정 우리들은 부패하지 않았던가. 또한 진정 우린 청렴결백했던가 생각할 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합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들이 이토야마
히데타로(糸山英太郎-정치가 겸 사업가)씨를 심판하는 건 용이하다. 그러나 우리들,
국민의 상당수가 또 이토야마씨에게 투표를 했다는 것을 그 당시 잊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한사람의 대의원을 부패시키기 위해 그를 택한 지역민들은, 국민전체를 위해서
보다는 자신들만의 이익대표자로서 그를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
우리에게도 부패되어있는 부분이 있음을 잊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편집자 주: 동의어로서 ‘원숭이의 감 비웃기’ ‘설익은 감이 익은 감을 비웃다’ 등
많이 있습니다.
* 소 오줌과 부모 의견은 길어도 효력 없다 (牛の小便と親の意見は長くても効かぬ)
뜻이 명료하니 설명은 불필요할 것이다. 이런 속담을 보면, 아래 구만 살리고, 위의 구는
바꾸고 싶어진다. -독자들도 생각해서 편집부 앞으로 보내주십시오-
피로연의 스피치와 환자의 병문안은 길어도 효력 없다. 이건 어떨는지.
결혼식에 참석해 보면, 곧잘 어쩌구저쩌구 중얼중얼 길게 스피치를 하는 사람이 있다.
필경 당사자는 전날밤 부터 생각해 온 이야기겠으나, 경청하고 있는 쪽에서는 너무나
내용이 공허하여 고통마저 느끼는 수가 있다. 이러한 스피치는 특히 중년 이상의 여성,
그리고 신랑과 일면식도 없으나 피로연의 장식품으로 초대된 유력인사 가운데 많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종류의 스피치를 피로연에서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아마 없으리라.
‘나는 신랑과는 만난 적이 없습니다만, 신랑의 아버님이신 김복동씨와는 초등학교
동급생이었고, 함께 산길을 2 마일이나 걸어서 통학을 했던 사이입니다. 이 초등학교
교장은 이만수선생님으로, 선생님 댁에는 감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나와 김복동씨는
그 감을 몰래 따다 선생님에게 혼이 난 일도 지금은 그리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만수선생님은 그 후 퇴직하여 그 고장 일을 맡아하시면서 시를 지으시는 등...’
어쩌구저쩌구, 이건 신랑의 피로연이 아니라 이만수선생의 모임이 되고 있다는 것을
장본인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피로연이건 무슨무슨 파티건
스피치는 1분 정도로 끝내는 게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길어도 효과 없는 것에 환자 문병이 있다. 참으로 일본인처럼 환자 문병법을 알지 못하는
국민은 없다고 어느 의사가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면회 사절이라고 쓰여 있는데도 자신이 온 것을 환자에게 알리기 위해 병실로 들어가려는
사람. 그건 환자에게 육체적 고통을, 간병인에게는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다.
환자가 때로는 계속해서 문병 손님을 만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도 혼자서 20분이든
30분이든 병실에 앉아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본인은 선의라고 생각하겠으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환자는 피곤에 지쳐 빨리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문병시간을 간호원 지시에 따르거나, 아니면 하루 한시간으로 한정되어 있는
곳도 많다. 무엇보다도 한자를 피곤하게 만들면 안 된다. 어찌되었거나 문병은 재빨리
마치고 돌아가는 편이 바람직하다. 길어서 효력이 없는 건 소 오줌뿐이 아니고, 아주
많이 있을 것 같다.
<편집자 주: 편집부에서도 머리 싸매고 궁리해 본 결과 [밤샘한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견은 길어도 효력 없다]라는 격언을 생각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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