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끼(村上春樹)의 수필집 [はいほ!] 중에서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 Left Alone (빌리 홀리데이에게 받침)
지금은 오전 한시반입니다.
당연한 이야긴데 밖은 어둡다. 그것도 어중간한 도회지 밤의 어둠이 아니고, 창문으로 손을 내밀면 손가락이 새카맣게 물들어버릴 것 같은 진짜 어둠이다. 우리 집 뒤는 바로 산이기 때문에 밤의 어둠은 정말 깊고 조용하다. 달이나 별이 나오는 밤에는 어슴푸레 떠오르는 둘레의 나무들이 오늘밤은 어둠에 폭 싸여버렸다.
두 마리 고양이도 완전히 잠들었다. 숙면하고 있는 고양이 모습을 보면 난 늘 마음이 놓인다. 적어도 고양이가 안심하고 잠든 동안은, 이렇다 할 나쁜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아내가 집을 비웠기 때문에 이 집 안에 있는 인간은 나 한사람 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책상 앞에 앉아 이 원고를 쓴다.
오전 한시 반에 바로 눈을 뜨고 원고를 쓰다니,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적어도 지난 일년 동안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내가 어떻게 이런 시간에 일어나있는가 하면 너무 빨리 잣기 때문으로, 오전 0시반(즉 지금부터 한시간 전)에 번쩍 눈이 떠졌던 것이다. 어쨌거나, 오후 7시 40분에 잠자리에 든다는 건 역시 너무 일렀다. 아-아, 어쩐지 시차 병에 걸린 기분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이런 일이 있어도 나쁘지만은 않구나 생각된다. 이렇게 한밤중에 -고양이도 잠들어 조용한 한밤중에- 달랑 혼자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도 나름대로 분위기 있다.
부엌으로 가서 보졸레(Beaujolais)의 콜크를 따고, 글라스와 함께 책상 위에 놓는다. 그리고 몇 년 동안 듣지 않았던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바늘을 떨어뜨린다. 그러고 보니 내가 최근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드를 그다지 듣지 않았는데, 밤샘을 하지 않았던 때문인가? 확실히 오후 두시 반에 케익을 먹으면서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듣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을터이니.
오래된 레코드라 조금 흠이 나있다. 아니, 흠이 나있다는 것 보다 흠투성이라는 편이 가까울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레코드를 산 게 대학생일 때였으니 17~8년쯤 전일 것이다. 내가 최초로 구입한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드였다. 지금도 나와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이건 봐브(폴리들)의 [빌리 홀리데이의 혼]이라는 편집물 레코드로, A면이 1946년도 ‘JATP’의 라이브, B면이 스튜디오물인 앤솔로지(大和和明 선곡)로 되어있다.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건 A면인데, 우선 [Body And Soul]과 [Strange Fruits]라는 압도적 중량급의 가창으로 시작되고, 이어 [Trav’lin’ Light] [He's Funny That Way] 같이 약간은 가벼워지다가 다음엔 [The man I love] [Gee baby, Ain’t I Good to You]로 하드록에 육박, [All Of Me]로 스윙을, 그리고 정통 있는 [Billie’s Blues]로 확실하게 조이는 배열이다. [Body And Soul]부터 레코드가 시작되는 구성에 난 약간 불만적이나 (그건 서두에서 듣기에는 너무나도 압도적이다), 그래도 천천히 레코드 연주에 귀 기울이고 있으면, 빌리 홀리데이라는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굉장한 사람이었구나 통감하게 된다.
빌리 홀리데이는 한 때 지나치게 신격화된 적이 있어, 그로 인해 나 같은 사람은 약간 부담스러워 멀리하고 말았는데, 그런 아무래도 좋을 것 것 같은 주변적 사물은 잘라버리고, 허심탄회하게 노래 그 자체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역시 구석에서 구석까지 진지하게 귀 기울일만한 굉장한 싱어이다. 옛날에도 굉장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나이 들어 새롭게 들어 보니 그 훌륭함이 더욱 뚜렷하게, 극명하게 나타남을 알게 된다.
그녀의 노래에는 신체의 중추로부터 자연스레 울어나는 원액과 같은 것 -그건 우리들의 존재 이유와 깊이 상관되는 것-이 포함되어 있어, 그것이 우리 청취자들을 압도하고, 끌어안고, 취하게 하여 넉아웃시키고 마는 것이다.
나는 음악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자신도 잘 알 수가 없는 배경으로 푹 묻혀버리듯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어, 때때로 이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 노래는 그저 노래인 것이다. 깊이 생각한다고 해서 무언가를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또한, 만약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와 다른 수많은 재즈싱어의 노래를 결정적으로 떼어 놓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시간적이라고나 할 수 밖에 없는 중층성일 것이다. 요컨대, 그녀의 노래에 담겨 있는 그 어떤 요소는, 듣는 쪽이 아무리 이해하고자 노력해도, 노력한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서랍 구석에서 발견될 것을 기다리고 있는 미개봉 편지와 같은 것으로, 적당한 때가 되어야 겨우 눈에 띠게 되고 이해되는 것이다. 해독할 수 있는 때가 되면, 그건 내버려 둬도 자연히 해독된다.
그러한 음악이 있다는 건 역시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에 숨죽이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들어도 뭔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던 부분이, 지금 이렇게 와인글라스를 기울이면서 느긋이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실타래가 풀리듯 깨끗이 세부까지 알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그다지 몹쓸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이 바브판(Verve Records)의 빌리 홀리데이도 좋으나,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베스트 레코드는 미국 컬럼비아에서 나온 [The Golden Years VOL 1] 이라는 석장짜리다. 이 석장짜리 6면 레코드는 참으로 열심히 들었다. 이만큼 되풀이해서 들은 재즈 보컬의 레코드는 아마도 없다고 생각된다. 바브나 코모도어나 엑카의 빌리 홀리데이도 각각 훌륭하다고는 생각되지만, 초일류급 스윙 밴드를 백으로 하여 노래를 불러 제친 1930년대, 1940년대의 이 컬럼비아판의 빌리는 기적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싱싱하고, 그리고 완벽하다. 자칫, 아니 참을 수 없이 춤추고 싶을 만큼 해피하고, 그리고 참을 수 없이 서글프다. 기가 막힐 만큼 무방비 상태이며, 게다가 손을 댈 수도 없다.
특히 레스터 영이 참가한 트랙터는 -‘What You're Smiling’ 'I Can't Get Started'- 주옥처럼 아름답다. 만약 지금부터 빌리 홀리데이를 들어보고 싶은 젊은이가 있다면, 나로서는 역시 이 부류의 레코드부터 권하고 싶다. 유명한 [Strange Fruits] 부류의 빌리 홀리데이는 -이상하게 들릴는지도 모르나- 최초로 듣기에는 약간 위험성이 넘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해 바브판은 한밤중에 혼자 듣기에는 약간 슬픔이 강하다.
때때로 밤에 재즈를 틀어놓은 바에 들어가면, 백뮤직으로 바브시대의 빌리 올리데이 음악이 흘러나오는 수가 있다. 그녀의 그런 노래 -예를 들어 ‘All Or Nothing At All'-을 들으면서 위스키를 마시고 있으면 왠지 자기만이 다른 중력의 바다 밑이든가 어디든가를 걷고 있는 기분이 되어버린다. 굉장히 깊은 장소이기에 위로 오를 수도 없고, 제대로 걸음을 옮길수 조차 없다. 그래서 위스키 그라스를 기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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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an don't love Me>
https://www.youtube.com/watch?v=Jf0ldEBBJhY
<body and soul>
https://www.youtube.com/watch?v=3NXeiRd4dx0
이 두 곡을 골라 들으면서 만감이 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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