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村上春樹)의 21일간 터키 일주 (15)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국도 24호선의 악몽]  

국도 24호선은 이라크 국경 도시 지즐레부터 시리아국경을 따라 똑바로 서쪽으로 향해 뻗어 있는 산업도로다. 지중해에 다다르면 그곳에서 북으로 향한다. 이 도로의 목적은 이라크로부터 수입한 석유를 트럭으로 북부에 나르는 일에 있다. 또 다른 이름은 [디카트 가도]. 그곳을 통행하는 자동차의 대부분이 대형 석유수송차로, 뒤에 커다랗게 [디카트! (주의)] 라고 쓰여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기분 나쁜 해골 마크가 페인트로 그려있다.

우리가 동부 아나톨리아의 먼지투성이 산길을 헐레벌떡 탈출해서 겨우 당도한 포장도로가 실로 이 [디카트 가도]였던 것이다. 참으로 한 고개 넘으니... 같았다. 터키 내륙의 여행은 좀처럼 편하게 해주질 않는다. 

 

24호선은 도로 자체로 본다면 제대로 된 도로다. 포장도 되어있고, 함몰된 곳도 없으며, 대체로 똑바르고, 크루드인 무장 게릴라도 없다. 단 이 24호선 최고의 문제점은 도로가 편도 1차선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 차를 추월하고자 하면 맞은 편 차선으로 나가 추월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도로는 앞서도 쓴 바와 같이 탱크롤리차로 넘쳐있다. 앞에는 꽉 차도록 마치 무거운 혹처럼 탱크롤리가 뭉쳐있다. 그걸 한번에 56대 한꺼번에 빠져나가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시속 40킬로 정도로 슬금슬금 운전을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어쩔 수 없이 나간다. 그런데 맞은편 차선에도 꽉 차게 탱크롤리가 있는 것이다. 그 사이를 문자 그대로 비집고 나가 추월을 해야 한다. 게다가 쉴 새 없이 탱크롤리가 탱크롤리를 추월한다. 탱크롤리 중에도 비교적 빠른 것과 비교적 느린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르다고는 해도 탱크롤리이니 만큼 그다지 빠르진 않다. 그래서 당연히 빠져나가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런 두 대가 느릿느릿 병행하면서 앞으로 다가오면 우린 이제 도망칠 곳도 없다. 부딪치면 저편은 상관없겠지만 이쪽은 완전히 납작해질 것이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잘못 비키거나 핸들을 자칫 잘못 꺾은 탱크로리나 승용차가 영화 [스파르타카스]의 전투 후 같은 느낌으로 도로변에 뒹굴고 있다. 용케도 대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라크로부터의 석유수송은 내륙 쪽이 확실히 안전하고 가깝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파이프라인으로 해버리지 않는지 난 이해가 안간다. 사고를 생각한다면 그 편이 훨씬 안전할 터이고 기름값도 들지 않을 터이니 싸게 먹힐 것이 아닌가. 이처럼 무작정 수많은 탱크롤리를 피스톤 운전 시키면 공기도 나빠지고 위험하다. 그런데 전략적 견지에서 생각해 볼 때, 파이프라인은 한번 공격당해 파괴되어 버리면 끝장이다. 그래서 비경제적이고 위험해도 일일이 탱크롤리로 운반하는 편이 국가 정책으로서는 타당한 노릇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적어도 2차선으로는 해야지, 하는 생각이 난 든다. 참으로 이곳은 상상을 뛰어넘는 고약한 도로인 것이다. 악몽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다. 전혀 과장 없이, [디카트 가도]를 한 시간 동안 운전하면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버릴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뭣하지만 터키 드라이버는 대체로 그다지 매너가 좋지 않다. 풍속/습관의 차이를 고려에 넣고, 상당히 호의적으로 생각한다 해도, 우리 감각으로 볼 때, 그들의 운전을 [좋다]는 범주에 넣으려면 상당한 저항을 느낀다. 우선 무엇보다 거칠다. 다소 무리해서라도 자꾸만 앞으로 나가려고 한다. 이태리, 그리스, 터키 등은 엇비슷하게 거친 운전을 하는 대표적 나라지만, 기가 막히게 만드는 점에 있어 난 이 3개국 가운데 역시 터키에게 금메달을 주고 싶다.

 

24호선의 드라이버들도 거칠었다. 이쪽에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정면으로 부딪치듯 무섭게 추월해 온다. 그래서 연속적으로 경적을 울리거나 풀래싱을 한다. 게다가 탱크롤리의 드라이버들은 과중 노동으로 지칠 대로 지쳐있다. 그들은 이 긴 거친 도로를 거의 쉬지 않고 왕복을 하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이 도로의 교통은 쉴 새가 없다. 게다가 차의 컨디션도 최고라고는 할 수 없다. 긴 오르막 길 여기저기에는 나자빠진 탱크롤리가 공룡 같은 몸체를 드러내 놓고 있어. [터키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라 불리는 것도 수긍이 간다. 적어도 우린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이 국도 24호선을 두 번 다시 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24호선은, 이라크 국경에 군 검문이 많은데 비해, 경찰 검문이 많다. 여기저기서 경찰이 트럭을 길가에 멈춰 세우고 수하물을 체크한다. 밀수품 적발이다. 이것도 교통 혼돈에 한몫을 하고 있다. 하긴 우리들은 이 검문과는 관계가 없었다. 우릴 보자 경찰은 손을 흔들면서 [가도 좋다]고 했다.

시리아 국경과 가장 접근해 있는 근처에는 몇 겹으로 철조망이 둘러 처져 있고, 군의 감시탑이 늘어 있는 등 살벌한 공기에 싸여있다. 도로변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조명등이 늘어서있는데, 이건 도로를 비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밀수업자와 테러리스트의 월경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경 24호선에는 별로 마음 따뜻해지는 요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국도24호선의 마을

우선 지즐레. 이곳에서부터 드디어 시리아와의 국경이 된다. 이라크국경에는 험한 산들이 우뚝 솟아있었는데 시리아국경에 들어서자 돌연 텅 빈 평야가 나타난다. 경치가 바뀌고, 사람들의 복장이나 모습도 변해간다. 중앙아시아적인 풍경은 점점 아랍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한다. 아라파트 같은 터번이 늘고, 남자들은 가랑이 밑이 축 처진 바지를 입고 있다.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 사막이 눈에 띠기 시작하고, 낙타의 모습까지 보인다.

아라비아문자가 많아진다. 여자들의 복장은 훨씬 화려해진다. 예의 아라비아풍 번쩍이는 옷이다. 사람들 피부색이 어딘가 어두워지고 눈초리가 한층 예리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군대 검문도 훨씬 적어진다. 그다지 평화스런 느낌은 없으나, 적어도 [계엄령 같은 에어리어]에서 벗어났다는 실감은 든다.

이제부터 지즐레 시가지 이야기인데, 이곳도 솔직히 말해 엄청난 마을이다. 우리가 이 마을에 도착한건 밤 일곱시였다. 호텔 방을 잡고, 목이 말라 맥주를 사러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일곱시 넘으면 맥주는 살수 없소. 어디서건 팔지 않소] 라고 호텔 프런트에서 일러준다. 그럼 맥주 마실 곳이 어디 없는가 묻자 없다고 한다. [어째서?] 하고 물어도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일곱시 이후에 맥주를 마시는 놈과는 별로 이야기하기 싫다]는 분위기였다. 일곱시 이후에 맥주를 마시면 어째서 안 되는가 고함치고 싶었으나 이곳은 타인의 나라, 참았다. ‘거기 물이 있으니 그걸 마셔요라고 그는 로비(라고 부르기에는 상당히 저항이 생기는 스페이스였다)의 워터 쿨러를 가리킨다. 난 터키를 3주간 돌았으나 워터 쿨러를 본 건 이게 처음이며 마지막이었다. 어째서 이런 가축 오두막 같은 호텔에 워터 쿨러라는 게 있는지 난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있었다, 엄연히. 난 몹시 목이 말랐고, 이 워터 쿨러는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 곳에 있는 컵으로 찬 물을 두 컵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어느 만큼의 시간이 지나서부터 비극적일 만큼의 설사가 시작됐다. 난 위장이 강인하여 그다지 물로 탈이 나지는 않는 인간인데, 그래도 이곳 물에는 이기지 못했다. 그 물은 나를 무자비하게 때려눕히고, 죄이고, 뒤흔들었다. 전혀 승산이 없었다. 이 설사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만굉장했다. 그건 다 지즐레 사람들이 일곱시 이후에 맥주를 팔지 않기 때문이다. 맥주를 손에 넣었다면 워터 쿨러의 물 따윈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절대로.

만일을 위해 이 호텔 이름을 적어놓자면 [기네시 호텔]이라 한다. 숙박비는 1인당 350. 이 가격으로 11실이다. 무척 싸다. 이곳은 참으로 기묘한 호텔이었다. 첫째로 프런트 뒤가 이슬람교의 예배당으로 되어 있었다. 넓이는 3() 정도로, 신을 벗고 올라가서 예의 머리를 바닥에 대는 예배를 한다. 그런 게 있는 호텔 같은 건 처음 봤다. 터키는 이슬람교 신앙에 대해 그다지 엄격하지 않은 나라인데, 이곳까지 오니 시리아에 근접해있는 탓인지 이슬람교의 색채가 진해지고 있었다. 맥주를 마실 수 없었던 것도 필경 그 탓이었으리라. 반바지 차림으로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매우 언짢은 눈으로 바라본다. 나를 보고 땅바닥에 탁 침을 뱉는 놈까지 있었다. 가게에 들어가서 크래커와 미네랄워터를 사려고 하자, ‘당신 이슬람교도인가라고 묻는다. 아니라고 말하면 팔지 않으려나 잠깐 생각했지만 팔기는 했다. 하지만 타지방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우호적이지 않았다. 시실리와 마찬가지로.

다시 이 호텔이야긴데, 예배당 안쪽이 중정(中庭)과 같은 오픈 스페이스로 되어 있고, 둘레에 형무소 같은 느낌의 방이 늘어서있다. 3층 건물이다. 1층에는 샤워실이 있다.(믿기 어려운 이야긴데, 이곳 샤워는 빨간 꼭지가 찬물이고, 파란 꼭지가 더운물이다. 덕택에 난 마지막 순간에 겨우 그걸 알아차릴 때까지 계속 화를 내면서 찬물로 샤워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주위에서는 영락없이 똥 냄새가 났다. 하지만 350엥이니 투정할 수는 없었다. 이 거리에는 또 하나, 필경 이곳보다 좀 더 고약할 것으로 추측되는 호텔이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는 개인의 자유다. 별로 즐겁지 않은 자유이이긴 하되.

 

호텔 앞을 24호선이 달리고 있다. 탱크롤리가 우르릉대며 계속 지나간다. 이 소리가 밤새 멎지 않는다. 아침까지 멎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잠들고자 해도 술이 없다. 창이 도로의 진동으로 계속 부들부들 떤다. 게다가 새벽 시간이 되면 대다수의 탱크롤리가 거리를 통과 할 때 있는 힘껏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것이다. 무슨 신호처럼 파오오오오! 하고. 나는 매우 지쳐있었기 때문에 겨우 잠들 수 있었으나, 그래도 몇 번이나 눈을 뜨고, “람보 2” 처럼 로켓탄으로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을 폭파해버리고 싶은 격한 충동을 일으켰다.

24호선 이외의 시가지 도로는 어둡고 더러웠다. 우리가 마을에 들어섰을 때, 메인 스트리트를 지친 소 한 마리가, 놔기르는 소 인듯 어슬렁어슬렁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이 소는 우리가 잠들기 전에도 걷고 있었고, 아침에 빵을 사러 밖에 나갔을 때도 아직 유유히 걷고 있었다. 어쩌면 이 마을에는 소를 수용할 우리라는 게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기막힌 곳이었다. 내가 산책을 하고 있자니 그 근방 아저씨가 당신 오란다인이오?’ 라고 묻는다. 도대체 나의 어디가 오란다인으로 보인다는 말인가?

이 소가 걷고 있는 메인 스트리트를 두고, 지즐레 마을은 글자 그대로 둘로 분할되어있다. 다시 말해 마을에는 커다란 두 개의 패밀리가 있고, 그 두 패밀리는 몇 세대에 걸쳐 피비린내 나는 항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근방도 시실리와 닮았다. 그 두 파 주민은 서로 말도 하지 않는다. 사는 장소도 다르다. 그들은 이 메인스트리트를 경계로 하여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어 살고 있는데, 절대 섞이지 않는다. 이쪽 편에 우체국이 있고, 저쪽 편에는 약국이 있다. 하지만 이쪽 사람은 저쪽 약국에 들어갈 수 없고, 저쪽 사람은 이쪽 우체국에 들어갈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루이스 캐롤적인 초현실적이며 엉망인 이야기지만, 어쨌거나 남의 나라의 남의 동네이니 논평은 삼가자.

 

이 지즐레 동네에서 또 하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것이 있다. 내가 밤 열한시쯤 화장실에 이를 닦으러 가자, 옆 세면대에서 젊은 사나이가 검정 가죽구두를 닦고 있었다. 그뿐이라면 그래도 괜찮다. 좀 더럽다고는 생각했으나 그다지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이 사나이는 그 구두를 신은 채로 닦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차 하고 다리를 올려 세면대에 집어넣고 발 채 닦고 있었다. 이건 자세로서도 매우 흉했다. 게다가 양말도 신은 채였다. 그건 실제로 그걸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는지 모르겠는데참으로 기묘한 광경이었다. 난 정말 어이가 없었다. 눈이 마주쳐서 안녕하세요(이이 아크샴라르)’라고 하자, 저쪽도 극히 자연스럽게 이이 아크샴라르라고 한다. 그리고는 난 이를 닦고, 그는 구두를 계속 닦았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난 지금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건 뭔가 이슬람교와 관계되는 일이었을까? 밤 열한시에 구두를 신은 채 발을 씻는 일이? 아니면 발을 집어넣은 채 구두를 닦는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