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村上春樹)의 21일간 터키 일주 (마지막 회)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국도 24호선을 따라”
더 할 나위 없이 음침하고 더러운 지즐레 마을을 떠나 지중해로 향했다. 도중 “디카토 가도” 24호선에 그만 진저리가 나 북상하여 디야르바크르 마을에 들르기로 했다.
디야르바르크는 쿠르드 마을이다. 큰 마을이다. 이 근처 인구의 태반은 쿠르드인. 그래서 마을 둘레에는 군 기지 투성이였다. 이는 마을을 지키기 위한 부대가 아니라 마을을 포위하고 있는 부대다. 내가 디야르바르크 직전에 들른 마르딘이라는 마을 밖 기지는 야포의 끝이 모두 마을 쪽으로 향해있었다. 쿠르드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즉각 한 발 쏘아 올릴 작정인 듯. 참으로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 나라의 다른 사람들 마을 이야기라고 하면 그만이긴 해도.
이라크 국경의 산악지대는 섬뜩할 정도였는데, 시리아 국경을 따라 들어가자 기온이 훨씬 높아졌다. 햇볕에 있으면 머리가 띵할 정도의 더위였다. 아무튼 더웠다. 콧구멍이 건조해서 말라붙었다. 숨을 들이쉬면 코의 점막이 말라있어 아팠다. 자동차 에어 필터는 눈 깜빡할 사이에 먼지투성이가 된다.
디야르바크르는 무척 오래된 마을로, 둘레가 높은 검정 벽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그곳 원주민은 이 도시를 [중동의 파리]라고 부르며, 벽의 길이는 만리장성에 이어 세계 제2의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쪽이건 뻥튀기 과장이다. 그건 누마부쿠로(沼袋)를 사이부선(西武線)의 덴엔쵸후(田園調布)라고 부르고, 나가하타기요시(中畑清)를 일본의 베이브 루스라고 부를 정도의 과장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디야르바크르 마을은 오래전부터 교통의 요소로서 참으로 다양한 민족에게 지배되어왔다. 로마인이 지배하여 사산조 페르시아에 대한 최전선 요새가 되었다. 그 다음 페르시아 사람이 이 마을을 차지했는데,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아 비잔틴 제국의 손에 넘어갔다. 그리고는 회교도 아랍인이 들어왔다. 우마이어인이 들어왔다. 아파즈조 아랍인이 들어왔다. 마르완조 쿠르드가 오고, 세르쥬크가 오고, 백양조 터키맨이 오고, 또 페르시아인이 오고, 마지막으로 오트만 터키 손에 떨어졌다. 참으로 현관 매트 같은 마을이다.
이 마을의 야외 카페에 들어가 앉으니 금방 아이들이 떼를 지어 모여든다. 아이들은 대개가 빡빡머리였다. 색은 거무스름하고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 이 아이들이 뭘 하느냐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둘레에 빙 둘러서있을 뿐이다. 그리고는 표정을 눈곱만큼도 바꾸지 않은 채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습관대로 카페에서 일기를 쓴다. 마을에 도착하면 난 카페나 차이하네에서 일기를 쓰고, 마츠무라군은 사진을 찍으러 간다. 차 안에서는 글을 쓸 수 없고, 호텔에도 글쓰기에 적합한 테이블이 없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그곳에는 뭔가에 적합한 테이블이 없다). 그래서 휴식을 할 때 카페나 차이하네 등의 테이블에서 그때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적어놓도록 한다. 다음에는 어디서 쓸 수 있을는지 모르니, 쓸 수 있을 때 써두지 않으면, 어디서 무엇이 있었는지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일이 있고, 비슷한 마을이 이어지기 때문에 앞뒤가 금방 혼란해져버리는 것이다. 여행에 대해 뭔가를 쓸 때는, 아무튼 무엇이든 좋으니 세세하게 바로 메모하는 일이 중요하다.
난 아이들을 무시하고 계속 일기를 써나간다. 아이들 같은 거 존재하지 않는다, 난 혼자뿐이다, 그런 자세를 계속 취한다. 그러나 아이들도 지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무시해도, 묵묵히 일기를 쓰고 있어도, 그들 역시 그곳에 꼿꼿이 선채 움직이지 않는다. 나를 꼬나보고 있다. 가끔 웨이터가 와서 파리 쫓듯 아이들을 내쫓는다. 하지만 채 5분도 되기 전에 그들은 돌아온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채 빤히 쳐다본다. 누가 이기나 다. 나도 오기가 생기고, 이런 애새끼들에게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라고 하는 건 인식을 기반으로 하여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난 저버린다. 끈기 버티기로 터키인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상당히 강인한 신경이 필요하다. 이때도 난 아이들의 무표정한 침묵을 도저히 버텨낼 수 없었던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요금을 내고 가까이에 있는 비어홀로 들어갔다. 이곳이라면 아이들은 오지 않을 것이다. 헌데. 아이들은 오지 않았지만 이곳 역시 겁나는 장소였다. 우선 캄캄했다. 아직 오전 11시인데도 굴속처럼 캄캄했다. 그것도 어딘지 모르게 외설스런 어둠이었다. 터키 마을의 비어홀이라는 곳은 마치 맥주를 마시는 일이 인간의 크나큰 죄인 듯, 대체로 어둡고 외설스럽고 수상쩍고 기분 나쁜 냄새가 난다. 인생의 낙오자들 모임이라는 느낌이 든다. 손님 쪽도 무뚝뚝하고 어두운 얼굴로 맥주를 마시고 있다. 벽에는 야한 사진이 붙어있다. 종업원은 불친절하고 폭력적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비어홀도 있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내가 터키 시골에서 들어간 비어홀은 모두 그랬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다. 이것도 터키의 수수께끼 중 하나다. 내가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ürk)였다면 좀 더 비어홀을 밝게 했을텐데.
아무튼 이 비어홀에 들어가 겨우 혼자가 되어 생맥주 한잔을 주문했다. 심한 설사로 목도 말라있었다. 그래서 맥주를 마시고 또 설사를 했다. 디야르파크르에는 제대로 된 추억이 없다.
아니다, 좋은 일이 딱 하나 있었다.
전화국에 가서 공중전화기에 제톤(전화용 코인)을 20엥어치 넣고 일본에 전화를 했더니, 10초면 끊어져야 할 것이, 고장인지 장장 20분이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건 기적이었다. 터키의 전화 따위 제대로 통했던 일이 없었다. 그런데 아무튼 이때는 기적이 일어나서, 난 도쿄에 있는 아내와 20분 동안이나 공중전화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내가 그녀를 내팽개치고 터키에 훌쩍 가버린 데 대해 화가 나 있었다.
‘당신 전화 한통 걸어주지 않았잖아요. 내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모를테죠’ 라면서 그녀는 화를 냈다. 난 터키의 전화가 얼마나 깡패 같은 건가 설명했다. 공중전화는 통하지 않고, 그렇다면 하고 지난번에 전화국으로 가서 교환을 통해 전화했더니 통하지도 않았는데 1000엥을 빼앗겼다고. ‘그럼 호텔에서 다이렉트로 걸지’ 라고 그녀가 말한다. 그녀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호텔에는 전화 같은 거 존재하지 않음을. 어쨌거나 아내와 20분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남자 둘이서 즐기고 있겠죠?’ 라고 그녀는 말했다. 뭐? 난 생각했다. 도대체 이곳 어디에서 즐긴다는 말인가. 둘 다 설사를 하고, 기막힌 도로에서 목숨 걸고 운전하고, 더위에 지치고, 개가 덤벼들고, 아이들에게 돌팔매질 당하고, 아침부터 빵 밖에는 먹지 못했고, 목욕탕에도 한동안 들어가지 못했거든. 어디서 즐기라는 말이야?
그러나 난 설명하지 않았다. 그딴 것 전화로 설명해도 이쪽이 비참해질 뿐이니. 아아.
가이드북에 의하면, 이 디야르바르크 마을에는 터키에서도 가장 험악하다고 일컬어지는 공인매춘지역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들은 그런 곳에는 가지 않았다. 우리들은 호기심에서 이스탄불에 있는 공인매춘지역을 찾아가보았다. 거긴 정말로 참으로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나의 불쌍한 성욕은 너무나도 혼이 나가 –제임스 볼드윈 풍으로 “만약 성욕에 입이 있다면”이라 가정한다면 말인데–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매춘굴이 이 지상에 존재하다니, 나는 결코, 결코 상상을 할 수 없다. 값은 약 5달러, 라고 한다. 난 5달러를 준다고 해도, 농담으로라도 그런 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
그것이 디야르파크르, 이른바 중동의 파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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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의 [우천염천(雨天炎天)]이라는 책을 번역하기 시작한 게
2012년 10월, 어영부영하다가는 올해도 또 넘길 것 같아 서두른 끝에
겨우 오늘 마무리를 짓고 후유- 한숨을 내쉰다.
그리스 터키 여행을 해보지 못한 내게는 참으로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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