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村上春樹)의 21일간 터키 일주 (14)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말보로]
세상에는 여행가이드북이 넘쳐나고, 거기에는 다양한 각종 정보가 가득히 들어있다. 도움이 되는 정보도 확실히 있긴 있다. 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도 꽤 있다. 가장 많은 것은 도움이 되는듯 하면서도 되지 않는 어중간한 정보다. 그리고 치우친 정보. 어디선가 끌어 온 2차 정보. 그리고 내친 김에 한마디 더하자면, 이건 일본 여행 가이드북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문장이 별로 재미있지가 않다. 외국 가이드북은 –대체적으로– 문장에 유머가 들어있어, 읽을거리로서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져있다.
근데 가이드북을 읽고 그 정보 중에서 무엇이 도움이 되고 무엇이 도움이 되지 않는가를 가려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 특히 처음 가는 나라인 경우, (생각해 보니 보통 처음 가는 나라이기 때문에 가이드북을 읽게 되지만), 가려내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게다가 여행 종류나 목적, 기간과 그 사람의 퍼스낼리티, 체력 등에 따라서도 도움이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은 달라진다.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여행정보라는 건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리스를 여행할 때 늘, 배달되는 생선초밥 작은 간장병을 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생선 요리에 살짝 끼얹어 먹거나 하며 요긴하게 사용하는데, 그런 건 필요없는 일이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음식을 그냥 먹으면 된다, 라고 생각하는 여행자에 있어서는 쓸데없는 정보일 것이다.
그래도 장기간에 걸쳐 터키를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는 정보 한가지, –당신이 담배를 피우든 안 피우든- 말보로 한 카톤 가져갈 것을 권한다. 대단한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터키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이드북을 읽고 정말일까 반신반의하면서 면세점에서 1 카톤 사가지고 갔는데, 실제로 요긴하게 썼다. 터키에서는 담배를 권하는 게 우호의 첫걸음이고, 특히 시골에서는 말보로가 높이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친절하게 해줬다고 해서 돈을 주는 건 실례일는지도 모르겠고, 첫째 얼마를 줘야 좋을는지 모르는, 그런 때 말보로를 한갑 주면 대체로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사진 모델이 되어준 사례로 말보로 오케이, 군인의 검문을 받을 때 이야기가 길어질듯 할 때 [시가라?] 하고,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보로 한가치를 건네면 대체로 무난히 통과다. 그야말로 마법의 담배인 것이다.
[말보로가 아니면 안되나? 윈스톤이면 안되나?] 하면 나로서는 대답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왠지 말보로가 아니면 안될듯한 기분이 든다.
말보로라는 건 하나의 상징일 것이다, 아마도.
Come to Marlboro country.
근데 이 말보로 현상이 오지에 가면 갈수록 현저해진다. 동부 아나톨리아를 여행하고 있으면, 아무튼 어린아이부터 곧 죽을 듯한 늙은이까지, 양치기부터 군인들까지, 사람의 얼굴을 보면 손가락 두 개를 입가로 가지고 가서 담배 피는 시늉을 하며 [시가라?] 라고 한다. 물론 모두에게 주자면 한이 없으니 다 주지는 않는다. 길을 묻는다던가, 사진을 찍는다던가, 그런 식으로 뭔가 신세를 질 때 준다. 어째서 그처럼 열심히 담배를 원하는지 난 잘 모르겠다. 담배가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물품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지금은 어디서나 담배를 팔고 있다. 편의점에 가면 바로 살 수 있다. 그런데 모두들 담배를 원하는 것이다. 아마도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담뱃값도 부족할 정도로 가난하기 때문이리라. 나라면 담배를 끊으면 될텐데, 라고 생각하겠으나, 터키에서는 금연이라는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듯 (2주간의 여행에서 딱 한번 이즈미르 근처에서 해골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퇴색한 금연운동 포스터를 보긴 했지만), 남자는 거의 모두가 틀림없이 담배를 핀다. 한가치 건네주면 그걸 귀에 꽂고, 또 한가치 받아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불은 없는가 묻는다. 라이터로 불을 붙여준다. 라이터를 건네주거나 하면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나는 관공서나 레스토랑 테이블에서 잠깐 빌려달라고 해서 내준 볼펜을 되돌려 받는데 몇 번이나 매우 애를 먹었던 것이다.
한번, 이것도 동부아나포리아의 어느 시골에서 굉장한 양떼가 도로를 막아버렸던 때의 일이다. 우리 앞에는 벤츠 캠핑카에 탄 독일인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미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아무튼 바다와 같은 양 떼였다. 이처럼 굉장한 수의 양을 보 건 난생 처음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건 양, 양, 양이었다. 당나귀에 올라탄 양치기 몇 명과 커다란 양치기 개가 그 무리를 이끌었다. 우리도 독일인도 양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양치기가 다가와서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라고 한다. 독일인은 어쩔 수 없네 하는 느낌으로 돈을 얼만지 지불했다. 우린 대여섯개비 남은 말보로를 곽 채 내밀었다. 이 양치기는 보기에도 탐욕스럽고 뻔뻔한 놈으로, 더 내놓으라 하고, 이제 없다고 해도 좀처럼 물러서질 않는다. 마지막에는 양 한 마리를 사라고 까지 하는 것이다. 억지스런 말이었다.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이 근방 양치기는 대체로 터프한 사람들이 많다. 눈매가 날카롭고 번쩍거린다. 자못 유목민족의 후예란 분위기였다. 성격도 사나울 것 같았다. 이런 무리에게 담배를 한 개비 주면 여러 개비를 빼앗으려한다. 아이들도 터프했다. 한번 차로 벽지의 양치기 마을을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기막힌 일을 당했다. 우리가 그 마을에 한 발짝쯤 차를 들여놓자 아이들 떼가 어디선가 구름처럼 몰려와 차 앞을 가로막는 것이다. 스피드를 늦추자 모두들 필사적으로 차에 매달린다. 그리고는 [시가라, 시가라] 외쳐댄다. [셔츠, 셔츠] 라고 소리 지르는 아이도 많았다. 창을 쾅쾅 두드린다. 그래도 세우면 끝, 그대로 돌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돌파하면서 만에 하나라도 아이를 치거나 하면 큰일이다. 그때는 동네 어른들에게 두들겨 맞아죽을는지도 모른다. 이런 땅 끝 같은 곳에서 죽임을 당한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매장되어 시체조차 찾지 못할 것이다. 큰일 났다. 이런 곳에서 죽기는 싫다. 게다가 만약 운 좋게 경찰서에 끌려간다고 해도, 이번엔 악명 높은 터키 형무소가 기다리고 있다. 터키에서 한번 인신사고를 일으키면, 이유가 어떻든 끝장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라는 관계자의 충고를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 사람은 터키에서 인신사고를 일으켜 형무소에 들어갈뻔한 일본인 친지를 겨우 해결해서 국외로 빼낸 이야기를 해줬다.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겨우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떨쳐내고 (마지막까지 뒷문에 달라붙어있는 놈을 흔들어 떼어내고) 탈출하자 이번에는 차에 돌을 던지는 것이다. 혼이 났다.
이런 악몽 같은 마을의 이름은 잊어버렸다. 지도에도 실려 있지 않는 장소였다. 우린 길을 잃고 (라기 보다는 양치기 소년이 가짜 길을 가르쳐줘서) 이 마을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어째서 그들이 그처럼 필사적으로 담배를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터키에 간다면 말보로를 가지고 갈 것을 난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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