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村上春樹)의 21일간 터키 일주 (11)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핫카리로 향하다]
예전에 [핫카리의 계절]이라는 터키영화를 보았다. 핫카리라는 터키의 오지(라고 하기 보다는 이젠 비경에 가까운 곳)에 부임한, 도회에서 자란 터키 교사의 이야기였다. 그는 이상주의적인 인텔리로, 아마도 크루드인 마을이라고 생각되는 산속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어떻게든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한다. 그리고 조금씩 모두들 그를 받아들이게 되나, 결국 어떤 사건이 일어나 어두운 감정을 안은 채 마을을 떠나게 된다는 줄거리였던 것 같다. 나는 때때로 영화의 줄거리를 틀리게 기억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두서너개를 하나로 뭉쳐 기억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확실치는 않으나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이상주의가 토지의 현실 앞에 패퇴(敗退)된다는, 다분히 19세기의 러시아적인 어두운 테마의 영화였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줄거리를 떠나서 경치와 풍속 묘사는 뛰어났고 강열했다. 세세한 곳 까지 잘 기억하고 있다.
영화에 따르면 핫카리는 눈이 많이 내리고, 겨울이 되면 산촌은 바깥세상과 완전히 고립되어버린다. 5월이 될 때까지 눈이 녹지 않는다. 다시 말해 1년의 절반 이상을 마을 속에 갇혀 지내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난하고 말수가 적다. 내온 차이에 교사가 설탕을 넣어 저은 다음에 마시자 얼굴을 찡그린다. 모두들 각설탕을 우둑우둑 씹고 나서 차이를 마신다. 마을 전체가 그러한 풍습이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부터 어차피 터키에 갈 바에는 한번 이 지방을 실제로 보자고 생각했는데, 이 지방은 눈이 깊을 뿐 더러, 터키에서도 가장 치안이 나쁜 장소로서 알려져 있었다. 쿠르드인 분리주의자의 활동 거점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신뢰하고 보는 영어 가이드북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핫카리 거리는 피해 지나가는 것이 최상이다. 이 마을 인구의 절반은 공포에 떨면서 더러운 도로변 움막에 처박혀 살고, 나머지 절반은 정부 관리들을 죽일 생각밖에는 하지 않는다. 이곳에 있는 정부 관리들은 어딘가 다른 장소에서 부정을 저지르거나 문제를 일으켜 이곳으로 좌천된 듯한 사람들 뿐이다].
난 이런 건 아무래도 과장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핫카리에 갔는데,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물론 눈앞에서 사람이 죽임을 당한다거나 하는 일이 있었던 건 아니나, 그래도 거리를 둘러싼 분위기는 정말 이 설명과 똑같았다. 핫카리 거리에 차를 세우고 한 발짝 밖으로 나가자, 공기가 어딘지 모르게 팽팽하고 불온했다.
시기도 나빴다. 내가 갔을 때는 마침 크루드인 문제가 피크에 달하던 바로 그 시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린 몇 주일 동안이나 신문을 읽지 못해 (이스탄불을 뒤로 한 후부터 헤럴드 트리뷴 같은 건 어디에서도 팔지 않았다) 상황이 그처럼 악화되어 있는 줄 몰랐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반 거리에서 융단점포와 여행사 직원에게 [핫카리의 치안은 어떻습니까?] 물어보았는데, 양쪽 모두 [핫카리? 전혀 노 프로블렘입니다. 안전합니다.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라는 것이다. [그래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이어 다그쳐 묻자, [네, 전에는 약간 있었습니다] 라고 싫은 얼굴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젠 염려 없습니다. 치안은 회복되었거든요. 이라크가 크루드인을 괴롭히고 죽여서 그들이 터키로 도망쳐왔습니다. 하지만 터키군은 크루드인을 친절히 보호합니다. 평화입니다] 라는 것이었다. 대체로 터키인은 외국인에게 자국이 내포하고 있는 트러블을 이야기하기 싫어한다. 무엇이든 [염려 없습니다. 노 프로블렘입니다] 라는 식의 견해로 마무리 지으려한다. 그건 어쩌면 그들이 애국적인 사람이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외국에 네거티브한 정보가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식으로 전해지는 일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건 그들의 마음에 매우 깊은 상처를 입힌다). 혹은 불필요한 일은 되도록 말하지 않으려는 정치적인 면이 내포되어있는지도 모른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어찌되었거나 네거티브한 사항에 대해 그들은 일반적으로 무척 입이 무겁다.
말하자면 반(현재의 반이 아니라 오래 된 반) 마을은 한때 아르메니아인 마을이었다. 그리고 그 분리주의자들은 1차 대전 때 터키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러시아군과 결탁하여 마을을 점령하고 터키인들을 죽였다. 그런데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혁명정부가 단독 강화를 맺은 후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버리자, 되돌아온 터키군이 보복으로 아르메니아인을 대량 학살하고 (전토에서 100만명에서 150만명이 사살되었다고 한다), 나머지 아르메니아인은 한사람도 남기지 않고 이 지역에서 강제 이송한 후 마을을 통째로 부숴 폐허를 만들어버렸다. 현재 폐허가 된 이 마을에는 황새 일가가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폐허로 우리를 안내한, 전에 육군특수부대에 있었다는 관리인 겸 가이드는, [이곳은 1차 대전 때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는 –혹 러시아군의 폭격이 실제로 있었을는지 모르나- 엉터리 이야기였다. 아무튼 그들은 터키의 이런 어두운 부분은 되도록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그건 어찌되었건 반 마을에서 우린 두 사람 입에서 [핫카리는 전혀 문제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이나 자신 만만하게 문제 없다를 강조해주었기 때문에– 그것을 현지 정보로서 신용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터키인을 비방할 생각은 없지만, 전반적으로 터키인의 문제없다는 말은 문제없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들은 결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의 견해는 왕왕 희망적인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곧, ‘I hope that it is so.’가 그만 ‘It has to be so’가 되고, 결국 ‘It sure is so’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그들에게 길을 물었을 때 ‘아 바로 요 앞이요, 100 미터 앞’ 이라고 한다면 그건 600미터 앞인 것이다. 그들은 상대에게 가까운 게 좋을 것으로 생각되면 그냥 가깝게 해버리는 것이다. 호의적인, 그건 그저 감정적인 친절이다. 그 증거로 터키에서 몇 번이나 길을 물었을 때 더 멀게 가르쳐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핫카리 치안에 대한 질문만 해도, 모처럼 터키에 와주었는데, 문제없으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그냥 나도 모르게 신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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