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村上春樹)의 21일간 터키 일주 (10)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반고양이]

터키에 가면 무엇을 하자, 무엇을 하고싶다, 그런 희망은 거의 없었다. 멋대가리 없는 이야기지만 그저 터키에 가면 자동차로 한 바퀴 돌면서 동네나 사람들의 모습 등을 보고 싶다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가능할는지는 몰라도 반고양이를 만나보고, 반호수()에서 헤엄을 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나의 작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꼭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이었다. 나의 희망이라는 건 예전부터 대체로 그 정도의 것이었다.

반고양이는 반호수 근처에서 사는 특수한 고양이다. 이 고양이는 언뜻 보면 일반적인 흰 고양이지만 사실은 헤엄치기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다. 물이 있으면 무턱대고 헤엄을 친다. 꽤나 별난 놈이다. 또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의 색깔이 다르다. 이 고양이는 반호수 근처 이외에는 없는데, 혹 다른 지방에 있다고 해도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귀에 담은 적이 있기에, 애써 반에 가는 거니 가능하다면 이 고양이를 보고 싶었다.

 

 

반호수는 표고 1720미터나 되는 곳에 있는, 세계적으로 수면이 높은 호수의 하나이다. 유출 하천이 없는 탓에 염분이 상당히 강해, 농도가 30퍼센트라고 책에 쓰여 있다. 물고기는 거의 살고 있지 않다. 호수의 물맛은 무척 기묘한 맛이라고 한다. 이런 곳에서 가능하면 헤엄을 치고 싶었다. 꿈을 말하자면 반호수에서 반고양이와 함께 헤엄치고 싶었는데 그것까지 희망하는 건 욕심이 과하다. 하나씩 따로 따로 해도 상관없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반호수에서 헤엄칠 수는 있었다). 매우 기묘한 분위기의 호수였다. 예전에 화학 실험실에서 맡은 듯한 약품 냄새가 났다. 아마도 무슨무슨 나트륨의 냄새일 게다.

수질도 약간 미끌미끌했다. 그래도 염분이 강한 때문인지 무척 헤엄치기 쉬웠다. 30분 정도 헤엄을 쳤는데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물은 독특한 터콰이즈불루 빛깔로 매우 깨끗했다.

 

반호수는 터키 맨 구석의 더 구석 쪽, 아주 변경에 있다. 표고 5000미터를 넘는 아라라트산 남쪽, 이란 국경 가까이에 있는 커다란 호수다. 비행기로 앙카라에서 날아가면 눈 깜빡할 사이지만, 자동차로 이곳에 다다르려면 뼈아프도록 멀다.

우린 흑해의 아주 큰 마을 호바에서 일박한 후 소련국경을 따라 남하, 카루스에서 또 하루 숙박하고, 양떼와 군대의 검문과 원숭이처럼 집요한 아이들의 습격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빠져 나와 반호수에 다다랐다. 이건 -전혀 과장 없이- 굉장한 여로였다. 몇 번이나 길을 잃었다. 도표가 완비되어있지 않아 무척 길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길이 없어지면 그저 바위투성이의 황야를 뚫고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린 대형 4륜구로 갔기 때문에 그럭저럭 해냈으나 보통차라면 필경 오도 가도 못했을 것이다.

 

반호수의 호면이 보이기 시작했을 땐 이미 저녁이었다. 우린 몹시 지쳐있었으나, 그래도 반호수의 저녁놀은 두말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하늘도 물도 산기슭도, 모든 것이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하늘과 능선이 닿는 곳은 마치 불과 같은 진홍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호면은 조용했고, 잔물결에 맞춰 미세한 분말 같은 빛깔이 소리 없이 한 면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이 반호수였다. 꼬박 이틀, 황량한 먼지가 풀풀 나는 동부 아나토리아 고원을 돌파하여 넘어온 뒤라 호수를 보자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반은 이 근처에서는 상당히 큰 마을이다. 이야기에 따르면 반은 이란에서의 망명자와 밀수업자로 흥청대는 곳이라고 한다. 산을 넘어 도망쳐온 망명자(이란 이라크 전쟁 당시는 대부분이 징병기피자였다)는 우선 이 마을에서 한숨 돌리고, 그 다음에 당국에 출두하여 정식으로 망명 수속을 밟게 된다. 밀수업자들은 아편과 헤로인을 동방으로부터 이곳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음 운반자에게 넘긴다. 어느 쪽이든 이 마을이 루트의 중계점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단속하기 위해 터키동남부 군대와 치안당국 본부가 이곳에 존재하게 되었다. 풍광의 아름다움에 비해 상당히 위태로운 땅이었다. 국경 도시라는 것은 모두 어딘가 수상쩍기 마련인데, 이곳도 상당했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더라도 실로 갖가지 모양의 패거리가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 만큼 그럴듯하게 보이는 호텔도 일단은 있었다. 독일인 단체로 가득 찬 언뜻 고급스럽게 보이는 호텔에 들어가서 [방 있소?] 하고 물었더니 [꽉 차서 스위트밖에 없다]고 한다. 요금은 약 6500엥이었다. 보여준 방은 확실히 두 개의 룸이 있었고, 목욕탕도 붙어있었다. 스위트로 6500엥이면 저렴한 편이고, 요 며칠 일박에 600엥 하는 심한 곳에서만 숙박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2박하면서 잠시 휴양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은 상당히 조폭스런 호텔로(아크다마르 호텔이라는 곳입니다), 우리가 차에서 짐을 내리려고 하자 프런트맨이 [두 사람 숙박하신다면 엑스트라 베드 요금으로 1600엥 더 지불해야 하는데요] 라는 것이었다. 웃기지 마, 아까 보았을 때 확실히 베드가 양쪽 방에 하나씩 놓여있었지 않어? 아뇨, 그건 치우는 걸 깜빡한 거구요... 이런 승강이가 이어졌다. 화가 치밀어서 [좋아, 다른 호텔로 가겠소] 하자, [알겠습니다. 그럼 호의로 서비스하지요]. 이렇게 되었다. 뭐가 호의란 말인가 생각하면서 아무튼 방으로 들어가 목욕을 하고, 어찌되었거나 목욕 후의 맥주를 꿀꺽꿀꺽 마셨다. 바로 천국이었다.

 

그런 다음, 마쓰무라군과 둘이 산책이라도 나갈까 하고 호텔 로비에 내려갔더니, 로비 기둥에 반고양이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반고양인 어디로 가야 볼 수 있을까요?] 마쓰무라군이 묻는다.

[글쎄, 어쩌면 좋지?. 고양이가 길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을 리도 없고] 라고 내가 말하는데,

마치 일본어 회화를 이해라도 한 듯, 아까 그 프론트맨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실례지만 아까부터 이 반고양이 포스터를 보고 계시더군요. 이 고양이에 흥미 있으십니까?]

있다고 우린 대답했다.

[그렇다면요, 실은 내 사촌이 이 근처에 있는데요, 그 사람이 반고양이를 기르고 있거든요. 괜찮으시다면 안내해드리지요]

어딘가 수상쩍은 이야기였다. 이 사나이가 그다지 친절한 인간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뭔가 뒤가 구린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돈으로 해결될 일일 수도. 돈을 조금 쥐어주고 반고양이를 만나 사진을 찍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사나이는 [좋습니다, 30분 뒤에 여기서 만나지요, 그 사촌이 있는 곳으로 안내할게요] 한다.

30분 후에 로비로 가니 사나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먼가 묻자, 아니 바로 가까이다, No problem 이라고 대답한다. 확실히 가까웠다. 똑바로 두 블록 가서 오른쪽으로 꺾자 그곳에 사촌의 집이 있었다. 사촌의 집은 융단점포였다. 옳거니, 융단을 팔아먹을 심산이렸다. 하지만 그걸 알았으니 이야기는 편했다. 헤로인이나 아편, 하시시를 강매하려는 데 비하면 융단 따위는 죄가 없다. [이곳입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이곳에 반고양이가 있어요].

그런데 고양이는 없었다. 사촌은 30전후의 비교적 인텔리전트한(라고는 해도 반에서라는 이야기지만) 느낌의 사나이로 산뜻한 영어를 구사했다. 몸가짐도 조용하고, 강요하려는 기색은 없었다. 나도 몇 번 터키에서 융단장사와 이야기를 해봤지만, 조용한 융단장사는 처음 봤다.

주인의 사촌이라는 프런트맨은 고양이가 눈에 띠지 않아 약간 당황한 듯했다.

[아까까지 확실히 있었는데] 라고 사촌인 주인이 말한다.

[곤란한데. 나가버린 거 아냐?] 라고 프런트맨이 말한다.

둘이서 의자 밑과 안쪽 방 등을 돌아다니며 살핀다. 주인은 우리에게

[미안합니다. 아무튼 고양이니까 금방 어디론가 가버린답니다. 하지만 바로 돌아옵니다. 새끼고양이니 그다지 멀리는 못가지요] 라고 설명한다. [차이라도 마시면서 기다리시지요]

[이들 연극하는 거 아닌가요?] 라고 마쓰무라군이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입구 곁에 틀림없이 고양이 식사 접시도 있고, 사나이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거기까지 세밀하게 세공하였다면 이건 마치 [스팅]의 세계다. 터키의 융단 장사가 그렇게 까지 수를 쓰고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고양이의 식사 내용은 양고기 삶은 것과, 포테토 라이스(이런 것 고양이가 잘도 먹네)와 핑크색 밀크다. 어째서 밀크가 핑크색인지 잘 모르겠다. 융단장사에게 물었더니 [이건 이런 색으로 되어있어요] 한다.

 

다 큰 어른 남자 네명이 고양이 돌아오기를 멀거니 기다리고 있다는 건 어찌 보면 웃기는 모양새다. 그래서 우린 극히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점포안의 융단을 바라보았다. 만져보니 물건은 확실했고, 이스탄불에서 본 융단집 물건보다 무늬도 좋았다. 값도 저렴했다. 어차피 나도 터키에서 융단을 하나 살 생각이었기에 고양이 이야기와는 관계없이 이것저것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고양이가 돌아왔다. 태어난지 두달이나 석달쯤 된 새끼고양이였다. 새하얗고, 깨끗한 고양이인데, 안아 본 첫인상은 솔직히 말해 [뭐야, 보통 고양이아냐] 였다. 확실히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은 색깔이 달랐다. 털은 복슬복슬했다. 귀여웠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다고 할 물건은 아니었다.

[이름은 나디르라고 합니다] 하고 융단점포 주인인 사촌이 말했다.

[헤엄치나요, 정말로?] 내가 물었다.

[헤엄칩니다. 그럼은요] 라고 그는 확신을 가지고 대답한다. 하지만 이 새끼고양이를 실제로 물에 집어넣고 헤엄치게 해보라고도 할 수는 없다. [헤엄칩니다]고 말하면 그의 말을 신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쓰무라군은 우선 고양이를 촬영했다. 무척이나 애교 있는 고양이로, 촬영하는 동안 융단 위를 구르면서 재롱을 떤다.

나는 결국 융단을 샀다. 그다지 크지 않은 실크와 울로 된 융단으로 상당히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차이를 마시면서 15분 정도 느긋하게 교섭을 한 결과 가격은 약 9만엥 정도로 낙착되었다. 융단주인은 융단을 포장하고 나는 아메리칸 엑스프레스로 대금을 지불했다. 그리고는 융단점포 주인과 악수하고 헤어졌다.

 

이 이야기의 교훈 -이라고 할 정도의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반에 갈 계획인 분들을 위해 결론 같은 것을 쓴다면, 반 거리의 호텔 프론트맨은 누구든 빠짐없이 어딘가의 융단점포와 연결되어있다는 점이다. 그 후에 만난 프론트맨은 한결같이 내게 융단점포의 네임카드를 건네줬다. 이 거리에서 이곳이 가장 양심적이고 신용할 수 있는 융단점포니 가보시면 좋을 겁니다, 라고 그들은 매우 열심히 권하는 것이다. 같은 호텔 안에서도 담당자에 따라 각기 제휴하고 있는 융단점포가 달랐다. 그들은 어떻게 봐도 그다지 열심히 호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데, 반면 융단점포 알선에 대해서는 실로 놀랄 만큼 부지런했다. 호텔 일이 부업이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들 정도다. 어쨌거나 일급 호텔이라는 것에 비해서는 화장실 물이 밤새도록 좔좔 새고 있었고, 방에는 전화도 없고, 온수는 거의 나오지 않고, 종업원 태도는 나쁘고, 형편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산책하고 있으면서 알아차린 점인데, 융단점포에는 반고양이가 꾀나 많다는 것이다. 반 거리의 융단점포 진열장이나 점포 안쪽에는 곧잘 반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개중에는 진열장에 가둬 논 것 까지 있었다. 손님을 끌기 위한 것이리라. 고양이에 흥미를 느끼고 관광객이 발길을 멈추면 안으로부터 주인이 나와, 자 어서 안으로 들어 오세요 라고 말을 붙인다. 그리고는 차이든 뭐든 내놓으며 고양이 이야기를 꺼내고, 그러면서 융단을 펼쳐 보인다. 진정한 손님맞이 고양이다. 이곳 거리의 사람들은 관광객을 보면 그저 융단 강매 생각밖에는 나지 않는 모양이다.

어찌되었거나, 유감스럽게도 반 고양이의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