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村上春樹)의 21일간 터키 일주 (9)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호바(Hopa)

호바는 흑해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30킬로 정도 더 가면 소련 국경, 앞으로는 더 이상 호텔이 없다. 이곳에는 5,6개의 호텔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같다. 대동소이. 비슷비슷. 호텔이라기보다는 간이숙박소라는 쪽이 훨씬 가깝다. 우리가 묵은 곳은 비교적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되는데, 값은 1인당 300엥 정도였다. 개실에는 닳아서 나무판처럼 되어있긴 했어도 엄연한 담요도 있었다. 한 칸 넓이로, 천정에서 맨 전등이 늘어져있다. 베드에 누워 맨 전구를 바라보면서, 인간은 나약하고 인생은 유한이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호바는 그런 식으로 사람의 기분을 애달프게 만드는 마을이었다.

 

들창으로 해변에 만들어진 조그만 유원지가 보였다. 해 저무는 하늘을 배경으로 관람차가 마치 차압된 물건처럼 쓸쓸하게 우뚝 서있었다. 빙글빙글 도는 로봇 같은 것도 있다. 사격장, 포장마차. 싸구려 유원지에 있어야 할 것들은 대충 갖추어져 있었다. 어느 것이나 튀는 색깔로 칠해져있다. 그 너머는 그저 뿌연 회색빛 망망대해 흑해였다. 필경 여름 저녁에는 어느 정도 활기찰 것이고, 흥겨운 음악도 울려 퍼지리라. 하지만 지금, 초가을 흑해의 해질 무렵에 있어서는 그저 바라보는 이의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오브제처럼 보인다.

구석 쪽에 유원지를 관리하는 일가가 살고 있을듯한 텐트가 있었다. 안에서 텔레비전을 켜놓은 듯, 푸른빛이 가물가물 흔들리고 있었다. 음식을 만드는 냄새도 났다. 텐트 둘레를 닭이 갈곳을 잃은 듯 신경질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필 이런 곳에 이런 닭이 생겨났을 때 도대체 어떠한 기분이 들까 문득 생각한다. 그딴 것 생각해봤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 호텔의 프런트는 슬픈 얼굴을 한 젊은 남자였다. 로비는 2층에 있고(1층은 차이하네로 되어있었다), 중년 남성 두 명이 비닐 소파에 앉아 서울 올림픽의 텔레비전 중계를 보고 있었다. 복싱이었다.

저녁때 이곳 로비 베란다에 앉아 밖을 보고 있었더니 프론트 청년이 차이를 가져다 줬다. 로비 구석에 가스 곤로가 있기에 그것을 사용하여 또 냉국수를 만들었다. 청년이 신기하듯 보고 있기에 마츠무라군이 한 그릇 주니 먹고 나서 무척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연한 노릇이다. 일본인이라도 냉국수를 양념장에 적시지 않고 그냥 먹으면 맛있을 리 없지.

 

호텔에 종업원용 방은 없는 듯, 이 청년은 밤이 되자 자기 집으로 갔다가 아침에 다시 돌아왔다. 그건 상관없는데, 그가 갈 때 밖에서 입구를 잠그는 것이다. 튼튼한 문이고 튼튼한 자물쇠였다. 그러니까 우리 숙박객들은 밤 열시부터 아침 8시 정도까지는 호텔에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나는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조금 산책이라도 하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불가능하여 침대에 드러누워 플라나리 오코너의 단편을 읽으면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런데 만약 불이 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아침에 방에서 커피를 끓여 빵을 먹었다. 그리고는 특별히 볼 것도 없고 할 일도 없어 낚싯대를 들고 제방 끝까지 갔다. 평온한 일요일 아침이어서 그 지방 사람들도 모두 제방에 앉아 한가로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낚싯줄을 보고 있자니 파도는 없어도 바닷물의 흐름이 의외로 강함을 알 수 있었다. 뭔가 커다란 걸 낚아 튀김이라도 해먹자 하고 위세 좋게 말하면서 시작했으나, 이게 전혀 낚이질 않는거였다. 우리는 일본에서 가져온 훌륭한 릴 달린 낚싯대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런 것을 사용하고 있는 건 우리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대 없는 릴낚시였다. 그런데도 모두 꽤 낚아 올리고 있다. 잡히는 건 겨우 프라이 밖에는 할 수 없는 작은 물고기였는데, 가끔 공미리 비슷한 것도 올라온다. 물이 맑아서 물고기 떼가 발밑을 헤엄치는 게 보일 정도다. 공미리 배가 때때로 아침햇빛에 바짝 빛났다.

 

너무 오래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는 걸 보다 못한 근처 아저씨가 우리 쪽으로 와서 올바른 낚시법을 가르쳐준다. 우리가 빵과 치즈를 짓이겨서 먹이로 쓰는 걸 보고, 그런건 안 된다고 하면서 자기 먹이를 나눠줬다(몇 번이나 되풀이 하지만 그들은 정말 친절하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건 물고기 살이었다. 살을 껍질 채 칼로 작게 잘라 그것을 낚싯바늘에 꽂는다. 껍질이 무척 딱딱해서 쉽사리 뜯어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고기 꼬리를 잘게 잘라 그걸 말아서 먹이로 쓰고 있었다. 아저씨에게 고맙다 하고는 다시 한 시간 쯤 낚싯줄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먹이는 교묘하게도 둘레만을 뜯어 먹는 듯, 물고기는 한 마리도 걸리지 않았다. 모두들 동정해줬지만 걸리지 않는 거야 어쩌겠는가.

 

그보다는 제방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아저씨그룹과, 근처에서 헤엄치고 있는 소년그룹과의 싸움을 보고 있는 쪽이 재미있었다. 아이들이 모여들면 아저씨들은 낚시를 훼방 놓아서는 안된다고 소리친다. 아이들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고 계속 헤엄친다. 이 마을에서는 낚시와 헤엄치기 밖에는 할 일이 없는 것이다. 하긴 젊은 사람들은 모두 다른 지방으로 나가고 싶어 할 수 밖에 없겠다 싶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빵집 주인이나 복덕방주인이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린 2두신 정도 있으면서 한 마리의 물고기도 낚아 올리지 못했다. 그래도 일오일의 흑해를 바라보면서 느긋이 햇볕을 쪼이는 건 매우 기분 좋은 일이었다.

호바를 마지막으로, 이제부터 당분간은 바다를 볼 수 없게 된다. 몇주 후가 될는지 모르지만 다음에 보는 바다는 지중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