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슈사쿠(遠藤周作)의 "용기 있는 말" 중에서 (1)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젊었을 때 엔도슈사쿠(遠藤周作)라는 작가를 꽤 좋아했는데, 이 책을 받아본 순간

잊었던 옛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습니다.

서두에 이런 글이 올려있더군요.

[명령에 의해 동서의 명언 격언에 대한 해설을 시도하는 엄청난 난행을 하게 되었는데,

학창시절 한문 시간에는 졸기만 하던 사람이라, 이른바 정통적인 해설은 될 리 만무하다.

독자도 따라서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기 바란다]

* 젊어 보이십니다, 라고 한다면 나이 들었군, 이라는 뜻으로 생각하라.

명언이나 격언이라고 이르는 것 중에는 기분 나쁜 게 많이 있다. 그것을 입에 담은 사람의 마음이 가난스럽게 느껴지는 때도 있다. 언뜻, 재치 있는 말처럼 보이지만 품성 없는 자신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위의 말은 미국 수필가가 한 것인데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타인의 칭찬에 솔깃하지 말라는 소리일 수도 있고, 남이 칭찬하는 걸 믿고 들뜨지 말라는 소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늙은이를 보고,

혈색이 좋으신데요’ ‘건강해 보이십니다’ ‘무척 젊어 보이십니다

라고 연하의 사람이 말했다면 그건 호의를 담은 발언이다. 설령 그것이 아부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서는 비웃음일 경우도 있지만) 예의를 벗어난 말은 아니다.

그럴 때, 기쁜 듯이 싱긋 웃는 할아버지와, ‘, 이건 내가 나이 먹었다는 뜻이로군이라고

생각하는 노인과, 우리는 어느 쪽을 좋아하게 될까?

말할 것도 없다. 기쁜 듯이 싱긋 웃는 할아버지다. 젊은 사람의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그 말을 듣자마자

이건 내가 늙었다는 뜻이구나라고 느끼는 노인은 아직 머리가 둔해지지 않았을는지는 모르되 수양이 덜 된 것처럼 느껴진다. 다시 말해 나이에 걸맞는 마음의 여유, 관대함이 약간 부족하다고나 할까.

이러한 노인과 함께 생활을 한다고 치자. 무척 신경 쓰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저렇게 말하면 이렇게 느끼지 않을까 하고 젊은이는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젊은이에게 신경을 쓰이게 하는 늙은이는 그 자체가 수양 부족이다.

 

영리하게 나이 먹는 비결은 무엇보다도 젊은이에 대해 관대해지는 것이며, 용서해주는 것이며, 때론 바보가 되어주는 것이리라. 위의 말을 배앝은 미국의 수필가는 영리하게 나이를 먹는 재주를 염두에 두지 않는 남자임이 틀림없다. 인간이 다른 한사람의 인간을 신뢰하는 일이 진정한 지혜라고 생각한 적이 없음이 틀림없다.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일본의 인텔리 속에는 이러한 발상을 하는 타입이 적지 않은듯하다. 사람의 말 속에는 반드시 뒤가 있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근대적 지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걸 느꼈어도 싱긋 웃을 수 있는 게 노인의 수양이라는 것이다. 위의 말 속에는 몹쓸 근대주의 냄새가 푹 푹 풍긴다.

 

<편집자 주> 작가님이 갑자기 왜 이 말을 이렇게 곡해했는지, 편집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우리로서는 작가가 말하는 대로 필기한 것입니다.>

 

* 좋을 땐 여자, 나쁠 때도 여자

출전이 불분명한 격언이다. 이것저것 찾아보았으나 어느 책에 쓰여 있는지, 누가 말했는지 알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출전 불분명한 격언은 꽤 예리한 구석이 있다. 왜냐하면, 전쟁 이후의 여성들 중에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여자를 주장하고, 불리할 때도 여자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성은 예를 들어, 회사에서 월급에 남녀 차별을 둔다면서 화를 낸다. 또는 회사에서 남자만 소중히 여기고 여자는 부당한 취급을 받는다고 화를 낸다.

그녀의 화는 올바르다. 확실히 요즘 회사에서는 남녀에 대해 차별대우를 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입사하는 동성의 대부분이 남성과는 달리 그 회사와 운명을 함께할 기분이 아니라 결혼하기까지의 자리로서 입사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다. 회사측에서도 그렇게 곧 그만둘 것처럼 보이는 여성사원을 마음속으로부터 의지할 맘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상사로서도, 시집갈 때까지의 사회견학이거나, 보다 좋은 남성을 찾으려 입사한 여성사원을 자신의 오른팔로 만들자, 후계자로 키우자 하는 기분이 들지 않음은 당연하다. 현재 일본회사에서는 확실히 남녀의 대우에 차를 두는데, 거기에는 남자의 에고이즘에 의한 것과 함께 여자의 어설픔도 원인이 되는 게 확실하다.

그러한 현실에 눈을 돌리지 않고, 남성횡포에 대해 화를 내는 여성은 대체로 불리할 때에도 여자를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이런 여성과 식사를 하러간다고 치자. 별로 이쪽에서 함께 가자고 한 것도 아닌데, 남자는 여자에게 사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다 먹고 나면 휙 음식점에서 나가버린다. 남성이 근데, 남녀동등이면 더치페이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말을 한다면 큰일이 난다. 저 사람은 남자인 주제에 여자를 감싸주지 않는 인색한 사람이야. 여성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멍청이야 라고 뒤에서 흉을 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전후의 여성 중에는 (모두는 아니다) 자기에게 유리할 때는 남녀동등권을 주장하고, 불리할 때는 여잔 약하거든요하고, 이처럼 나눠 쓰는 사람이 많은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나눠 쓰는 교활함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성의 지위향상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모른다. 일반적인 남성들이 그런 점에 정떨어지고 불평도 갖게 되어 여성의 지위향상에 비협조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남성의 일반적 불만을 나타낸 것이 이 [좋을 때는 여자, 나쁠 때도 여자] 라는 격언으로, 이 격언을 만든 사람은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편집부 주> 편집부에서도 출전을 조사했습니다만 알 수 없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이라거니 처칠수상이라는 설도 들었으나 믿을 수 없구요. 이바야 벤다산씨라고 하는 설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