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村上春樹)의 21일간 터키 일주 (4)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우린 점심때가 되면 눈에 띄는 빵가게 앞에서 차를 세우고, 갓 구운 따끈따끈한 빵을 사서 (화덕 앞에서 구워내는 것을 잠시 기다리는 정도가 최고다), 그 근처에 앉아서 그것을 뜯어 먹었다. 버터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고, 없어도 문제없다. 가까이에 야채가게가 있으면 신선한 토마토나 치즈를 사서 함께 먹었다. 이거야말로 최고의 성찬이다. 때로는 그 빵을 들고 차이하네에 들어가 차이를 주문해 마시면서 빵을 먹는다. 원은 그런 짓 하면 안되겠지만, 외국사람이기 때문인지 별로 뭐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차이가 엄청 싸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싸다. 예를 들어 학카리 근방의 파슈카레라는 땅 끝처럼 황량한 멋없는 거리 (‘셰인에 나오는 프론티어 타운의 멋대가리 없는 느낌이 닮았다)에서 커다란 뜨끈뜨끈한 빵을 사고, 옆의 차이하네에 들어가 차이를 두잔씩 마신다. 빵과 차이의 값은 잊었지만, 양쪽 합쳐 약 28엔이었다. 나츠메소세키(夏目漱石의 소설 가운데 그건 값이 아닌데하는 대사가 있었던 걸 기억하고 있지만, 이건 그야말로 값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값은 싼 값의 전당 터키에 있어서도 압도적이긴 했어도.

 

터키를 여행하고 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차이하네에 들어가게 된다. 잠깐 휴식하는데 편리하고, 게다가 터키에 있으면 자연히 차이가 마시고 싶어지는 것이다. 몸이 차이를 요구한다. 어쩌면 기후 탓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나라에 가도 조금 오래 있으면 그런 식으로 기호가 변하는 경향은 있다. 하지만 이태리를 여행하면서 바르에서 에스프렛소가 마시고 싶어지는 것 보다도,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그리스 커피가 마시고 싶어지는 것 보다도 훨씬 우리는 차이에 끌렸다. 차이의 마력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우린 뭔가 구실이 있을 때 마다 그럼, 잠시 이 근처에서 차이를 마실까라는 터키식 습관에 바로 물들어버렸다. 어딘가의 마을에 도착하면 우선 차이를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면 차이를 마신다. 산책 도중에 차이를 마신다. 운전을 교대할 때 차이를 마신다. 식사 후에 차이를 마신다.

 

차이의 값은 장소에 따라 각각 다르나 대체로 평균 한잔에 10엔정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잔 마시면 아무리 오래 있어도 상관없는 모양이다. 일본의 찻집과는 달리 매우 마음 편한 곳이다.

차이하네는 기묘한 곳이다. 터키 속의 차이하네에는 거의 모두 건국의 아버지로 국민적 영웅인 케마르 아타체르브의 초상이 벽의 가장 좋은 장소에 걸려 있다. 그런데 차이하네에 모인 사람들은 국가의 도움이 될 만한 훌륭한 일을 좀처럼 일으키지 않는다.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두 가지 행위뿐이다. 곧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노름 이야기다. 도대체 무엇을 해 먹고 사는 사람들인지 불분명한데, 나잇살이나 먹은 어른이 아침부터 차이하네에 진을 치고 앉아 트럼프를 하거나 터키식 마작을 하거나 궁시렁 궁시렁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남자밖에 없다. 손님도 종업원도 전원 남자다. 이곳에 여자가 들어오거나 하면 바로 화제가 될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린 이방인인 셈인데, 어느 시골 차이하네에 들어가도 별로 싫은 얼굴은 하지 않는다. 그리스의 시골 카페니온에 가면 때때로 그곳에 진을 치고 있는 그 지방 아저씨들이 매우 차가운 눈으로 흘겨보는 수가 있는데 (특히 그리스의 관광지에서는 관광객용 카페와 그 지방 주민용 카페가 뚜렷하게 나뉘어져 있는 경향이 있어, 그걸 잘못 알고 들어가면 분위기적으로 난처해 진다), 터키에서는 그런 일이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시골이면 가게 주인이 신기하게 여기면서 차이를 한잔 더 서비스하기도 한다. 옆 테이블 손님이 사주기도 한다. 터키인은 대체적으로 친절하다. 다만 후자인 경우 예상대로 이야기가 길어질 우려가 있어, 호의는 호의로서 받아들이고, 가능한 한 피하는 편이 현명하다.

 

나는 마츠무라군이 촬영에 나가있는 동안 곧잘 이 차이하네에서 터키식 마작이라는 걸을 구경했다. 그건 중국식 마작과 브리지의 중간쯤 되는 놀음이다. 숫자는 계산용 숫자로 1, 2, 3, 4, 라고 씌여있고 13까지 있다. 패는 도미노 패 정도의 크기로, 종류는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의 4색으로 나뉜다. 이것을 2단의 목제 카드락에 쌓아 자기 앞에 놓는다. 그리고 장에 쌓아 놓은 패를 하나 집어와 자기것과 바꾼다. 마작과 비슷하다. 그러나 버린 패를 자꾸자꾸 쌓아놓기 때문에 지금까지 무엇을 버렸는지 모른다. 세세한 부분은 잘 모르는데, 아무튼 한사람이 패를 갖춰 놓으면 게임이 끝난다. “허허허, 미안하군” “젠장, 졌네, 좋은 패였는데와 같은 분위기도 일본의 마작과 같다. 화를 내면서 패를 내던지는 버릇 나쁜 사람도 개중에는 있다. 점수봉은 없고, 기록계가 득점표에 기입을 한다. 이것도 브리지와 같다. 필시 조금은 돈을 걸고 있을 것이다. 그런 걸 차이를 한잔 더 마시면서 끝도 없이 하고 있다.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나 이외에도 뒤에서 질리지도 않고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하고 있는 짓은 어디나 대체로 비슷한 것이다.

가만히 보고 있었더니 일본에도 이런 게임이 있소?’ 하고 묻는다. ‘있소라고 대답하니 무척 기쁜 모양이다. 왠지 한번 해보라고 할 것 같아 서둘러 차이 값을 치루고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터키까지 와서 마작 같은 거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차이는 작은 글라스에 나온다. 글라스 밑에는 접시가 놓여있다. 스푼도 달려있다. 글라스는 처음에는 손으로 들 수 없을 만큼 뜨겁다. 그것을 조금 식혀서 마신다. 글라스에 뜨거운 홍차를 담는다니 불합리하지 않은가 처음에는 생각했다. 그런데 글라스에 담긴 뜨거운 홍차는 익숙해지니 무척이나 아름다운 색깔이었다. 바닥 쪽에 차 잎이 조금 가라앉아 있다. 나는 설탕을 넣지 않고 마시는 걸 즐긴다. 향긋하고 상큼한 맛이 난다.

아이스티라는 건 보지 못했다. 터키에서는 상당히 더워 땀을 흘리는 때에도 역시 이 뜨끈뜨끈한 차이가 이상하게도 맛이 있는 것이다. 그다지 차가운 것을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늘로 들어서서 훅하고 숨을 내쉬고는 따뜻한 차이를 마신다.

차이는 물론 원래는 그냥 홍차다. 그런데도 차이는 차이이고 홍차는 아닌 것이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다. 차이는 차이 맛이 나고, 홍차는 홍차 맛이 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