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 春-皮千得 봄-피천득   -   번역 [飜譯]/韓日飜譯 [한일번역]

                                      

         

                                                 春

                                                                       皮千得

人生っぽの. 絨毯かれていない階段. 阿呆のようにぶつぶつしつつかせながらやって こんなった詩人がいる.

四月無惨った詩人もいる. らは贅沢たちだのような凡俗人

びる.

 

ればてるだけでもくなる.

くちゃをしてかい陽射微笑みながら見上げるとがりそうになる.

時期になるとさがってくるようなじがする.

 

音楽彫刻いてみるなどわれたさを

かいまることがある. 文學をなりわいとするびのつは文章じて青春

足跡だけでもめれることであるだがよりもまずさをすような

たせるのは

 

ったさをしながらってみるのはれた愛人うよりうれしいことだ

れたったかせこけたかつにだったらいウールジャケットのように

ぐにゃりとれているかそれとも満面朱色っているだろう

さはることしいりし愛人からは幻滅じてもった

さからはだれもがない未練

 

ねるとのあせりや苛立みなどから解脫安定すると

この安定とは無気力からるすべての物事して無関心をよそおう言葉

くなった知性感受性するしいりの言葉いてはプラトンも案山子

なるのだどれほどれた智慧さにはてない

 

人生40からという言葉人生40までという言葉のことは

らないけれどもんだ小説主人公93パーセントが40未満人物だった

それ40からは余生であろう40だと人生しかしえをえればさほど

短くもなさそうだ

 

蝶先立たせて子供たちの昨年現れたではない

ったつばめがまたってくるとうがそのつばめのでどれぐらいが

ってられるだろう

 

キーツがいたナイチンゲールは4千年前にカトゥルスが異域のトウモロコシ

しつついたではないかったからこそ不死鳥というやかな言葉

使ってみただけだやナイチンゲールの生命より人生何倍

 

タンポポやスミレが躑躅連翹杏子またライラック

マスクローズが々とこのような40享受することは些細祝福では

ないしかも40したにもれるというのはにしあわせなことである

 

びた心臓でもがほとばしるのをずるしいものをえないにもきらびやかな

ショーウィンドーはびをえてくれるはたとえ青春ったとしても

ビザンチン王宮幽閉されているましがりはしない

ああているづく

 

                                               봄 

                                                               피천득

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 이러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렇게 읊은 시인도 있다.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같이 범속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빛 속에 미소를 띠우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날아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 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 발자취라도

젊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젊음을 다시 가져 보게 하는 것은 봄이다.

 

잃었던 젊음을 잠깐이라도 만나 본다는 것은 헤어졌던 애인을 만나는 것보다

기쁜 일이다. 헤어진 애인이 뚱뚱해졌거나 말라 바스러졌거나 둘 중이요 남자라면

낡은 털 자켓같이 축 늘어졌거나 그렇지 않으면 얼굴이 시뻘게지고, 눈빛이

혼탁해졌을 것이다. 젊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아름답다 지나간 날의 애인에게 서는

환멸을 느껴도 누구나 잃어버린 젊음에게서는 안타까운 미련을 갖는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의 초조와 번뇌를 해탈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은 무기력으로 부터 오는 모든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무디어진 지성과 둔해진 감수성에 대한 슬픈 위안의 말이다. 늙으며 플라톤도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지혜 도 젊음만은 못하다.

 

인생은 40부터라는 말은 인생은 40까지 라는 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들은 93%가 사십 미만의 인물들이다. 그러니 사십부터는 여생인가 한다.

40년이라 면 인생은 짧다. 그러나 생각을 다시하면 그리 짧은 편도 아니다.

 

나비 앞장세우고 봄이 봄이 와요하고 부르는 아이들의 나비는 작년에 왔던

나비는 아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지만 그 제비는 몇 놈이나

다시 올 수 있을까?

 

키츠가 들은 나이팅게일은 4천 년 전 루스가 이역 강냉이 밭 속에서 눈물 흘리며

듣던 새는 아니다. 그가 젊었기 때문에 불사조라는 화려한 말을 써 본 것이다.

나비나 나이팅게일의 생명보다는 인생은 몇 갑절이 길다.

 

민들레나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40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적은 축복은 아니다.

더구나 봄이 40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것이다.

 

녹슬은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건을 못 사는 사람에게도

찬란한 쇼윈도우는 기쁨을 주나니, 나는 비록 청춘을 잃어버렸다 하여도 비잔틴

왕궁에 유폐되어 있는 금으로 만든 새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아아 봄이 오고 있다. 순간마다 가까워 오는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