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나날 속에서' - 타치하라마사아끼(立原正秋)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수년 전 일이다. 아타미(熱海)의 한 미술관에 볼일이 있어 후지사와(藤澤)에서 쇼난(湘南)전차의 특별 칸에 타려고 하는데 입구에 여고생들이 잔뜩 서 있었다. 특별칸의 입구는 홈에서 오르는 입구와, 그리로 들어가 다시 특별칸으로 가는 입구로 되어있는데, 입구와 입구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있다. 거기 여고생들이 서있었다.
[좀 비켜주겠소?] 라고 했는데 아무도 움직이려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비집고 들어갔더니, 그 순간
[왜 내 몸을 만지는 거야] 욕설이 날아왔다.
난 그 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엷은 화장에 립스틱은 꽤 진하게 칠해져있었다.
[미안하오] 하고 나는 차 안으로 들어갔다. 빈자리에 앉고 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만약 남고생이었다면 홈으로 끌고 내려와 때려눕혔을까 하고 생각해봤지만, 그건 실제로 일어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저 여자아이의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은 어떻게 된 것인가 생각해봤지만 그것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쇼난전차 안에서 이 여고생과 만난 건 봄이었는데, 그 해 가을에 나는 또 한번 이 아이와 만났던 것이다. 그날 나는 오후 2시에 후지사와역앞에서 편집자와 만나 원고를 건네주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다. 나는 책방에 들러야 해서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그런데 책방에서 쇼핑을 한 다음 약속한 커피점에 들어갔더니 편집자가 올 때까지 20분 정도 시간이 남아있었다.
건너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았을 때 난 그 때 그 아이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나와 그 아이 사이에는 등을 맞댄 의자가 4개 있었지만 빈자리였기 때문에 그 아이와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청바지차림이었으나 그 아이에 틀림없다. 내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통로 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 그 아이가 내 앞 자리로 와서, 놀지 않을래요? 라고 작은 소리로 말을 붙였다.
[그쪽 여고생이지?]
나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지만 물어봤다.
[아무래도 상관없잖아요. 어떻게 여고생인줄 알아요?]
[내겐 그쪽보다 몇 살 위인 딸이 있기 때문이야. 게다가, 어느 봄날 이곳 역에서 하행 전차에 탔을 때도 그쪽과 만났지. 특별 칸에서]
그러자 그 아이는 한동안 나를 바라보고 있더니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자리에 놓인 레인코트를 들고 커피점에서 나갔다. 나는 그 봄날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날 약속한 편집자는 [예술신조] 편집부의 야마카와미도리씨였는데, 이 날 내가 미도리씨에게 그 아이 이야기를 했는지 어쨌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전후의 일본 교육은 미국군 점령 정책에 의한 프라그마티즘(pragmatism 실용주의) 교육으로 구성되었다고 해도 틀림은 없으리라.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외부인인 나로서는 판단이 안 선다. 프라그마티즘 교육을 제창한 사람은 미국의 철학자 듀이였다. 그는 인간을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응용철학를 제창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목적가치가 없이 수단가치만 있었다. 왜 수단가치만이 전후교육의 주류가 되어 왔는가.
거리에서 여고생을 만나면 그 아이가 떠오른다. 이제는 사회인이 되어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대학에 들어갔을까. 흘러가는 나날 속에서 만난 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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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타치하라마사아키의 팬인줄 안 일본 친지가 수필집 [冬の花l를 보내준 것이
언제였던가... 책꽂이에서 눈에 띄기에 훑어보다가 한 꼭지를 번역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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