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브라 수도원] 하루키(村上春樹)의 그리스 기행문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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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거나 배가 고파졌기에 그 분기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마슈가 건네준 야채를 썰어 콘비프와 함께 오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아까 물통에 담아온 차가운 물을 꿀꺽꿀꺽 마신다. 편집자 O군이 ‘와아, 이렇게 맛있는 콘비프를 먹는 건 난생 처음이다’ 한다. 몸이 몹시 피곤한데다 한동안 육류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통조림 콘비프가 무척이나 맛있게 느껴진다. 말 그대로 몸속으로 스며드는 듯하다. 마슈의 야채도 매우 신선하여 달고 맛있었다. 토마토 같은 건 대지의 양분을 몽땅 빨아들인듯한 맛이 난다. 오늘은 O군의 33회째 생일인데, 그렇게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니 나로서도 매우 기쁜 일이었다. 길을 헤맨 보람이 있다고도 하겠다. 땀으로 흠뻑 젖은 셔츠를 벗어 말리는 동안 그 근처에 누어 눈을 감고 한동안 새소리를 듣는다.
20분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한 뒤에 마음을 다잡고 출발했다. 여전히 오르막 내리막의 고원 길이 한없이 이어진다. 다행스럽게도 날씨는 좋았다. 때때로 아토스산에 구름이 걸리지만 예의 불길한 비구름은 아니다. 선명한 하얀 구름이었다. 결국 목적지인 라브라 수도원에 도착한 건 저녁 5시가 넘어서였다. 아침 7시부터 거의 10시간 동안 걷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힘든 하루였다. 역시 다리가 아팠다.
라브라에서는 루크미와 커피와 우조라는 예의 3점 세트가 나왔다. 게걸스럽게 루크미를 먹었다. 그 단맛이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행복했다. 이 젤리과자를 입 속에 넣으면, 기분 좋게 단맛이 몸 전체 세포에 까지 스며드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런 매일이 지속되다가는 루크미광이 될것만 같다. 커피도 맛있다. 우조도 맛있다. 로마의 리스토란테 맛 같은 건 어느새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우리가 라브라수도원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태리사람들 같이 보이는 단체가 우르르 들어왔다. 종교적 단체인 듯, 로마 가톨릭 수도승이 14,5명의 단체를 인솔하고 있었다. 필경 같은 수도승으로서 아토스의 모습을 견학하러 왔거나 어쨌거니 했으리라. 그런데 이 스님이 라디오카세트를 지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 라디오카세트에는 로사리오가 매달려 있고. 무엇을 먹고 있는지는 몰라도 무척이나 혈색이 좋았으며, 가끔씩 큰소리로 칵칵칵 웃는다. 같은 수도승이라고 해도 아토스와 로마는 대단한 차이가 있는 듯, 까마귀 무리 중의 백로처럼 눈에 띤다. 이태리인이란 대개가 단체로 행동하는데다 아무래도 잘 떠드니까 어디에 있어도 금방 알 수 있다. ‘케 베로(좋은데)’ 라든가 ‘베닛시모(최고)’ 라든가 ‘체르토(참으로)’ 라든가, 아무튼 시끄러워 견딜수가 없다. 느낌에 이 사람들은 버스로 이곳까지 온듯 했다.
그 중에 무슨 연유인지 폴란드 청년이 한사람 섞여있었는데, 이 남자는 이태리인 집단에 상당히 질려있었는지 친근하게 우리 쪽으로 다가왔지만 이쪽도 취재로 바쁘기 때문에 제대로 상대 해주지를 못했다. 이태리인 단체 같은데에 섞인 게 잘못이다. 나도 한번 마르타섬을 여행할 때 이태리인 단체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땐 정말 지옥이었다.
라브라에서는칼라카르와는 달리 정교도도 이교도도 함께 식사를 한다. 넓은 식당에 다 함께 모여 기도를 들으면서 저녁을 먹는 것이다. 식당 오른쪽에 수도승 테이블이 있고, 왼쪽에 순례자 테이블이 있다. 맨 끝에 기도를 올리는 스님 테이블이 있고. 테이블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 매우 트렌디한 느낌이었다. 아자브(麻布)의 바에 가져가도 좋아하지 않을까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정식 저녁식사라는 것이 묘해서, 기도를 올리는 동안 빨리빨리 먹어야 했고, 게다가 지금은 먹어도 좋고, 지금은 안된다는 등의 규칙이 까다로왔다. 상당히 힘들다. 조금만 틀려도 같은 테이블의 순례 아저씨가 무섭게 째려본다. 하지만 우린 신앙심도 없고, 무엇보다 허기가 져 있었기에 우적우적 먹어댔다.
메뉴는 야채 스튜(콩 가지 호박 고구마 양파 피망)와 페다 치즈(산양 치즈였다)와 빵(이건 어제의 칼라카르 쪽이 맛있었다), 그리고 와인! 난 이 와인이 눈에 들어오자 정말 기뻤다. 후라스코에 든 진한 색 백포도주가 테이블 한가운데에 떡하니 놓여있었다. 글라스에 따라 마셔보니 매우 이상한 맛이 났다. 그리스에서 실로 많은 종류의 와인을 마셔봤지만 이건 그 어느 것하고도 결정적으로 차이가 났다. 우선 약간 단맛이 난다. 그런데, 그건 이른바 달콤한 와인 맛이 아니라 찌르는 듯 독한 단맛이었다. 그리고 전체적인 경향으로 볼 때, 원시적인 브랜디 맛에 가까운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와인이다. 어쨌거나 묘한 맛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걸 마셨을 때 틀림없이 맛없다고 느낄 것이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건 맛이 변질되어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때 참 맛있구나 생각했고, 그 맛을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혀끝이 아니라 몸이 그 맛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아토스산에서 만들었다는 와인을 사서 마셨는데, 이쪽은 별것 아닌 평범한 와인이었다.
헌데 난 그 와인을 실컷 마실 수가 없었다. 두잔 째를 따르자 맞은편에 앉은 근엄한 얼굴의 순례자 아저씨가 내 얼굴을 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왠지 자꾸 따라서는 안되겠구나 싶어졌다. 그래서 유감스럽게도 석잔 째는 따를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유감천만인 일이다.
식사가 끝날 무렵에 수박을 그득 담은 그릇이 나왔다. 식사가 끝났으니 그럼 디저트를, 하고 O군이 수박 한입을 먹었을 때 기도가 끝났다. 그리고 O군이 두입 째를 먹으려고 하자 순례 아저씨가 무서운 눈으로 ‘안돼!’ 라고 한다. 그래서 O군은 생일날인데도 불구하고 수박을 겨우 한입밖에 먹을 수가 없었다. ‘참 맛있었는데요’ 라고 그는 약이 오르는 듯 말했다. 기도가 끝나는 타이밍과 디저트 나오는 타이밍이 너무 접근해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수도승은 익숙한 듯 그 간격을 누비며 착실하게 모두 수박을 먹고 있었다. 과연 프로들이었다. 탄복했다. [아토스산 미슐란]에서는 이 라브라수도원의 키친도 상당한 점을 획득할 것으로 생각된다. 스튜도 맛있었으며 와인이 나온 것도 좋았다. 다만 디저트 내놓는 방법은 서비스면에서 감점 대상이 되리라. 그리고 빵도 조금 더 노력했으면 한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 내일의 식료로 나는 테이블 위의 남은 빵과 치즈를 재빨리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왔다. 이곳 식당 사람들은 모두 매우 바쁜 듯하여 ‘내일 아침 일찍 떠나니 식품을 조금 나누어 주셨으면 하는데요’ 라고 말을 꺼낼 분위가가 아니었다. 그러기는커녕 규칙이 까다로운 듯, 내가 식품을 주머니에 재빨리 넣고 있으니까 모두 무척 언짢은 얼굴을 했다. 친절한 칼라카르의 마슈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하지만 주위에서 좋지 못한 얼굴을 한다고 해서 단념할 수는 없다. 식료라는 건 우리에게 있어 사활문제인 것이다. O군도 겨우 틈을 봐가지고 수박을 쓸어왔다. 이 사람은 시종 수박에 집착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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