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브라 수도원] 하루키(村上春樹)의 그리스 기행문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아토스에 온지 사흘째. 친절했던 칼라카르 수도원을 뒤로 하고 그란데ㆍ라브라(Grande Laure) 수도원으로 향한다. 이 근방부터 길이 점점 험해진다. 아토스의 산허리를 한 바퀴 도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길은 다리운동 같은 것이었는데. 하지만 고맙게도 하늘은 맑게 개어있었다. 하이킹하기에 좋은 날이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게 있어요” 라고 카메라맨 마츠무라군이 말한다. 이 사람은 평소 미소만 지을 뿐 그다지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인데, 입을 열면 꽤나 근원적인 의문을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 승려들은 그런 형편없는 식사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살이 쪘다는 겁니다. 고양이들 까지도 비쩍 말라있던데요”
그러고 보니 배 나온 승려를 꽤 많이 본 기억이 난다. 혈색도 나쁘지 않았다. 매일 그런 변변찮은 음식을 조금밖에 먹지 않고, 하루하루의 노동도 힘들 터인데 어째서 살이 찌는 걸까? 조식(粗食)과 운동은 다이어트의 기본이다. 그런 생활을 몇 년씩 계속하고 있으면서도 살이 찐다면, 다이어트 같은 건 온 세계에서 깨끗이 자취를 감춰야 하지 않겠는가. 잘 모르겠다. 신의 정원 아토스반도에 있어서의 커다란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였다. 어쩌면 나이 들면 살찐다는 것이 이 지방 사람들의 인종적 특질인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건 그들은 그저 경향적으로 살이 찌게 되어있어 뚱뚱한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어디에선가 몰래 영양보충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논하면서 산길을 걷고 있는 동안 진흙탕 위의 커다란 발자국을 발견했다. 개 발자국과 비슷하되 개 치고는 약간 큰 것 같다. 체중도 상당히 무거운 듯, 발자국이 지면에 깊숙하게 콱 찍혀있었다. 아무래도 비가 그친 뒤 무엇인가가 무리지어 산길을 이동한 듯싶었다. 그것도 우리가 가고 있는 곳과 같은 방향으로 향해 나있었다. 어쩌면 늑대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들개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또 한동안 논의했다. 헌데 --잘 모르지만-- 늑대와 들개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걸까? 필경 AC/DC와 모터헤드(록 밴드) 정도의 차이도 없는 게 아닌가? 어쨌거나 그런 것들과는 별로 얽히고 싶지 않다. 되도록 날이 저물기 전에 수도원 문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그란데ㆍ라브라까지는 상당한 거리였다.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해안을 따라 갔다. 해안을 따라 간다고는 해도 해안선은 대부분 절벽과 같은 것이어서 오르내리기가 상당히 힘들다. 열시반쯤 녹초가 되어 주저앉아서 물을 마시고 크래커를 먹은 다음 다시 산을 올랐다. 그런데 아무리 올라가도 고개를 넘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지도를 보니 훨씬 전에 고개를 넘었어야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해도 시간이 너무 걸렸고, 아무리 생각해도 오르막길이 무척이나 길게 이어진다. 컴퍼스f로 미루어 우리는 예정한 루트를 벗어나서 아토스산의 정상을 향해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확신 할 수 없다. 의논한 결과 어떠한 표지든 나타날 때 까지 걸어보기도 했다.
12시, 우리들이 완전히 뻗어버릴것 같았을 때 3명의 나무꾼 일가를 만났다. 산비탈의 나무를 채벌한 뒤, 그걸 당나귀 등에 싣고 아랫길까지 내리고, 그곳에 쌓아놓은 다음, 한데 모아 산기슭까지 나른다는 것이다. 나귀는 모두 6,7마리가 있었다. 나무꾼 일가는 아버지와 다 큰 아들과 조그만 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조그만 개가 있었다. 미크로라는 이름이라고 아이가 일러준다. 일본어로 말하자면 [꼬마]라는 느낌이다.
우리들이 “그란데 라브라로 가려고 하는데요” 라고 말하자, 전혀 다른 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길 잘못 들었소. 이 길은 어디로도 가지 않소”. 요컨대 이 길은 재목을 잘라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듯 했다.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돼요, 한참 내려가면 [그란데 라브라] 라는 표지판이 나오니, 거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되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우린 주의하면서 걸어왔지만 그런 걸 보지 못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토박이가 그렇게 말하니 어쩌는 수 없다.
그들도 마침 점심시간인 듯, 우리와 중도까지 함께 산길을 되돌아 내려왔다. 나귀 등에 재목을 잔뜩 부뜰어매놓고, 엉덩이를 두드려 앞서 가게 한다. 그 뒤로 우리가 천천히 걸어간다. “어디서 왔소?” 아버지가 묻는다. “일본에서요” 라고 대답하자 왠지 잘 모르는 얼굴을 한다. “어떻게 왔소?” 하고 묻기에 “비행기” 라고 말하자, 셋이 얼굴을 마주보며 “비행기라네” 한다. 비행기 탄 것쯤 가지고 감탄하는 걸 우린 처음 보았다. 놀랄만한 곳에 왔구나 실감했다.
이 일가는 아르네아라는 마을에서 돈을 벌러 온 모양이었다. 아저씨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로 그 아르네아 마을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아, 이 근처요” 하면서 손가락으로 그 위치를 가리킨다. 지도에 아르네아 마을은 올라있지 않았다. 훨씬 북쪽의 드라마라는 마을(난 옛날에 그 근처를 버스로 여행한 적이 있다. 드라마라는 마을은 압도적으로 드라마틱하지 않은 마을이었다) 가까이였다. 그 곳에 또 3명의 자식이 있다고 아저씨는 자랑을 한다.
“한달동안 여기서 일한 다음 아르네아로 돌아가지” 그리면서 빙끗 웃는다. 요만큼 알아듣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나의 그리스어가 형편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입이 무거운 사람이었다.
그들은 아마도 아래쪽에 잠잘 곳이 있는 듯, 점심은 도중에 있는 오두막 임시 거처에서 드는 모양이다. 기둥을 세우고 온실처럼 둘레에 비닐을 쳤을 뿐인 곳이었다. 오두막 곁에는 샘물이 있는데, 그게 무척이나 차갑고 맛있었다. 나무꾼 부자가 그 물로 커피를 만들어 준다. 아이는 자키 첸의 팬이라고 한다. 그리스에서의 자키 첸 인기는 말도 못할 만큼 압도적이다. 로버트 드니로와 톰 크루즈와 해리슨 포드가 다발이 되어 덤벼도 당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사람들이 다니는 영화관에는 아마도 필름값이 싼 홍콩영화 정도 밖에는 들어오지 않으리라.
커피를 마시고 다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그리고는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다음 우리는 출발했다. 길을 한참 내려가자 확실히 [그란데 라브라] 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었다. 우리가 기진맥진해서 열시반쯤 주저앉아 간식을 먹으면서 휴식한 바로 그 지점이었다. 필경 지나치게 피로하여 휴식해야하겠다는 생각뿐이라 놓쳐버린 모양이다. 그 때 우리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그 표지판은 사각이었던 것이다. 아아, 이렇게 또 세시간 정도를 허비해버렸다. 이런 짓을 계속하고 있다가는 밤중이 되어도 수도원에 도착하지 못하고, 늑대나 산개와 함께 노숙을 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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