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론 수도원] 하루키(村上春樹)의 그리스 기행문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이비론 수도원]

이비론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스타브로니키타에서 이비론까지는 해안을 따라가는 비교적 편안한 길이었다. 아무런 문제없이 우리는 다섯시에 스타브로니키타를 출발, 한시간 정도로 그곳에 도착했다. 간단했다. 영어로 흔히 말하는 [A piece of cake] 같은 느낌이다. 뭐 아토스라고 해야 별거 아니네, 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야 이 불손함의 보복을 톡톡히 받게 된다. 길섶의 바다는 아름답고 조용했다. 잠깐 쉬면서 헤엄을 치고 싶었으나 그럴수는 없다. 이곳은 성스러운 땅이며 신의 정원이기 때문에 벌거벗고 바다에서 헤엄을 치는등의 일은 삼가해야한다.

 

수도원에 도착하면 그곳이 어느 수도원이건 우리는 우선 [아르폰다이] 라는 사무실에 가야 한다. [아르폰다이]라는 건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순례계-숙박부]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수도원의 승려는 종교적인 의무 이외에도 일상적인 다양한 노동이 할당되는데, 순례자를 접대하는 것도 그런 노동 가운데 하나로, 담당 승려가 확실하게 정해져있었다. 그들이 방문자에게 다과를 내오거나 침대를 준비하거나 한다. 이건 무료였다. 반도에 들어 설 때 일인당 2천엔 정도의 돈을 카리에 사무실에 내는데, 그것만으로 모든 게 커버되는 것이다.

 

여하튼 이브론은 커다란 수도원이고(반도의 20개 수도원 중 세번째로 크다), 카리에에서도 가까운 탓에 순례자도 많다. 그래서 이곳 아르폰다이에서는 수도원에 고용된 보통 아저씨들이 승려 대신에 실질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승려도 몇 명은 일하고 있으나 너무 일이 많아서 그들의 손만으로는 도저히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리다. 이 수도원도 해안 근처에 있어 역시 성채와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벽이 높고 창이 적으며, 2중으로 된 문은 두껍고 무거웠다. 영화 [장미의 이름으로]의 수도원을 떠올리면 가장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 아르폰다이에 가니 예의 르크미와 우조와, 끔찍하게 단 그리스 커피가 나왔다. 나는 또 르크미를 절반만 먹었다.

 

아르폰다이의 아저씨가 우리를 방으로 안내한다. 널판으로 된 좁은 검소한 방에, 이것도 역시 검소한 침대가 여섯개 나란히 놓여있었다. 창이 하나 나 있는데, 이 창으로 수도원의 밭과 뒷산이 보였다. 오션 뷰(ocean view)였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런 사치까지 바랄 수는 없다.

이 방에는 우리 이외에 그리스인 아저씨가 한사람 묵고 있었다. 이 사람은 피곤한지 말이 없는 성격인지 저쪽을 향해 벌렁 누운 채 움쩍도 하지 않는다. 석유램프가 하나 벽에 걸려있다. 물론 이 계절에는 불을 넣지 않는다. 난로 속에는 담배꽁초가 하나 박혀있었다. 누군가가 이곳에서 담배를 피운 모양이다. 방 안에서는 금연인데, 그리스사람 중엔 헤비 스모커가 많으니, 아마도 참을 수 없었으리라 추측한다.

 

담당 아저씨가 이미 식사시간은 끝났지만 배가 고프면 특별히 뭘 만들어 주리다라고 말한다. 물론 배가 고팠다. 우유 이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까. 어두운 부엌 같은 곳에서 식은 콩 스프와 올리브 열매 절인 것과 딱딱한 빵과 물을 내왔다. 맛있느냐 묻는다면 별로 맛이 없다고 밖에 대답할 수 없으리라. 빵은 굳어서 씹을 수 없었고 시큼했다. 하지만 배가 고팠기 때문에 불만은 있어도 고맙게 먹었다. 다른 선택지는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시중드는 아저씨는 선원이었던 사람으로 일본에도 몇번 가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스 여행을 하고 있으면 하루에 한번은 이런 사람과 만난다. 그리스에는 참으로 선원 출신이 많다. 하지만 선박 불황으로 그들은 모두 배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웨이터를 하거나 버스 차장을 하거나 선박 목수일 을 한다. 또는 이런 식의 수도원 잡역 일을 하고 있었다.

 

해가 지기까지의 반시간 가량 우리는 수도원 정원을 산책했다. 마츠무라군은 사진을 찍고, 나는 어슬렁어슬렁 거닐면서 메모 대신 적당히 스케치를 한다.

이비론이라는 이름은 고대 이베리아(코카서스 남부)에서 왔다. 이 수도원의 창설자가 이베리아에서 온 승려였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토스 수도원의 절반쯤은 정교를 믿는 다양한 나라(거의는 동구라파)로부터 기증되었거나 설립되었다. 그리고 각 나라의 문화나 양식에 따라 수도원의 빛깔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비론 수도원 안에는 여러 개의 예배당이 있다. 창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끼워져 있는데, 이태리나 독일 교회의 정교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에 익숙한 눈에는 무섭도록 소박하게 보인다. 세공도 단순하고 형태도 단조롭다. 게다가 여기저기 깨진 채 보수도 되어있지 않다. 보수되어있는 것도 그저 간단히 깨진 부분에 보통 유리를 끼워 넣은 정도다. 황폐해 있다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손질이 미치지 않았다는 느낌은 들었다. 아마도 그다지 여유가 없는 모양이다. 러시아나 동구의 정교국도 모두 공산화되어, 수도원에 대한 경제적 원조도 끊기고 있다. 그래도 차분히 가라앉은 수도원 정원을 해질 무렵 혼자서 산책하고 있자니 그 소박한 광경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스며든다. 이 단순함과, 손질이 안된 풍경에 익숙해져 무척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서구 사원의 보란듯한 빈틈없는 장려함은 솔직히 말해 때론 질리게 되는데 이곳에는 그게 없었다.

이 시간은 승려들의 휴식시간이기도 한 듯 정원 구석에 삼삼오오 모여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늘 작은 소리로 조용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웃을 때도 가만히 미소 짓는다. 예배당 이외에도 작은 당()이 여러개 있어 담당 승려가 무슨 준비를 하는 듯 하나하나 돌아본다. 기다란 막대 같은 기구로 당의 램프에 불을 붙인다. 정원 여기저기에는 겨울을 대비한 통나무가 높이 쌓여있었다.

그렇게 땅거미가 조용히 지표를 덮어나간다.  

우리는 의외로 푹 잤다. 일찌감치 잣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눈을

뜨니 6시반이었다. 어제의 아저씨가 와서 언제까지 자고 있느냐는 듯 우리를 깨웠다. 벌써 예배는 시작되었는데 여태껏 자고 있는 건 불손한 일이다. 아침식사도 끝나버렸다.

우리는 허둥지둥 옷을 입고 예배당으로 향했다. 올려다보니 하늘은 어둡고 불길한 색을 띤 구름이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어제까지의 날씨와는 전혀 다르다. 공기 속의 눅눅한 냄새가 느껴진다. 생각해 보니 유럽에 온 이래 2주 가까이 한번도 비를 만난 적이 없다. 비는커녕 구름이 낀 적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비가 올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아무래도 비의 조짐이다.

 

예배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화려한 승의를 몸에 걸친 고승이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젊은 승려가 번갈아 비잔틴 성가를 낭랑하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한다. 그리스정교는 성가의 반주를 금하고 있다. 조각상도 금하고 있다. 반주가 없는 탓에 일본의 경 읽는 소리처럼도 들린다. 어두운 교회 안에는 촛불이 무수히 켜 있었다.

진지한 얼굴의 순례자들이 차례로 축복을 받고 있다. 순례자들은 이 예배 때 이외에는 교회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이교도이므로 뒤편에 틀어박혀있었다. 사실 그들도 이교도 나부랭이는 넣어주기 싫을 것이다. 그 방면의 그들의 엄격한 종교관본질적인 불관용(不寬容)이라고 해도 좋으리라은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일본의 선사(禪寺)와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종교를 아이덴티티로 하여 역사 속에서 싸우며 견뎌낸 인종인 것이다.

 

한사람의 청년이 특별한 축복을 받고 있었다. 어째서 그만이 그런 걸 받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특별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그는 제단 앞에 무릎 꿇고 있고, 고승이 그 옆에 서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윽고 승려는 옷을 한겹 또 한겹 벗어나간다. 그리고 벗은 것을 청년의 몸에 걸쳐준다. 하긴 제임스 브라운 쇼에서 이런 게 았었지 하는 생각이 문득 난다. 제임스 부라운과 함께 간주하면 화를 낼는지 모르나, 그것도 원래는 가스펠에서 파생되어 발전한 것이므로 감각적으로는 같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어찌되었건 상당한 쇼-업이었던 건 확실하다. 청년은 보기에도 긴장한 상태로 축복을 받고 있었다. 그 옆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째서 이렇게 그리스인은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표정의 진지함에 따라 그리스인과 이태리인이나 독일인을 구분할 수 있다.(마이크 듀카키스가 좋은 예다). 이태리인이나 독일인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인의 진지함은 그것과 또 다르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는 거의 구슬플 정도로 진지한 얼굴을 하는 것이다. 그건 때때로 나를 어두운 기분으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스런 기분이 들게도 한다.

 

예배가 끝나고 고승이 나가버리자 예배당에 모아놓은 보물이 순례자에게 거룩하게 피로된다. 담당 승려가 열쇠로 캐비닛을 열고, 우리는 한줄로 서서 차례로 경건하게 그것을 감상하는 것이다. 이비론은 아토스 반도 내에서, 이런 보물의 수와 질에 있어서는 1,2위를 다툴 정도로 중요한 수도원으로, [박물관 수도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안되지만 좀 어설픈 수도원이다. 적어도 무투파(武鬪派)의 다이하드적 수도원은 아니다. 아토스의 20개 수도원은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전체공동생산적인 곳이고 또 하나는 좀 더 유연한 개인성을 인정한 곳이다. 후자에 있어서는, 기도는 전원공동이되 식사나 노동은 개인적 재량에 맡기고 있다. 이비론 수도원은 이 후자 쪽에 속한다.

이비론 수도원의 보물은 대개가 종교적 세공물이다. 여러모로 유서 있는 물건 같은데, 나는 이런 종류의 것에는 전혀 흥미가 없어 그다지 고맙다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그 중에 기묘한 모양을 한 금제 약통 같은 게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안에는 사람의 뼈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아무래도 이건 옛날 고승의 뼈 가운데 일부거나 뭐 그런 것 같다. 다른 그리스인들은 그 앞에서 감사하다는 듯 십자를 긋고 있었다.

우리가 그것들은 한바탕 보고 나자 담당 승려가 [그럼 여러분 닫도록 하겠습니다, 으흠] 하는 느낌으로 소중하게 캐비닛 뚜껑을 닫고 찰칵 잠을통을 채웠다. 그리고 당내의 불을 하나하나 불어 꺼나갔다. 이것으로 대단히 격식 높은 아침 의식이 끝난 것이다.

 

그건 어찌되었거나, 우리는 아무래도 아침식사를 놓치고 만 모양이다. 점점 배가 고파왔다. 혹시나 해서 부엌으로 가 아저씨에게 물어보자, 이것만 줄 터이니 우선 먹으라면서 커다란 빵 덩어리를 준다. 우리는 그것을 방으로 가지고 와서 먹었는데 어제보다 훨씬 딱딱해져있어 도저히 먹을 만한 음식이 못되었다. 아이고, 이제부터 매일 이런 빵을 먹어야 하나, 서글퍼졌으나,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건 아토스반도에 있어서는 예외적으로 맛없는 빵이었고, 다른 수도원에서는 훨씬 맛이 있는 빵을 내왔다. 공짜로 식사를 먹여주는데 이런 걸 쓰는 건 마음에 걸리지만, 이비론 수도원의 부엌은 무궁화 없음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유감스런 마음으로 740분에 우리는 배낭을 짊어지고 이 무궁화 없는 수도원을 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