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프니에서 칼리에로] 하루키(村上春樹)의 그리스 기행문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배가 다프니항에 닿았다. 멀리서 보자 그건 어디에나 있는 보통 그리스항이었다. 그런데 가까워짐에 따라 그곳에는 보통이 아닌 몇가지 점이 드믄 드믄 보였다. 우선 첫째로 남자밖에 없다. 여인금지 땅이니 이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로 여자가 한명도 없는 광경을 앞에 놓고 보니 역시 나름대로의 감개라는 걸 느낀다. 항구 주변에는 100명 정도의 인간이 모여 있었는데 전원이 완벽한 남자다. 그리고 그 반수 이상이 승려였다. 그래서 전체적인 광경이 매우 거무스름했다. 드디어 이곳부터가 성역이다.

또한, 여름의 그리스로서는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인데, 이른바 관광객 같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풍채 좋은 중년의 독일인 부부도 없고 캐나다 국기를 꿰매 붙인 간편한 차림의 배낭족도 없다. 물론 여행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상당히 있었다(그들은 30분 전의 페리호로 한 발 먼저 이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거의 전원이 그리스인이다. 그리고 모두 매우 검소한-다시 말해 평균적 그리스인적인-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 각지로부터 먼 길을 마다않고 성스러운 총본산에 순례 온 선남(선녀 없음) 들인 것이다.

 

군중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승려들은 모두 라소라고 하는 예의 풍성한 그리스정교 승의를 걸치고 있었다. 머리에는 생일케이크 같은 모양을 한 둥근기둥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전원이 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었다. 나는 그리스정교에 대해 그다지 잘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수염을 깎는 건 교리에 위배되거나 하는 모양이다. 머리도 모두 길게 길러 그것을 상투처럼 뒤에서 꽉 묶고 있다. 그런 승려의 모습은 그리스 땅 어디서나 일상적으로 보게 되는데, 이처럼 한 곳에 잔뜩 모여 있는 걸 보는 건 처음이다. 더욱이 재미있는 건, 자세히 관찰하니 한사람 한사람의 복장이나 짐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너덜너덜한 라소를 입고 그야말로 허리를 새끼줄로 동여맨 채 목에 자루를 걸친, 다이하드 같은 이른바 무장투사파 승려도 있다. 그건 승려라기보다는 솔직히 말해 거지에 가까웠다. 그런가 하면, 그 곁에는 주름 하나 없는, 세탁소에서 아침에 막 찾아온 듯한 라소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007가방에 선글라스를 낀 트렌디한 여피형 승려도 있다. 그리고 이 두 승려를 양극으로 하여 중간에는 다양한 모양새를 한 승려가 그러데이션(gradation)적으로 점재해있다. 한 곳에 모아놓고 순번으로 죽 늘어서게 하고 싶을 정도다.

같은 하나의 종교이며 게다가 이처럼 좁은 반도 안인데 어째서 이토록 승의의 차가 존재하는지 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깨끗하고 더러운 것만이 아니라 라소의 빛깔 하나를 보더라도 모두 확실하게 달랐다. 엷은 회색에서 부터 진한 보라색에 새카만 색까지 색이란 색은 전부 이것도 그러데이션 적으로 갖춰져 있다. 수도원에 따라 각각 색이 다른 것인지 아니면 급수나 직책에서 달라지는 건지, 나는 판단할 수가 없었다. 승려 가운데에도 빈부의 차라던가, 멋쟁이인가 아닌가, 혹은 무장투사파나 리버럴(liberal) 등이 있는 건가? 하지만 그딴 것 일일이 생각해봐야 아무 소용없으니 뭐 그런 것이려니 생각하고 그냥 납득해버린다.

뭐 그런 것이겠지. (하지만 나중에 안 일인데, 그들은 실제로 한사람 한사람이 다 달랐다. 그들은 각기 속하는 장소에 따라, 혹은 사는 방법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처럼 아토스란 곳은 자신의 삶과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장소다. 따라서 그들이 각각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도 당연한 노릇이다)

 

다프니항에 내리자 우선 패스포트 컨트롤 같은 곳이 있었다. 그곳에 패스포트를 맡긴 다음 수도 카리에로 가는 것이다. 카리에에는 아토스산의 사무국 같은 곳이 있어, 그곳에서 입국심사가 있고, 심사 후에 체재허가증을 받게 된다. 이 허가증이 없으면 아토스산을 걸어다닐 수 없다. 꽤나 까다로운 지역이다.

다프니에서 카리에까지는 버스로 간다. 버스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무시무시하나 일단 달리기는 한다. 아마도 30년 정도는 사용한 게 아닐는지. 자동차도 이만큼 확실하게 사용되었으면 분에 넘쳤다고 해야 될 것 같다. 버스는 통틀어 이것 한대밖에 없었다.

마침 우리들이 도착했을 때 버스가 출발하려든 참이었는데, 좌석이 꽉 차서 탈 수가 없었다. 어떻게 좀 안되겠느냐고 사정을 해 보았지만 여지없이 거절당했다. 그다지 친절한 운전기사라고는 할 수 없었다. 카리에까지 갔다가 돌아올테니 여기서 한시간쯤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덕택에 또 한시간 예정이 늦어진다. 하긴 이 땅에서는 일을 서둘러봐야 별 도리가 없다. 그런데, 급한 사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버스가 출발하려고 할 때 오십 전후의 풍격 있는 승려가 나타나 버스 창문을 쾅쾅 두드리며 [이봐, 태워줘] 라고 한다. 운전기사가 [만원이라 안돼요해도 못들은 체 계속 쾅쾅 두드려댄다. 그러니까 기사도 체념했는지 문을 열고 이 승려를 태워줬다. 눈빛이나 문 두드리는 폼이 거의 막무가내였다. 성직에 있는 인간이 그렇게 해도 되는건가 의아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토지다. 처음부터 이것저것 곤혹스러운 일이 많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 이곳에서 한 시간 기다리기로 한다.

 

다프니항에는 작은 우체국이 있고, 작은 세관사무소가 있고, 작은 경찰 대기소가 있다. 작은 잡화점도 세곳쯤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비상용 식품을 조금 구입하여 배낭에 넣는다. 아토스에 한발 넣으면 세속적인 것은 이제 아무것도 살 수 없으리라 상상했는데 의외로 잡화점에는 대부분의 식품이 갖추어져있었다. 상자는 먼지를 뒤집어 쓴 채였고 통조림은 녹이 슬어 있었으나,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면 물건은 부족함 없이 다 있었다. J&B 위스키부터 싸구려 우조에 이르는 각종 주류, 육류나 생선 통조림, 인스턴트커피, 과자.

아마도 순례하러 온 여행자가 이곳에서 식품을 산 다음 수도원 돌기를 시작하는 모양이다. 수도원에서는 아주 적은 양의 식사밖에 나오지 않으니까 승려들이 이곳에서 뭔가를 사는지 어쩌는지 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찌되었거나 구석에서 구석까지 빈틈없이 금욕적으로 엄격한 토지는 아닌 듯싶었다. 어떤 종류의 함축성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할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인데, 이 반도에는 승려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노동을 하러 오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필수품을 판매할 필요가 있었다). 물통에 물을 넣었다. 반도의 지도도 샀다. 그리고 카페에 들어가 필경 최후가 될 듯싶은 맥주를 마시고, 빵을 먹었다. 그리고 버스가 올 때 까지 항구에서 잠시 선 낮잠을 잤다.

 

항구에는 개 두마리와 고양이가 네마리 있었다. 확인 차원에서 살펴보니 개는 양쪽 다 틀림없이 수컷이다. 뚜렷한 수컷 징표를 갖추고 있었다 당당하게, 그리고 슬프게. 그렇지, 원칙은 틀림없이 지켜지고 있구나. 헌데

고양이의 성별까지는 유감스럽게도 알 수가 없었다. 개에 비해 고양이는 이 땅에서 오랜 동안 진지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듯, 그들은 간단히 내게 성별을 살피게 해 줄 만큼 친절하지 않았다. 게다가 고양이의 암수를 구별하기는 개에 비해 훨씬 어렵다.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벽 위에 고양이들을 한동안 노려보고 있는데 버스가 산을 내려와 돌아왔다. 지금부터 바야흐로 아토스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