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에에서 스타브로니키타] 하루키(村上春樹)의 그리스 기행문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카리에에서 스타브로니키타]

아토스는 풍부한 푸르름의 토지이다. 여름의, 수목이 드믄 붉은 그리스(특히 남부 그리스) 토지에 익숙한 눈에는 이곳 풍광이 무척 신선하게 보인다. 해안에 면한 험한 절벽 부분을 빼면 그 이외는 어디를 향해도 깊은 숲이나 초원 등으로 이어진다.

 

버스는 흙먼지를 날리면서 산길을 올라 등성 너머 저편에 있는 도시 카리에로 우리를 싣고 간다. 수도라고는 해도 카리에는 쥐죽은 듯 조용한 도시다. 도시라는 말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매우 평화로운 마을이라고나 할까. 버스가 정차하는 광장 둘레에 낡은 건물 몇 동이 늘어서있을 뿐이다. 교회가 있고, 종루가 있고, 그리고 몇 개의 잡화점이 있다. 이곳에도 또 개와 고양이가 있다. 인적도 드물다. 가방이나 주머니 같은 것을 든 승려 몇 명이 햇볕을 쬐고 있을 뿐이다. 나를 보자 나이든 승려가 다가와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일본이라고 내가 말하자, 당신은 정교도인가 묻는다. 아니, 달라요 라고 내가 대답하자 종교는 뭔가 물었다. 어쩔 수 없이 불교도라고 대답한다. 무종교라고 대답하면 아토스반도로부터 내팽개쳐 질런지도 모른다. [일본에는 정교 교회가 있소?] 그가 묻는다. 있다고 내가 말하자 (간다(神田)의 니콜라이교회가 그것이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일본이라는 나라도 그다지 구원이 없는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런 대화는 아토스반도를 여행하는 동안 열 번 이상 되풀이된 듯싶다. 거의 한마디도 틀리지 않게 그대로 차례로 이어진다. 어디서 왔는가? 정교파인가? 일본에 정교 교회는 있는가? 요컨대, 그들에게 있어 종교는 그리스정교가 세계의 중심이며 자기존재의 중심이며 사고(思考) 영역의 중심인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있어서의 리얼 월드이다. 그들의 관심은 그곳에서 비롯되어 그곳에서 끝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카리에의 본부사무국이라고 할 수 있는 사무실에서 우리들은 체재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아토스의 땅은 20개의 수도원 교구로 나뉘어져, 자치 중의 자치라고나 할까,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곳 카리에만은 예외로, 이른바 특별구와 같은 느낌으로 존재하고 있다. 각 수도원에서 선거로 뽑힌 승려가 이곳에 모여 [교회평의회]를 구성하고, 반도 전체에 관한 여러가지 법칙을 정한다. 이 제도는 수도원이 창설된 시대로부터 거의 변하지 않은 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원리로서는 매우 민주적인 것이었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무사히 허가증을 받았다. 그리고 비로소 이곳으로부터 수도원 돌아보기 여행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조금씩 시간이 예정보다 늦어진 탓에 이미 오후3시가 되었다. 그다지 멀리는 갈 수 없으리라. 오늘밤 어디서 묵을까를 미리 확실하게 정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각 수도원은 일몰과 동시에 문을 닫아버리고, 한번 받힌 문은 아침까지 절대로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천년 전부터 그렇게 정해져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문을 쾅쾅 두드려도 절대로 열어주지 않는다. 만약 해가 질때 까지 수도원 문에 당도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 근처에서 노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땅에는 수도원 이외에 묵을 장소는 하나도 없다.

지금은 아직 여름이지니까 노숙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식품도 많지는 않으나 굶어죽지 않을 만큼은 준비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동물이다. 이 아토스반도에는 늑대가 나타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처음에 그렇게 주의를 받았다. 밤이 되면 늑대가 나온다고. 그만큼 자연이 손을 대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어있다는 뜻인데, 여하튼 우리로서는 늑대가 나오는 토지에서 일부러 노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지도를 보고 노정과 소요시간을 명확하게 해 놓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선 스타브로니키타의 수도원으로 가기로 한다. 스타브로니키타까지는 두시간 정도의 길이다. 우선 그곳까지 간 다음, 이비론의 수도원으로 가기로 하자. 최초의 하루이고, 벌써 시각도 늦었고, 오늘은 우선 상태를 파악하는 정도로 하자.

우리는 배낭을 짊어지고 스타브로니키타까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후 3시의 햇살은 따가워 땀이 몸속에서 흘러내리지만, 그래도 길 자체는 편했다. 콧노래라도 흥얼거리면서 걸을 수 있을 만하다. 솔직히 카리에에서 이비론까지는 버스도 달리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걸어보기로 한다. 애써 걷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걷자. 기분 좋은 산길이다. 다양한 종류의 새가 숲 속에서 울고, 날아가고, 하늘을 가른다. 길 여기저기에는 꼭대기에 십자가가 붙은 암자 같은 것이 서있다. [숲은 마음의 평온이며 신의 미소입니다. 화재로부터 지킵시다]라고 쓰인 간판이 세워져 있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도중에서 키가 크고 마른 그리스 청년과 동행하게 되었다. 그는 작은 수도 암자에서 타피스트리 만드는 일을 거든다는 것이었다. 아토스에는 수도원 이외에도 여러 개의 그러한 크고 작은 오두막이 있어, 그곳에서 소수의 승려들이 종교적인 공예품을 만들고 있는데, 그는 승려는 아니었으나 정기적으로 그 곳에 가서 제작에 임한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스타브로니키타 수도원에 도착했다. 스타브로니키타는 아토스반도의 스무개 수도원 가운데 가장 작은 수도원이다. 수도원으로 들어서자 왼편에 오래된 석조 수도교가 보였다. 다리를 따라 몇개의 연못이 늘어서있다. 탄탄해 보이는 높은 탑도 보였다. 스타브로니키타 수도원은 해안 가까이에 있어 예로부터 해적의 습격이 빈번하였기 때문에 방어를 철저히 하게 된 모양이다. 확실히 해안 측에서 보면 이건 수도원이라기보다 요새 같다.

수도원에 도착하자 우선 담당 승려가 그리스 커피와 물에 희석한 우조와, 르쿠미라는 단 젤리과자를 내온다. 어느 수도원에 가도 이 르쿠미라는 과자는 반드시 나오는데, 이건 마치 치아가 들떠 턱이 근질근질해질 만큼 달다. 물론 수제여서 각 수도원에 따라 맛은 조금씩 다르되 끔찍하게 달다는 것만은 공통되어있다.

우조는 그리스의 소주 같은 것으로, 알코올 성분이 매우 강하다. 냄새가 강렬하게 코를 찌르는데, 물을 타면 뿌옇게 흐려진다. 그리고 값이 싸다. 어느 편인가 하면 일본인 구미에는 맞지 않고, 나 또한 그다지 즐겨 마시는 건 아닌데, 그래도 몸이 피로할 때는 알코올이 위를 자극하여 편안한 기분이 된다. 커피도 설탕이 듬뿍 들어있어 극단적으로 달다. 우리는 이것을 아토스 3점 세트라고 불렀는데, 알코올과 당분으로 나그네의 피로를 덜어주는 것이 이 3점 세트의 목적인 모양이다. 따라서 이것은 피로하면 할수록 맛있게 느껴진다.

커피와 우조는 고맙게 받아마셨으나, 원래가 단것을 싫어하는 나는 르쿠미는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었다. 미안했지만 한입 베물어 먹고 남겨놓았다. 나중에 길이 험해지고 몸이 점점 피로해지자 빨리 다음 수도원에 도착하여 르쿠미를 먹고 싶다고 까지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건 더 지난 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