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한담 - 스기모토 타케시 저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 3대 테너를 듣고
아무리 애써도 구할 수 없었던 티켓이 뜻하지 않던 곳으로부터 손에 들어와 다녀왔다.
다행이 비도 오지 않은 상쾌한 날씨. 긴 행렬 뒤에 서서 우선 프로그램을 입수했다.

좌석은 무대 바로 정면의 경기장 관중석 7단째로, 보기 편한 A석, 일곱시까지는 30분 이상 남아 프로그램을 읽기 시작하는데, 똑같은 합피(法被)를 입은 에도(江戶)소방단의 사다리 타기와 목도(木遣り)라는 멋진 오프닝 쇼가 벌어졌다.

이윽고, 6월 29일 오후 7시 지나 20분, 국립 카스가오카(霞ケ丘)경기장은 6만명을 넘는 사람을 집어삼킨 채, 늘어선 코린트식 원주와 야자잎이 살랑대는 무대만이 조명 속에 부각되면서, 정적이 주위를 지배한다. 그 곳에 나타난 지휘자 레빈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 번스타인의 [캔디드 서곡]이 오늘밤의 시작은 이것밖에 없다는 듯 울려 퍼졌다. 피가 끓었다. 어둑어둑한 하늘빛, 구름 모양이 무대를 돋보이게 한다.

서곡이 끝나자 곧바로 첫번째 연주자 호세 카레라스가 나타나 "아를르의 여인"의 [페데리코의 탄식], 이에 질세라 도밍고가 [별은 빛나건만]. 파바로티는 [마마]. 청중의 감격은 박수 소리에 그대로 나타난다. 두 바퀴 돌자 숨 쉴 새도 없이 메들리가 이어지고, 순식간에 제1부가 끝났다.

제2부는 [의상을 입어라] [아무도 잠자지 않고]. 결코 저렴하지 않은 입장권, 잠 든 사람은 없었으리라. 그리고 또다시 [돌아오라 소렌토로] [문 리버] [셀리트린드] 등등의 메들리. 큰  병을 앓고 났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싱싱한 카레라스의 목소리, 하이C뒤에 사라질것만 같은 소리를 들려주는 파바로티, 두사람에게 저서는 될말인가, 늘 뒤치다꺼리 잘하는 도밍고.

앙코르는 셀 수 없이 이어졌다. 특히 [강물이 흐르듯(川の流れのように)]에는 가슴 뭉클한 사람이 적지 않았으리라. 마지막은 스탠딩 오베이션. 헤어짐을 아쉬워하면서 무대도 객석도 손을 흔들고, 박수는 그칠줄을 몰랐다. (1997년 6월)

* 로텐부르그의 음악회
타우버강을 눈 아래 두고, 4월 끝 무렵의 푸르름 속에 숨쉬고 있는 옛 중세 거리 가운데, 흰 바탕에 검정으로 인쇄된 VACH KONZERT 포스터를 발견했을 때, 그 날짜가 바로 오늘이라는 데 깜짝 놀랐다. 장소를 보니 성야곱교회로 되어있었다. 곡목은 물론 모두 바하로, 첫번째가 부활제 오라토리오, 다음이 브란덴부르그 협주곡 제4번, 그리고 마지막이 칸타타 제137번 [주여 찬양하라]였다. 모든 곡이 바하라는 것, 게다가 요즘 즐겨 듣던 칸타타 두개가 들어 있다니 얼마나 행운인가. 게다가 이번 여행은 음악회가 전혀 예정에 들어 있지 않았기에 더욱 기쁨이 컸다.

회장은 호텔 바로 앞에 있는, 리멘슈나이더의 조각 [최후의 만찬]으로 유명한 교회이다. 시간은 오후 8시. 호텔 아이젠후드에서의 모처럼의 저녁식사를 중도에 마치고 교회에 도착한 것은 8시 5분전이었다. 입장료 14마르크, 일본 엔으로 약 2천엔 이니 참 싸다. 들어서자 약간 어두컴컴한 교회 안은 이미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맨 뒷줄에 있는 긴 나무의자의 빈자리에 앉아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깊숙한 교회 정면에는 합창대와 오케스트라 연주자, 그 앞에 독창자 4명이 서 있고, 좌우의 의자에도 청중이 가득했다. 오르간연주자는 가려져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때 같은 긴의자에 왼쪽으로 조용히 들어온 여성 2명이 있었다. 무심히 그 쪽을 보니 놀랍게도 오늘 낮, 근처 레스토랑 옆자리에 앉아있어 이야기를 주고받던 H양과 U양이 아닌가. 상대편도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음악회는 이제 시작되려는 참, 한두마디 낮은 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앞을 향했다. 넓은, 그리고 사람으로 꽉 찬 교회도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해졌다.

문득 수년 전, 벨르린필을 인솔한 카라얀의 연주회 때의 정숙함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과는 약간 다른 조용함이었다. 또한, 자주 갔던 메지로(目白)의 도쿄카테드랄 성마리아 대성당에서의 오르간 리히터 때, 마리 크레르 아란 때, 그리고 마태수난곡 때의 일들이 생각났다. 그 때와 좀 더 비슷한 느낌이었다. 뭔가 기도를 올리는 듯한 긴 침묵이었다. 시간과 장소를 잊게 하는 한때가 지나자 오라토리오가 시작되었다.

흔히 연주회에서 나는 박수소리는 없었다. 그게 맘에 들었다. 심포니에 이어 테너와 베이스가 노래하는 2중창, 그리고 합창, 늘 레코드로 듣던 뮨핑거 지위의 슈트트가르트 실내오케스트라 바로 그 곡이었다. 그 칸타타가 지금 내 귀에 울리고 있는 것이다. 음악의 기쁨을 절절히 느낀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시인 오자키(尾埼喜八)씨의 문장에, 이 곡에 대한 것이 있었던 것 같아 찾아보니 틀림없이 있었다. [음악을 향한 사랑과 감사] 가운데 상세히 이 곡에 대해 적혀 있었다. 그 문장의 구절을 조금 인용한다.

[팀파니를 거느린 트럼펫이 리듬을 새기며 행진하는 휘황한 알레그로와, 오보에와 현악기가 끊임없이 아름다운 명상적 선율을 연주하는 아다지오로 이루어지는 제1곡의 장려한 심포니는, 그대로 이 성담곡(聖譚曲)의 마음을 이야기하고도 남음이 있는 서주(序奏)이다.  그것은 주님의 부활이라는 뜻하지 않은 길보에 대한 신도들의 광적인 기쁨과, 묘지로의 돌진, 그리고 눈물에 젖은 조용한 감사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알레그로의 주제를 그대로 이어받아, [오라, 빨리, 달려라, 그대들의 신속한 두다리여, 예수가 묻혀 있는 구덩이로 가라]라고 서로 부르면서 달리는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의 테너와 베이스 2중창에, [너희들을 구원하는 주님이 소생하면, 웃음과 기쁨, 마음을 떠나지 않으리니] 하고 즐겁게 노래하는 신도들의 합창이 꽃다발처럼 더해지는 제2곡은, 앞서 말한 심포니와 함께 이 대칸타타의 이른바 안목이라고도 받아들일 수 있다. 야곱의 어머니 마리아가 노래하는 제4곡의 소프라노와, 베드로가 노래하는 제6곡의 테너, 막달라 마리아가 노래하는 알토, 이 3곡의 아리아는 하나하나가 매력이 넘치고 아름답다....]

이 음악회의 이틀 후, 뮨헨에서 만난 게르하르트 휴슈씨 - 젊었을 때 이 사람의 [겨울 나그네]를 듣고 얼마나 감동했었던가 -  에게, 이 곡을 로텐부르그 교회에서 청취했다고 전하자 휴슈씨도, 그래요, 이 곡은 환상적이죠. 참 다행이었군요, 라고 말하던 것이 생각난다.

이 날, 낮에는 따뜻했었는데 밤이 되자 점점 추워졌다. 거의 모두가 두터운 오버코트를 입고 있었다. 물론 난방은 없다. 추위가 몸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음악이 그보다 더 따스하게 전신을 감싼다. 약 50분간의 곡이 길게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끝났다. 이어지는 곡이 브란덴부르그 협주곡이었지만 몹시 춥다. 이 대로는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겠고, 여기서 병이 나면 모처럼의 독일 여행이 시작하자마자 물거품이 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2곡 째는 건너뛰기로 하고, 호텔로 돌아가 옷을 껴입고 그 위에 바바리코트를 걸친 다음 교회로 되돌아갔다.

3곡 째는 칸타타 27번 [힘찬 영광의 왕인 주를 찬양하라]. 합창으로 시작하여 알토가 노래하는 아리아, 소프라노와 베이스의 이중창으로 이어졌다. 바하가 오르간을 연주하고, 지휘했던 성 토마스교회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와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바하를 이처럼 가까이 느낀 적은 없었다.

바하 콘서트는 어느틈에 끝이 났다. 곡이 끝나고 한동안 적막이 흘렀다.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중은 확실히 시간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퍼뜩 정신이 든 듯, 잠에서 눈을 뜬 듯, 박수가 쏟아져나왔다. 깊은 꿈에서 현실로 되돌아 온 듯한 느낌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꿈이 아니었고, 곁에는 H양과 U양이 앉아있었다. 얼굴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으면서 서로 고개를 끄덕인다.
좁은 출구를 통해 조용히 사람들의 물결에 몸을 맡긴 채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슬비에 젖어 어슴푸레 빛나는 오랜 돌길을 걸으면서 감동을 서로 나누었다. 서툰 독일어였지만 마음은 통한 것 같았다. 좋은 음악을 듣고 난 뒤의 고조된 마음은 각별하다. 이 근처에, 낮에 괜찮게 보이는 와인켈러를 보아 두었는데 잠깐 들르겠느냐고 했으나 선뜻 응하지 않는다.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와서요" 라고 한다. 마침 밤 열시에 그곳에서 동행인 G씨와 만나 한잔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면서 한번 더 청하자, 그럼 잠깐만이요 하면서 동의하는 것이었다.

헤른갓세의 호텔 근처 지하에 있는 그 집에 내려가니 이미 G씨들이 와 있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낸다. 서로를 소개하고 G씨에게 낮에 만난 H양들과 교회에서 우연히 만난 이야기를 했다.
곧 와인으로 건배. 처음에는 독일어로 "Prosit!", 다음엔 일본말로 "칸빠이!". 말랐던 목에 백포도주는 참으로 맛이 있었다. 위의 점막에 촉촉이 젖어 들어간다. 그것이 식은 핏줄을 데워, 잠시 잊고 있던 한기를 말초혈관으로부터 쫓아낸다. 아코디언을 켜면서 노래하는 아저씨도 환영의 신호를 눈과 표정 그리고 멜로디로 보내 준다. 두사람 가운데 H양은 케른에서 공부하는 대학생, U양은 그의 사촌으로 가족과 함께 멕시코에 가 있는데, 이번 휴가로 독일에 와 둘이서 독일 국내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젊은 불론드의 H양은 술에 약한 듯 포도주에 볼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그래도 조금씩 핥듯이 마시고 있었다. 은발의 U양은 알코올에 강한 듯 빠르게 양이 줄어간다. 나의 사촌이 외교관으로 지금 멕시코에 있다고 말하자 찾아가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물론 되고말고요"

취기가 돌자 모두 익숙지 못한 언어도 매끄러워져서, 음악 이야기, 악기 이야기, 여행이야기 등 화제가 끊이질 않는다. 아코디언은 차례로 그리운 노래, 귀에 익은 곡들을, 때론 노래를 섞어서, 때로는 노래 없이 연주만 한다. "Trink trink Vruderlein trink" 혹은 "로렐라이" 등 우리들 요청에 응하면서 음악은 끝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틈에 열한시반을 넘어, U양과 H양은 "당케셴"을 되풀이하고, 우리들도 "아우피더젠"을 반복하면서 작별을 고했다. 우리는 바로 돌아가기가 아쉬워, 그 뒤에도 한동안 아코디언연주자까지 끼어 어제의 뉴른베르크 이야기, 음악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와인 후의 와인블랜 맛 또한 각별했다.

열흘간의 독일 여행에서 귀국한 뒤의 한 달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어느날, 많은 다이렉트메일에 섞여 베이지색 봉함편지가 배달되었다. H양으로부터의 편지였다. 거기에는 독특한 서체로, 우송해 준 사진에 대한 감사의 말과 함께 앞으로 또 독일에 오면 꼭 알려 달라고 쓰여있었다.       (1980년 6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