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HK의 [지금부터 피아니스트] - 스기모토 타케시 저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 NHK의 [지금부터 피아니스트]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지 약 두 달이 되었을 무렵 NHK에서 표제의 영상물이 방영되었다. 이에 대한 글을 PC의 멜로포럼 6번회의실에 올리자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다.
상세한 내용은 생략하는데, 나이 들어 피아노를 시작한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그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발표회를 정성스레 화면에 담은 것이었다. 그것이 숙년 층에 놓인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는 점을 게시판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보다 연상인 사람들도 악보를 확대하고, 천천히 연주하는 등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도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니면 이제 앞으로는 없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뭔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누를 길이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평균율1번의 절반은 악보 없이 칠 수 있다. 그것이 나의 피아노를 향한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내게는 재즈를 피아노로 연주하고 싶은 어처구니없는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난 악보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
* 재즈에 도전하다
한 책방의 악보 코너를 드려다 보니 적지 않은 재즈 악보가 갖추어져 있었다. 나는 당장 그다지 페이지가 시커멓지 않은 것으로 몇권 구입했다. CD가 부착되어 있는 것도 있어 시험적으로 그것도 샀다.
돌아와서 쳐보니 의외로 재즈 느낌이 난다. CD의 반주 첨부가 그럴듯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의욕을 북돋아준다. 피아노선생의 어드바이스를 바탕으로 계속 연습하자 그런대로 재즈다워졌다.
무심히 음악에 대해서는 프로인 PC 동료 Y씨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매해 열리고 있는 라이브 대회가 곧 있으니 거기서 데뷔연주를 하시지요, 반주는 내가 비브라폰으로 연주할게요" 라고 권하는 바람에 엉겁결에 응하고 말았다.
큰일났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화살은 활에서 떠난 뒤이다.
그때부터 8월의 그날을 향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엘렉톤도 클래식도 당분간 휴업이다.
* 재즈 데뷔일
그날은 한여름의 무더위였다. 게다가 팔월 15일이다. 설마 내가 여태껏 살아남아 재즈를 연주할 줄이야....
곡은 실수를 되도록 덜하기 위해 [맥더 나이프]와 [갈색 작은 병]을 선택했다.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연주해보는 그랜드 피아노. 음은 과연 우리 집 것하고는 차원이 다르게 맑고 부드러웠다. 먼저 와 준 Y씨와 처음으로 음을 맞춰본다. 나중에, 그렇게 긴장하고 있는 얼굴은 처음 보았다는 말을 들었다.
아는 사람들이기는 해도 30명 가까운 청중?, 첫곡은 無我之境이 아닌 無我無中이었다. 작은 실수는 있었지만 모든 연주를 무사히 끝내자 안도의 한숨과 함께 몸 안의 힘이 죽 빠진다. 참고 있었던 맥주가 꿀맛이었다.
손님들의 박수는 나의 만용에 대한 격려로 받아들였다. 이 날이 인생을 마감하는데 앞서 도전하는 피아노 연주의 스타트이다. 마음이 가벼워지자 다음 날부터 신곡으로 향했다. 이번 숙제는 클래식을 악보 없이 치는 것이다.
엘렉톤도 지금까지 고생한 비제의 [진주잡이]를 겨우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선생에게 배운지 반년이 된다. 서툴어도 칭찬해주는 것이 좋은 약이 되고 있나보다. 새로운 악보를 찾는 즐거움과, PC로 친한 친구에게 소리를 보내는 것을 낙으로 삼으면서 연주를 계속하자고 결정한 세 번째 도전이었다. (2000년 10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지 약 두 달이 되었을 무렵 NHK에서 표제의 영상물이 방영되었다. 이에 대한 글을 PC의 멜로포럼 6번회의실에 올리자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다.
상세한 내용은 생략하는데, 나이 들어 피아노를 시작한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그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발표회를 정성스레 화면에 담은 것이었다. 그것이 숙년 층에 놓인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는 점을 게시판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보다 연상인 사람들도 악보를 확대하고, 천천히 연주하는 등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도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니면 이제 앞으로는 없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뭔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누를 길이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평균율1번의 절반은 악보 없이 칠 수 있다. 그것이 나의 피아노를 향한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내게는 재즈를 피아노로 연주하고 싶은 어처구니없는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난 악보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
* 재즈에 도전하다
한 책방의 악보 코너를 드려다 보니 적지 않은 재즈 악보가 갖추어져 있었다. 나는 당장 그다지 페이지가 시커멓지 않은 것으로 몇권 구입했다. CD가 부착되어 있는 것도 있어 시험적으로 그것도 샀다.
돌아와서 쳐보니 의외로 재즈 느낌이 난다. CD의 반주 첨부가 그럴듯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의욕을 북돋아준다. 피아노선생의 어드바이스를 바탕으로 계속 연습하자 그런대로 재즈다워졌다.
무심히 음악에 대해서는 프로인 PC 동료 Y씨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매해 열리고 있는 라이브 대회가 곧 있으니 거기서 데뷔연주를 하시지요, 반주는 내가 비브라폰으로 연주할게요" 라고 권하는 바람에 엉겁결에 응하고 말았다.
큰일났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화살은 활에서 떠난 뒤이다.
그때부터 8월의 그날을 향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엘렉톤도 클래식도 당분간 휴업이다.
* 재즈 데뷔일
그날은 한여름의 무더위였다. 게다가 팔월 15일이다. 설마 내가 여태껏 살아남아 재즈를 연주할 줄이야....
곡은 실수를 되도록 덜하기 위해 [맥더 나이프]와 [갈색 작은 병]을 선택했다.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연주해보는 그랜드 피아노. 음은 과연 우리 집 것하고는 차원이 다르게 맑고 부드러웠다. 먼저 와 준 Y씨와 처음으로 음을 맞춰본다. 나중에, 그렇게 긴장하고 있는 얼굴은 처음 보았다는 말을 들었다.
아는 사람들이기는 해도 30명 가까운 청중?, 첫곡은 無我之境이 아닌 無我無中이었다. 작은 실수는 있었지만 모든 연주를 무사히 끝내자 안도의 한숨과 함께 몸 안의 힘이 죽 빠진다. 참고 있었던 맥주가 꿀맛이었다.
손님들의 박수는 나의 만용에 대한 격려로 받아들였다. 이 날이 인생을 마감하는데 앞서 도전하는 피아노 연주의 스타트이다. 마음이 가벼워지자 다음 날부터 신곡으로 향했다. 이번 숙제는 클래식을 악보 없이 치는 것이다.
엘렉톤도 지금까지 고생한 비제의 [진주잡이]를 겨우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선생에게 배운지 반년이 된다. 서툴어도 칭찬해주는 것이 좋은 약이 되고 있나보다. 새로운 악보를 찾는 즐거움과, PC로 친한 친구에게 소리를 보내는 것을 낙으로 삼으면서 연주를 계속하자고 결정한 세 번째 도전이었다.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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