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겐 환상 - 북구 이야기 <스기모토타케시 저>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 베르겐 환상
어떤 종류의 전신마비약은  꿈을 꾸는 약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있다. 그 꿈은 다양한 색채를 띄고 있어, 마치 땅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무서웠다는 사람이 많지만 즐거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 당시의 정신상태에 따라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취에서 깨어난 사람에게 꿈의 내용이 이러이러하지 않았는가 물으면, 어떻게 아느냐고 놀란다. 수면제나 안정제의 일부에도 꿈을 잘 꾸게 하는 것이 있는 듯한데, 약의 효능으로 미루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약에 의존하지 않고 꿈을 꾸고 싶다, 이런 염치없는 바램을 이루어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역시 여행이 아닐는지....

약4년전 여름, 북구를 향한 나의 여행가방 속에는, 그리그와 시벨리우스를 비롯하여 한사동맹(Hansebund), 인어, 뭉크, 피오르드 등등 꿈에 부풀게 해 주는 것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때만해도 앵커리지 경유였기에 그곳에서 머리와 체질을 서반구용으로 바꾼 다음 듀셀도프를 지나
코펜하겐으로 들어갔다.
시간과 함께 뇌세포는 일본이라는 인력에서 벗어나 배열까지 바뀌어간다. 의자에 몸을 묶은 채, 게다가 평상시와는 다른 기압 아래서의 기내식은 위에 부담을 준다.
그 괴로움에서 해방되고, 청어가 나오자 나의 위는 안도하면서 북구를 실감한다. 일본에서는 그다지 육류 음식을 의식하지 않고 드는데, 해외로 나가면 갑자기 생선에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나이 때문만이 아니고, 예를 들어 조리법이나 양념 등에 의한 차이라고 여겨짐은 나만의 생각인가.
노르웨이의 베르겐에 도착하여, 항구의 배를 배경삼아, 색감도 아름다운 시대적 무게를 지닌박공지붕 목조가옥이 처마를 잇대고 늘어선 브리겐(부두)에 서자, 북구 속에 깊숙이 안긴 듯, 깊은 감회에 빠진다. 긴 세월과 함께 비바람을 견디어 낸, 어둠침침한 은빛을 띤 창고 같은 높은 건물 2층에 올라가, 묵직한 맥주 잔을 기울이면서 청어구이에 입맛을 돋구고 있자니 어느새 북구 팬이 되어버린다.

소화도 시킬 겸 한사박물관에 들러 16세기 사람들의 생활상을 더듬은 다음 여느 여행객과 마찬가지로 프로이엔산에 오르는 케이블카 입구에 늘어선다. 여러나라 여행객에 섞여 일본인도 10퍼센트 정도는 있는 듯, 지루함을 잊기 위해 얼굴로 국적을 추측해보는 즐거움도 여행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중에 열두어살쯤 되어 보이는 긴 금발의 독일 아가씨가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사람 곁에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째서 독일이라고 단언하는가 물으면 곤란하지만, 그 동안 수차례 방문한 경험에서 그렇게 느꼈다고 말할 수밖에 없으리라. 갸름한 얼굴에 가냘픈 귀여운 아이였다.
얼마 후, 어디 있나 둘러보니 조금 가까운 곳에서 또다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왠지 남부독일 아이일 것으로 생각하면서 미소를 보내자 저쪽에서도 미소 띤 얼굴을 한다. 남부독일에서는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 눈웃음이나 웃는 얼굴로 인사를 교환하는 일이 흔했다.

케이블카에 탈 순서가 되어 줄이 움직이자 소녀가 얼른 곁에 오더니 나를 향해 [저어 일본분 아니신가요]라고 정확한 일본어로 또렷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면서 [당신은 독일인이지요] 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방끗 웃는다.
어떻게 일본어를, 하고 묻자, 일본의 오모리(大森)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가족은 일본에 있고 자기만 학교 때문에 독일에서 조부모와 함께 산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케이블카는 눈깜짝할 사이에 산정에 닿았다. 눈앞에는 방금 산책하던 항구와 함께 시가지와 산등성이, 바다가 시야를 훨씬 넘어 펼쳐져 있었다.
소녀는 오랜만에 써보는 일본어를 즐기듯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틈틈이 끼어 들 듯 사용하는 이쪽 독일어에 미소짓는 소녀의 볼우물이 귀여웠다. 금새 내려갈 시간이 되었다. 겨우 사진을 찍고 보낼 곳을 물어볼 수 있었던 짧은 순간이었다. 그 사이에 동행한 할아버지와도 조금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쪽은 일본어를 사용할 수 없는 형편이라서 짧은 회화로 끝이 났다.
그 때 우리 여행동료는 스무명에 가까웠다. 무엇 때문에 나 한사람에게 이야기를 걸어왔을까. 나는 음악 때문인지 남부독일을 특히 좋아하여 그 때까지 수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데, 소녀의 민감한 본능이 나의 그러한 역사를 총명하게 감지한 것일까. 참고로 그녀의 집은 슈트트가르트에 근접한 시골마을이라고 했다.

그날 밤은, 도쿄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친구가 같은 코스로 여행을 하고 있어, 그가 묵는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약속시간 조금 지나 악수를 교환한 우리들은 뒤쪽에 있는 별도 건물 호텔 바로 자리를 옮겼다. 얼핏 창고로 잘못 볼수 있는 높은 천장의 바였다. 우리에게는 너무 높았지만 키가 큰 북구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높이고 공간이리라.  약간 살피듬이 있는, 그래서 그것이 말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하는 마담이 단골손님한테처럼 마실 것을 내어 줘, 우리도 자주 오는 손님 같은 기분을 내면서 여기에 도착하기까지의 이야기에 열을 올리며 잔을 포갰다.
나는 귀중한 보석상자를 열 듯 프로이엔에서 만난 소녀 이야기를 했다. 일본과는 달리 전화 걸려올 일도 없고, 호텔 방까지 금방 갈 수 있다는 안심감도 있어 맘껏 칵테일을 즐겼다.

다음날부터는 정규코스의 관광명소 둘러보기이다. 그렇긴 해도, 예전에 자주 듣던 그리그의 집이 있는 트롤하우겐호수와 생가의 내부는 잠시 나를 그 옛날 청춘시절로 되돌아가게 해, 아무하고도 말을 나누지 않고, [유랑의 무리]라던가 피아노협주곡이 낮으막히 몸 속으로 흐르는 것을 들으면서, 망막을 메꾸는 적막한 풍경 속에 서있었다.

이어 방문한 소그네피요르드도 라인강뱃길과는 달리 [여수]라는 일본어를 떠올리게 하는 그 무엇이 있어, 여느 여행과는 한맛 다른 느낌이었다. 예컨대 여행이라고 하는 것은 둘만의 여행을 빼고는 고독을 확인하는 나그네길이 아닐는지. 자기가 걸어온 인생의 시간들을 공간에 바꿔놓고 돌아보는 작업이 아닐는지. 귀국하면 천천히 파초나 괴테의 여행에 관한 책이라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하지만 오슬로 비게란의, 인간에 대한 조각을 탄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를 늘어 논 프로그넬 공원, 혹은 우리들의 발길을 묶어두는 뭉크의 회화등, 고독으로부터 떼내어주는 것 또한 여행인 것이다.

신델레라호를 타고 헬싱키를 방문, 시베리우스공원에서 시벨리우스 기념비를 보았다. 때때로 마음이 부푸는 것은 행여 그 소녀도 이 근처에 와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일까.
북구의 나들이는 코펜하겐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돌아온 일본은 아직 무더위 한가운데 있었다.
현상한 필름 중에 베르겐에서 만난 그 소녀의 모습이 뚜렷하게 찍혀있어, 그 만남이 단지 환상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주었다.      (199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