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 삼바와 대자연 <스기모토타케시 저>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며칠 전, 한밤중에 별 생각없이 라디오 심야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이구아스라는 그리운 지명이 들려 깜짝 놀랐다. 여성 시청자가 보낸 편지였는데, 이구아스폭포를 방문했을 때의 감동을 생생하게 그린 내용이었다. 이구아스라면 나에게도 잊지못할 추억이 있다.
지금부터 6년전인 1988년 10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국제산부인과학회가 열렸다. 그보다 10수년 전 같은 학회가 도쿄에서 개최되었을 때 나는 몇개국 의사들과 친분을 갖게 되었다. 국제학회는 3년마다 큰 도시에서 돌아가며 개최하는데, 학회보다는 국제교류라는 즐거움에 매료되어 샌프란시스코, 베를린 등을 방문하면서 친지들과의 우정을 쌓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매년 교환하는 크리스마스카드에는 다음 학회 개최지에서 만나자는 말이 반드시 삽입되었다.
그런 연유로, 뉴욕에서 1박 후 아르헨티나항공편을 이용,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한 것은 10월 22일 아침의 일이었다.
1. 학회가 시작되다
긴 비행기 여행에서 풀려나 코파카파나의 모던한 고층호텔에 체크인. 오프닝 셀레모니에 출석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나섰다. 노래로도 유명한 이파네마 해안을 지나 학회본부가 열리는 내셔널호텔에 도착, 우선 등록을 했다. 온 세계에서 모여든 의사로 붐비는 가운데 익숙지 않은 말을 귀에 담으면서 수속을 마치자 비로소 국제학회에 온 실감이 난다.
헌데, 오프닝 셀레모니는 별도 장소라는 것이다. 자그마치 40분 동안 버스에 흔들리는데는 질리고 만다. 과연 광대한 토지를 지닌 국가답다고 생각해야 되는 건지...
그 다음이 또 지루했다. 이미 개회시간인데도 단상에서는 국가명이 적힌 표를 테이블에 늘어놓고 있었다.
모든 게 정돈되어 세계 각국에서 온 이사들이 단상에 오른 것은 정각을 훨씬 지난 뒤였다. 회장을 비롯하여 높으신 분들의 스피치, 틀에 박힌 문구가 끝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차에서 오는 졸음과 심한 식사조절에서 오는 공복감 때문에 오프닝 셀레모니는 짜증스럽기만 했다.
8시가 지나, 겨우 연설이 끝난 줄 알았더니 또 다음이 있었다.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하지만 첫 번째 곡이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이었던 것은 감격이었다. 돌이켜 보니 도쿄에서의 개회식 때는 포르스트의 [혹성], 베를린에서는 베토벤의 [영웅]이었다. 하나같이 그 시기를 선명하게 뇌리에 새겨 넣어주는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비상한 선곡에 감탄했는데, 지구 반대편에서 듣는 베르디는 오페라를 좋아하는 내게 있어 각별한 것이었다.
이어지는 본고장 브라질의 작곡가, 빌라 로보스의 삼바 심포니와 [정글의 노래]까지는 좋았지만 그 뒤로 차이콥스키등이 계속되자 기진맥진이다. 겨우 연주가 끝나 기다리던 맥주가 손에 들어왔을 때는 아홉시가 다 되어서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옆의 파티회장으로 옮겼지만 이미 그곳은 참가자로 꽉 차 있었다. 원하는 맥주, 와인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인지 좀처럼 얻을 수가 없다. 알고 보니 등록자가 75개국의 7천명 이상이란다. 그 인파 속에서 독일이나 브라질 친구들을 찾는다는 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회장이 리우인 만큼 브라질인이 많다. 그래서 우선 브라질의 북쪽 레시페에서 틀림없이 참석했을 M씨를 찾기로 했다. M씨는 도쿄 국제학회 환영파티 때 알게 된 여의사로, 그 때 그녀는 남미에서 왔다고 했다. 나의 사촌이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가스트로카메라(gastrocamera)를 지도하고 있다, 산타쿠르즈 진료소에 국제의료협력으로 간 친구가 가있다, 등의 이야기를 꺼내자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야기가 무르익고, 그 후 10여년간 크리스마스카드를 교환하게 된 사람이었다. 그녀는 인구 백만의 도시 레시페에서 개업을 하고 있고, 남편은 교외에서 목장을 경영한다고 했다. 브라질에 오면 꼭 들려달라고 했지만 리우에서 비행기로 여덟시간이나 걸린다니 주저하게 된다.
엄청나게 사람이 많아 오늘은 만날 수 없겠지 체념하면서 브라질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바로 그 M씨가 '닥터 스기모토'라고 말을 걸었을 때는 안도의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녀도 한참이나 찾았다고 한다. 9년만의 상봉이었다. 브라질어 밖에 하지 못하는 그녀와의 대화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친구를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이야기는 끊일 줄 몰랐다.
2. 이구아스를 찾다
오랜만의 국제학회는 활기찼다. 슬라이드 옆으로 크게 비치는 연설자의 클로즈업된 얼굴은 굉장히 박력이 있어 나도 모르게 빨려든다. 얼마 후부터 일본에서도 이러한 연출을 보게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신기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외국인은 어째서 그처럼 스피치를 잘하고 설득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흘이 지나자 학회도 물리게 된다. 이어폰으로 듣는 게 영어인데다가 내용이 자기 전문분야 밖일 때는 더욱 그렇다.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던 독일 친구들의 호텔도 메시지보드를 통해 알게 되어, 약간의 어긋남은 있었지만 학회장 레스토랑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는 샌프란시스코 이후 3년만의 만남인데, 몇천킬로 떨어진 이국에서의 재회는 역시 감격적이었다. 커다란 나무를 끌어안듯 포옹하면서 인사를 나눈 뒤 오랜만의 이야기에 꽃을 피운다. 9년전 도쿄에서 우리 집에 왔을 때의 인상과 비교하자면 머리숱이 엄청 줄었고, 덩치가 큰 부인도 약간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이쪽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학회도 학회지만, 두 번 다시 올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는 머나먼 토지이니 진작부터 소문에 듣던 이구아스폭포는 꼭 보고싶었다.
호텔 로비에 자리하고 있는 여행사 보드에 [이구아스로의 하루 나들이!] 라는 게 올라있었다. 즉각 다음 날짜로 친구와 둘이서 신청을 했다. 당일 되돌아오는 만큼 아침이 빨랐다. 여섯시에 깨워 줘, 여섯시반에 동행 6명과 가레온공항으로 향한다.
웬일인지 이륙이 늦어져 10시 15분에야 날아올랐다. 상파울루에 들러 드디어 목적지구나 하는데, 일기불순으로 착륙이 불가능해 근방 아순시온에 착륙한다는 기내 어나운스가 흘러나왔다. 파라과이의 수도라고 했다. 이렇게 해도 오늘 안에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공항 대합실에 앉아 날씨의 회복을 기다렸다. 배를 움켜쥐고 기다리는 동안 비도 그치고 15시30분 탑승, 16시30분 대망의 이구아스에 도착했다. 그런데 시간상으로 오늘 되돌아가려면 폭포를 보지 않고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난감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겠습니까?] 라고, 일본에 온 적도 없는데도 나가노사투리를 멋지게 구사하는 일본인3세 가이드가 말했다. 우리는 물론 1박 하기로 결정했는데, 내일 학회에서 발표를 할 예정인 동료 한사람도 우리와 동조하여 숙박한다는 것이다. 그의 심중을 헤아리면 착잡하지만 과감한 결단에 마음을 놓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남아있었다. 1박할 숙소를 지금부터 잡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우선 근처 호텔 로비에서 숙소 수배가 어떻게 될는지 기다렸다. 만약 숙소를 잡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바로 가까이에 있는 좋은 호텔을 잡았다고 하여 우린 서둘러 그쪽으로 이동을 했다.
폭포는 무엇보다 먼저 [소리]다. 가까이 갈수록 깊이 있고 널리 퍼지는 끊임없는 굉음이 점차 음량을 증폭시켜 귀뿐이 아닌 몸 전체를 감싼다. 감싼다기 보다 머리, 신체의 근육, 내장, 아니 세포 속에까지 소리가 파고든다. 물의 양, 낙차, 폭포의 형태, 강바닥의 토질 등등 수많은 요소가 빚어내는, 어떤 악기도 드럼도 미치지 못할 굉장한 심포니였다.
호텔은 폭포를 지키듯이, 몸을 맡기듯이, 바로 곁에 우아한 자태로 서있었다. 건물 높이도 자연을 손상하지 않을만큼 나직했다. 날이 저물 때까지는 그다지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체크인을 마치자마자 폭포로 향했다. 점점 그 자태를 들어내고 있는 광대한 폭포는 막대한 물을 까마득한 머리 위로부터 굉음과 함께 한꺼번에 쏟아 붓고 있어 그야말로 장대했다. 물보라, 진동, 에너지, 그 어느 것을 들어도 엄청나서 말문이 막힌다. 전에 본 나이아가라폭포도 굉장했지만 이구아스는 또 다른 스케일로 우리를 압도했다. 자연이 지닌 위관(偉觀)에 그저 경탄할 뿐이다. 전망대로 사람의 행렬이 이어진다. 소리와 경관에 마음을 빼앗긴 이른바 방심한 인형의 행렬이었다.
해질 무렵의 귀중한 정경을 일단 망막에 새긴 다음, 나머지는 내일 다시 천천히 보기로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목욕을 한 뒤의, 목에서 위(胃)로 스며드는 그 지방의 맥주 맛은 트리오.로스 뭐라는 연주까지 곁들여져 각별했다. 동행한 친지들과 식후 산책하던 정원에서 비엔나에서 왔다는 노부인 두명과 만났다. 밤바람에 취기를 날려보내면서 방금 본 폭포와 일찍이 찾은 적이 있는 비엔나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도 그리운 추억거리이다. 그 해가 저물 무렵 두사람 중 한사람으로부터 크리스마스카드가 날아와 허둥지둥 답장을 보냈다.
다음날은 악천후 뒤의 쾌청한 날씨로, 아침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폭포까지 산책을 했다. 비로 씻겨 깊이를 더한 푸른 나무들에 둘러싸인 아침 폭포는 어제 황혼 때와는 또 다른 싱싱함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황갈색 탁류도, 비산하는 물보라도, 그 굉음과 함께 폭포의 박력을 배가하고 있었다. 걸음을 더할수록 서서히 전모를 들어내는 폭포의 형태는 남성적인 나이아가라와는 달리 복잡기묘했다. 그 일부에 붙여진 [악마의 목]이라는 이름까지 으스스하다. 사람들 소리에 그쪽을 바라보니 선명한 무지개가 크고 완만한 아크를 공중에 그리고 있었는데, 마치 우리를 환영해주는 듯 했다.
아침식사후, 아르헨티나 쪽에서 바라보기 위해 소형차를 타고 크게 한바퀴 돌아 하류의 다리를 건너갔다. 얼마동안 달린 후 폭포의 반대 기슭에 도달. 차에서 내려 작고 긴 다리를 걸어가자 브라질 쪽과는 다른 장대한 조망이 다시 우리들을 매료시켰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물리지 않는 본연의 풍경이었다. 이만한 폭포를 하루 나들이로 보려했으니 얼마나 불손하고 경솔한 생각이었는가.
폭풍우가 그것을 바로잡아준 것이다. 새삼스레 이구아스-(스-라고 끌어 발음하는 것이 옳다고 함) 때문에 24시간을 내어준 하늘에 감사했다.
참고로 이그는 물, 아스-는 크다 또는 굉장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3. 삼바의 향연
브라질 하면 삼바. 따라서 카니발의 계절 2월이 좋은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학회에서 우리들을 위해 삼바 페스티벌을 마련했다. 하룻밤, 커다란 극장에서 멋진 삼바 쇼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의사들과 동석한 친지와 나는 끊임없이 펼쳐지는 삼바의 마술에 취했다. 무대에서 학생 모집이라는 소리가 나면 위세 좋은 닥터들이 우르르 올라가서 춤추기 시작한다. 이태리 닥터가 뛰어나게 잘 춘다. 마지막에는 많은 사람들이 중앙 아레나(arena)에 뛰어나가 스타일 좋은 댄서들과 멋지게 춤을 추었다.
완전히 삼바리듬과 춤에 매료된 우리들에게 실은 근사한 선물이 다음에 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행운은 브라질의 M씨가 가지고 왔다.
호텔에 메시지가 날아왔는데, 우리들과 함께 삼바 쇼를 보러가자는 것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열명 정도의 가족을 인솔하고 나타나 나를 놀라게 했다. 어느 약품메이커의 초대라는데, 장소는 역시 커다란 극장이었다.
처음엔 디너. 주먹만한 스테이크를 나는 절반밖에 못 먹고 손을 들었지만, 그들은 아이들까지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운다.
쇼는 화려한 깃털로 공작처럼 장식한 댄서의 군무로 시작되었다. 그녀들은 객석 중앙까지 뻗어있는 무대로 춤추며 걸어나왔다. 쇼가 클라이맥스에 달하자 가까이의 미국인처럼 보이는 여의사가 일어나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어댔다. 사회자가 미국, 캐나다 하면서 관객의 거수를 구하고, 그 나라의 유명한 곡을 연주하는 식으로 진행하여 갈채를 받았다.
[브라지-ㄹ] 압도적으로 많은 열광적인 박수. 독일, 프랑스, 스페인으로 이어진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는데 이윽고 [하이포네-스] 하는 소리. 천명 넘는 관객 가운데 일본인은 우리 두명 뿐이었지만 손을 높이 들자 모두 박수를 쳐준다. 그리고 [위를 보고 걷자(上を向いて步こう)」가 회장 가득히 울려 퍼질 때는 가슴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것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 두명을 둘러싸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M씨 가족의 우정도 온몸으로 젖어드는 기쁨이었다.
이틀밤에 걸쳐 삼바 쇼를 본 느낌은 무라타(백인과 흑인의 혼혈)의 아름다운 갈색 피부와 기막힌 춤솜씨였다. 아니 그 보다도 인간의 기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멋에 마음속으로부터 취했던 것이다. 기회가 있으면 카니발 시기에 다시 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긴 듯하면서도 짧은 10여일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브라질의 극히 일부에 잠시 머물었을 뿐인데도 자연의 미관에 압도되고, 쾌활한 사람들의 진한 정에 휩싸였던 여행이었다.
다음 3년후의 학회가 열리는 곳 [싱가폴에서 만납시다]를 서로 약속하며, 함께 한 닥터들과 작별을 아쉬워한 리우의 학회였다. (1993년 12월)
지금부터 6년전인 1988년 10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국제산부인과학회가 열렸다. 그보다 10수년 전 같은 학회가 도쿄에서 개최되었을 때 나는 몇개국 의사들과 친분을 갖게 되었다. 국제학회는 3년마다 큰 도시에서 돌아가며 개최하는데, 학회보다는 국제교류라는 즐거움에 매료되어 샌프란시스코, 베를린 등을 방문하면서 친지들과의 우정을 쌓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매년 교환하는 크리스마스카드에는 다음 학회 개최지에서 만나자는 말이 반드시 삽입되었다.
그런 연유로, 뉴욕에서 1박 후 아르헨티나항공편을 이용,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한 것은 10월 22일 아침의 일이었다.
1. 학회가 시작되다
긴 비행기 여행에서 풀려나 코파카파나의 모던한 고층호텔에 체크인. 오프닝 셀레모니에 출석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나섰다. 노래로도 유명한 이파네마 해안을 지나 학회본부가 열리는 내셔널호텔에 도착, 우선 등록을 했다. 온 세계에서 모여든 의사로 붐비는 가운데 익숙지 않은 말을 귀에 담으면서 수속을 마치자 비로소 국제학회에 온 실감이 난다.
헌데, 오프닝 셀레모니는 별도 장소라는 것이다. 자그마치 40분 동안 버스에 흔들리는데는 질리고 만다. 과연 광대한 토지를 지닌 국가답다고 생각해야 되는 건지...
그 다음이 또 지루했다. 이미 개회시간인데도 단상에서는 국가명이 적힌 표를 테이블에 늘어놓고 있었다.
모든 게 정돈되어 세계 각국에서 온 이사들이 단상에 오른 것은 정각을 훨씬 지난 뒤였다. 회장을 비롯하여 높으신 분들의 스피치, 틀에 박힌 문구가 끝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차에서 오는 졸음과 심한 식사조절에서 오는 공복감 때문에 오프닝 셀레모니는 짜증스럽기만 했다.
8시가 지나, 겨우 연설이 끝난 줄 알았더니 또 다음이 있었다.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하지만 첫 번째 곡이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이었던 것은 감격이었다. 돌이켜 보니 도쿄에서의 개회식 때는 포르스트의 [혹성], 베를린에서는 베토벤의 [영웅]이었다. 하나같이 그 시기를 선명하게 뇌리에 새겨 넣어주는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비상한 선곡에 감탄했는데, 지구 반대편에서 듣는 베르디는 오페라를 좋아하는 내게 있어 각별한 것이었다.
이어지는 본고장 브라질의 작곡가, 빌라 로보스의 삼바 심포니와 [정글의 노래]까지는 좋았지만 그 뒤로 차이콥스키등이 계속되자 기진맥진이다. 겨우 연주가 끝나 기다리던 맥주가 손에 들어왔을 때는 아홉시가 다 되어서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옆의 파티회장으로 옮겼지만 이미 그곳은 참가자로 꽉 차 있었다. 원하는 맥주, 와인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인지 좀처럼 얻을 수가 없다. 알고 보니 등록자가 75개국의 7천명 이상이란다. 그 인파 속에서 독일이나 브라질 친구들을 찾는다는 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회장이 리우인 만큼 브라질인이 많다. 그래서 우선 브라질의 북쪽 레시페에서 틀림없이 참석했을 M씨를 찾기로 했다. M씨는 도쿄 국제학회 환영파티 때 알게 된 여의사로, 그 때 그녀는 남미에서 왔다고 했다. 나의 사촌이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가스트로카메라(gastrocamera)를 지도하고 있다, 산타쿠르즈 진료소에 국제의료협력으로 간 친구가 가있다, 등의 이야기를 꺼내자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야기가 무르익고, 그 후 10여년간 크리스마스카드를 교환하게 된 사람이었다. 그녀는 인구 백만의 도시 레시페에서 개업을 하고 있고, 남편은 교외에서 목장을 경영한다고 했다. 브라질에 오면 꼭 들려달라고 했지만 리우에서 비행기로 여덟시간이나 걸린다니 주저하게 된다.
엄청나게 사람이 많아 오늘은 만날 수 없겠지 체념하면서 브라질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바로 그 M씨가 '닥터 스기모토'라고 말을 걸었을 때는 안도의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녀도 한참이나 찾았다고 한다. 9년만의 상봉이었다. 브라질어 밖에 하지 못하는 그녀와의 대화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친구를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이야기는 끊일 줄 몰랐다.
2. 이구아스를 찾다
오랜만의 국제학회는 활기찼다. 슬라이드 옆으로 크게 비치는 연설자의 클로즈업된 얼굴은 굉장히 박력이 있어 나도 모르게 빨려든다. 얼마 후부터 일본에서도 이러한 연출을 보게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신기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외국인은 어째서 그처럼 스피치를 잘하고 설득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흘이 지나자 학회도 물리게 된다. 이어폰으로 듣는 게 영어인데다가 내용이 자기 전문분야 밖일 때는 더욱 그렇다.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던 독일 친구들의 호텔도 메시지보드를 통해 알게 되어, 약간의 어긋남은 있었지만 학회장 레스토랑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는 샌프란시스코 이후 3년만의 만남인데, 몇천킬로 떨어진 이국에서의 재회는 역시 감격적이었다. 커다란 나무를 끌어안듯 포옹하면서 인사를 나눈 뒤 오랜만의 이야기에 꽃을 피운다. 9년전 도쿄에서 우리 집에 왔을 때의 인상과 비교하자면 머리숱이 엄청 줄었고, 덩치가 큰 부인도 약간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이쪽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학회도 학회지만, 두 번 다시 올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는 머나먼 토지이니 진작부터 소문에 듣던 이구아스폭포는 꼭 보고싶었다.
호텔 로비에 자리하고 있는 여행사 보드에 [이구아스로의 하루 나들이!] 라는 게 올라있었다. 즉각 다음 날짜로 친구와 둘이서 신청을 했다. 당일 되돌아오는 만큼 아침이 빨랐다. 여섯시에 깨워 줘, 여섯시반에 동행 6명과 가레온공항으로 향한다.
웬일인지 이륙이 늦어져 10시 15분에야 날아올랐다. 상파울루에 들러 드디어 목적지구나 하는데, 일기불순으로 착륙이 불가능해 근방 아순시온에 착륙한다는 기내 어나운스가 흘러나왔다. 파라과이의 수도라고 했다. 이렇게 해도 오늘 안에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공항 대합실에 앉아 날씨의 회복을 기다렸다. 배를 움켜쥐고 기다리는 동안 비도 그치고 15시30분 탑승, 16시30분 대망의 이구아스에 도착했다. 그런데 시간상으로 오늘 되돌아가려면 폭포를 보지 않고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난감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겠습니까?] 라고, 일본에 온 적도 없는데도 나가노사투리를 멋지게 구사하는 일본인3세 가이드가 말했다. 우리는 물론 1박 하기로 결정했는데, 내일 학회에서 발표를 할 예정인 동료 한사람도 우리와 동조하여 숙박한다는 것이다. 그의 심중을 헤아리면 착잡하지만 과감한 결단에 마음을 놓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남아있었다. 1박할 숙소를 지금부터 잡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우선 근처 호텔 로비에서 숙소 수배가 어떻게 될는지 기다렸다. 만약 숙소를 잡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바로 가까이에 있는 좋은 호텔을 잡았다고 하여 우린 서둘러 그쪽으로 이동을 했다.
폭포는 무엇보다 먼저 [소리]다. 가까이 갈수록 깊이 있고 널리 퍼지는 끊임없는 굉음이 점차 음량을 증폭시켜 귀뿐이 아닌 몸 전체를 감싼다. 감싼다기 보다 머리, 신체의 근육, 내장, 아니 세포 속에까지 소리가 파고든다. 물의 양, 낙차, 폭포의 형태, 강바닥의 토질 등등 수많은 요소가 빚어내는, 어떤 악기도 드럼도 미치지 못할 굉장한 심포니였다.
호텔은 폭포를 지키듯이, 몸을 맡기듯이, 바로 곁에 우아한 자태로 서있었다. 건물 높이도 자연을 손상하지 않을만큼 나직했다. 날이 저물 때까지는 그다지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체크인을 마치자마자 폭포로 향했다. 점점 그 자태를 들어내고 있는 광대한 폭포는 막대한 물을 까마득한 머리 위로부터 굉음과 함께 한꺼번에 쏟아 붓고 있어 그야말로 장대했다. 물보라, 진동, 에너지, 그 어느 것을 들어도 엄청나서 말문이 막힌다. 전에 본 나이아가라폭포도 굉장했지만 이구아스는 또 다른 스케일로 우리를 압도했다. 자연이 지닌 위관(偉觀)에 그저 경탄할 뿐이다. 전망대로 사람의 행렬이 이어진다. 소리와 경관에 마음을 빼앗긴 이른바 방심한 인형의 행렬이었다.
해질 무렵의 귀중한 정경을 일단 망막에 새긴 다음, 나머지는 내일 다시 천천히 보기로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목욕을 한 뒤의, 목에서 위(胃)로 스며드는 그 지방의 맥주 맛은 트리오.로스 뭐라는 연주까지 곁들여져 각별했다. 동행한 친지들과 식후 산책하던 정원에서 비엔나에서 왔다는 노부인 두명과 만났다. 밤바람에 취기를 날려보내면서 방금 본 폭포와 일찍이 찾은 적이 있는 비엔나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도 그리운 추억거리이다. 그 해가 저물 무렵 두사람 중 한사람으로부터 크리스마스카드가 날아와 허둥지둥 답장을 보냈다.
다음날은 악천후 뒤의 쾌청한 날씨로, 아침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폭포까지 산책을 했다. 비로 씻겨 깊이를 더한 푸른 나무들에 둘러싸인 아침 폭포는 어제 황혼 때와는 또 다른 싱싱함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황갈색 탁류도, 비산하는 물보라도, 그 굉음과 함께 폭포의 박력을 배가하고 있었다. 걸음을 더할수록 서서히 전모를 들어내는 폭포의 형태는 남성적인 나이아가라와는 달리 복잡기묘했다. 그 일부에 붙여진 [악마의 목]이라는 이름까지 으스스하다. 사람들 소리에 그쪽을 바라보니 선명한 무지개가 크고 완만한 아크를 공중에 그리고 있었는데, 마치 우리를 환영해주는 듯 했다.
아침식사후, 아르헨티나 쪽에서 바라보기 위해 소형차를 타고 크게 한바퀴 돌아 하류의 다리를 건너갔다. 얼마동안 달린 후 폭포의 반대 기슭에 도달. 차에서 내려 작고 긴 다리를 걸어가자 브라질 쪽과는 다른 장대한 조망이 다시 우리들을 매료시켰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물리지 않는 본연의 풍경이었다. 이만한 폭포를 하루 나들이로 보려했으니 얼마나 불손하고 경솔한 생각이었는가.
폭풍우가 그것을 바로잡아준 것이다. 새삼스레 이구아스-(스-라고 끌어 발음하는 것이 옳다고 함) 때문에 24시간을 내어준 하늘에 감사했다.
참고로 이그는 물, 아스-는 크다 또는 굉장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3. 삼바의 향연
브라질 하면 삼바. 따라서 카니발의 계절 2월이 좋은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학회에서 우리들을 위해 삼바 페스티벌을 마련했다. 하룻밤, 커다란 극장에서 멋진 삼바 쇼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의사들과 동석한 친지와 나는 끊임없이 펼쳐지는 삼바의 마술에 취했다. 무대에서 학생 모집이라는 소리가 나면 위세 좋은 닥터들이 우르르 올라가서 춤추기 시작한다. 이태리 닥터가 뛰어나게 잘 춘다. 마지막에는 많은 사람들이 중앙 아레나(arena)에 뛰어나가 스타일 좋은 댄서들과 멋지게 춤을 추었다.
완전히 삼바리듬과 춤에 매료된 우리들에게 실은 근사한 선물이 다음에 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행운은 브라질의 M씨가 가지고 왔다.
호텔에 메시지가 날아왔는데, 우리들과 함께 삼바 쇼를 보러가자는 것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열명 정도의 가족을 인솔하고 나타나 나를 놀라게 했다. 어느 약품메이커의 초대라는데, 장소는 역시 커다란 극장이었다.
처음엔 디너. 주먹만한 스테이크를 나는 절반밖에 못 먹고 손을 들었지만, 그들은 아이들까지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운다.
쇼는 화려한 깃털로 공작처럼 장식한 댄서의 군무로 시작되었다. 그녀들은 객석 중앙까지 뻗어있는 무대로 춤추며 걸어나왔다. 쇼가 클라이맥스에 달하자 가까이의 미국인처럼 보이는 여의사가 일어나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어댔다. 사회자가 미국, 캐나다 하면서 관객의 거수를 구하고, 그 나라의 유명한 곡을 연주하는 식으로 진행하여 갈채를 받았다.
[브라지-ㄹ] 압도적으로 많은 열광적인 박수. 독일, 프랑스, 스페인으로 이어진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는데 이윽고 [하이포네-스] 하는 소리. 천명 넘는 관객 가운데 일본인은 우리 두명 뿐이었지만 손을 높이 들자 모두 박수를 쳐준다. 그리고 [위를 보고 걷자(上を向いて步こう)」가 회장 가득히 울려 퍼질 때는 가슴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것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 두명을 둘러싸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M씨 가족의 우정도 온몸으로 젖어드는 기쁨이었다.
이틀밤에 걸쳐 삼바 쇼를 본 느낌은 무라타(백인과 흑인의 혼혈)의 아름다운 갈색 피부와 기막힌 춤솜씨였다. 아니 그 보다도 인간의 기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멋에 마음속으로부터 취했던 것이다. 기회가 있으면 카니발 시기에 다시 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긴 듯하면서도 짧은 10여일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브라질의 극히 일부에 잠시 머물었을 뿐인데도 자연의 미관에 압도되고, 쾌활한 사람들의 진한 정에 휩싸였던 여행이었다.
다음 3년후의 학회가 열리는 곳 [싱가폴에서 만납시다]를 서로 약속하며, 함께 한 닥터들과 작별을 아쉬워한 리우의 학회였다. (1993년 12월)
'번역 [飜譯] > 일한번역 [日韓飜譯]'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에 대한 토막상식 -8- <일본 유령...> (0) | 2003.08.16 |
---|---|
일본에 대한 토막상식 -7- <나라(奈良) 대불(大佛)> (0) | 2003.08.01 |
演歌飜譯 - '요코하마타소가레' (よこはま たそがれ-五木ひろし) (0) | 2003.06.07 |
일본에 대한 토막상식 -6- <切腹, 月代, 水戶黃門 > (0) | 2003.06.03 |
캘거리에서 클라이스트처치까지 -스기모토다케시 저- (0) | 2003.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