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 : 國寶3號 - 민속문양 [民俗紋樣]
國寶 第3號 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 (石碑)
所在地 : ソウル龍山區龍山洞6街國立中央博物館
1962年12月20日付で國寶第3號に指定された. 碑身の高さ:1.54m, 幅:0.69m, 厚み:0.16m.
破損の恐れのため現在は國立中央博物館に所藏される.
今までに發見された眞興王巡狩碑4基の中の一つで, 花崗巖で作られた碑石の形は他の碑と
異なり直四角形に加工した石材を使用して自然巖盤の上に2段の層を作って立てた.
碑文は、硏磨した碑身の正面に12行彫ってあるが、上の部分が酷く磨滅しており第12行は
判讀不可能、その他にも字劃が不明なところが多い. 従って1行の字數が定かでないが
30字は越えると考えられる.
字體は六朝式の楷書で、字徑3cm。内容は他の3碑の碑文に鑑みて前半部は事蹟に関する
ことで, 後半は隨行した人名を列記したと見られる.
碑石の側面には、1816年(純祖16)と、その次の年に「阮堂、金正喜」が實査來讀した
事実として "此新羅眞興大王巡狩之碑丙子七月金正喜金敬淵來讀, 己未八月三十日
李濟鉉龍仁人, 丁丑六月八日金正喜趙寅永同來審定殘字六十八字"と記錄されており,
その後から世に知れ渡った.
現在、多くの部分が切斷又は損傷しており, 碑身の裏側には無數の銃彈痕迹が殘されてある.
碑文に明記されたと思える年號干支が摩損され、建立年代は確かめれないが、殘った
文字の内容からして, 568年(眞興王29)以後の、眞興王生存の頃のことと推定される。
국보 제3호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 (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 석비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1기)
소재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호로 지정되었다.
비신의 높이 1.54m, 너비 0.69m, 두께 0.16m이다.
파손이 우려되어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4기(基)의 진흥왕순수비 중 하나로, 화강암으로 된 이 비석의
형태는 다른 비와는 달리 직사각형으로 가공된 석재를 사용하여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세웠다.
비문은 비신을 연마한 후 정면에 12행을 새겼으나 윗부분은 심하게 마멸되었고,
제12행은 판독이 불가능하며, 그 밖에도 자획이 분명하지 않은 곳이 많다.
따라서 1행의 자수도 확실하지 않으나 30자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자체(字體)는 육조(六朝)식의 해서(楷書)이고 자경(字徑)은 3cm이다.
글뜻은 다른 3비의 비문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전반부는 순수의 사적에 관한 것이고,
후반은 수행한 인명을 열기한 듯하다.
비석 측면에는 1816년(순조 16)과 그 다음해에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가
실사내독(實査來讀)한 사실이 "此新羅眞興大王巡狩之碑丙子七月金正喜金敬淵來讀,
己未八月三十日李濟鉉龍仁人, 丁丑六月八日金正喜趙寅永同來審定殘字六十八字"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현재 많은 부분이 절단 또는 손상되어 있고, 비신의 뒤쪽에는 무수한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비문에 명기되어 있었을 연호 간지(干支)가 마손되어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남아 있는 글자의 내용을 검토할 때 568년(진흥왕 29) 이후 진흥왕 생존시의 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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