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능력이 있다 : 엔도슈사쿠(遠藤周作)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배경이 되고 있는 사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평생, 약간 마음에 쓰이는 질문을 여기에 씁니다. 어느 분이든 가르쳐주시면 다행입니다.]
오래 전, 나는 결핵에 결린 적이 있다. 그 때, 어딘가의 요양소에 들어가려고 생각하고, 그런 시설의 내용을 쓴 책을 읽었다.
그 책에는 회복기가 된 환자가 사회로 복귀되도록, 작업요법도 요양소에서는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작업요법이란 양계라던가, 꽃 기르기던가, 간단한 밭일이었다.
그 때, 난 언뜻 의문으로 생각했는데, 자신이 예를 들어 양계나 꽃 키우기를 그곳에서 배워도, 그것이 사회 복귀의 계기도 자신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는 작업요법의 과목이니 어쩔 수 없으나, 리허빌리테이션으로서 나 같은 자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기억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남아있어, 때때로 되살아난다.
어떤 때 되살아나는가 하면 취재라던가 그 밖의 소요(所要)로, 다양한 요양소나 시설에 갈 때다. 예를 들어 한센병의 요양소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주지(周知)하는 바와 같이, 아니, 이건 세상이 그다지 알지 못할는지 모르되, 한 때 나병(癩病)이라 불리던 한센병이 특효약 덕으로 지금은 전치된다. 전치된 환자님들은 물론 건강인과 똑같이, 누구에게도 감염시킬 위험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센병 회복자는 사회에 나가도 좀처럼 직장을 찾을 수 없다는 괴로움을 요양소에서 들은 적이 있다. 이 병에 대한 긴 동안의 공포와 현재의 치료성적에 대한 항간의 무지를 동반하여, 사회에 복귀해도 좀처럼 채용 당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때 난 또 하나의 의문도 생각해보았다. 즉 한센병 요양소에서 사회복귀를 위해 어떠한 걸 회복환자에게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현재는 알지 못하나 내가 그곳에 갔을 때는 역시 결핵요양소와 마찬가지로 밭일이나 양계(養鷄), 또는 자수(刺繡)등이었다. 허나 모든 환자가 밭일이나 양계에 해당한다고는 볼 수 없다. 자수(刺繡) 하나로, 퇴원 후 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난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것이 퇴원환자를 기죽게 하고, 또 복귀해도 채용 받을 능력을 잃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그 때 생각한 것이다.
일본에는 갖가지 병을 위한 요양소가 있다. 그리고 각각의 요양소에서는 환자의 사회복귀를 위한 공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부가 왠지 1세기 전의 방식과 같은 듯한 느낌이 자꾸 드는 것이다.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진정한 자신을 갖게 하고, 능력을 붙게 하는 준비가 아직 일본에는 모자라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건 경제적 사정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런 일이 무리인 것인가, 가르쳐 주면 다행이다.
(엔도슈사쿠(遠藤周作)의 ‘용기 있는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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