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세우 수도원]  하루키(村上春樹)의 그리스 기행문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740분 이비론 수도원 문을 나섰을 때 예상했던 대로 후드득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심하게 뿌리지는 않되 그렇다고 비를 피하는 동안에 그칠 것 같은 하늘 모양은 아니다. 하늘은 어두운 구름으로 폭 싸여있었다. 우선 레인코트를 입고 앞으로 전진. 특별한 허가가 없는 한 같은 수도원에 2박은 할 수 없다는 게 아토스의 규정이다.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필로세우 수도원이다. 필로세우를 경유하여 칼라카르 수도원까지 가고, 시간의 여유가 있게 되면 더 앞쪽에 있는 그란데라브라 수도원까지 힘내어 걸어보자는 게 우리의 원래 계획이었다. 34일밖에 없으므로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어놓고 싶었던 건데, 이런 날씨로 거기까지 바라는 건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우선 필로세우까지 가서, 그 곳에서 다시 생각하기로 하자. 필로세우까지는 산을 향한 오르막길이지만 대단한 거리는 아니다. 이 정도의 비면 그다지 고생하지 않고 당도하리라고 우리는 계산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우리는 알지 못했다. 아토스반도의 남동부에서는 기후 같은 거 절대로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을.

 

왜 이렇게 이 땅의 기후가 잘 바뀌는지 난 잘 모른다. 어쩌면 아토스산이라는 2000미터급 높은 산의 존재가 기상을 크게 변화시키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곳에서는 지금 맑은 날이라고 생각해도 순식간에 구름이 산을 가리고 순식간에 심한 비가 쏟아진다. 그것도 반도 북부보다는 남부, 서부보다는 동부 쪽이 격변하기 쉽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큰 변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곳은 기상이라는 점에서는 전혀 그리스적이 아닌 땅이었다.

그런데 우린 그런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느 가이드북도 아토스의 기후는 다루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부주의하게도 우산마저 가지고 오지 않았던 것이다. 간단한 레인코트를 가지고 왔을 뿐이다. 나는 깜빡하고 윈드브레이커 밖에 가지고 오지 않았다. 부주의가 확실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9월 초의 그리스에 우산을 가지고 간다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아토스 이외의 지방에서는 비 같은 거 정말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어찌되었건 필로세우를 향해 한 시간 가까이 걸어간 지점에서 비가 좍좍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지도 신발도 양말도, 모든 것이 후줄근해질 만큼 지독한 비였다. 산도 바다도 커튼을 포갠 듯 비에 몽땅 가려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건 비와 물구덩이뿐이다. 몸이 점점 식어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본격적인 등산 차림을 하고 오는건데, 큰일났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터덜터덜 산길을 걷고 있는데, 길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작은 오두막 같은 것이 보였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독립승의 오두막인지도 모르겠고, 무슨 작업장인지도 모른다. 혹은 아무도 살지 않는 오두막인지도 모른다. 잘 하면 비를 피할 수는 있겠다.

 

내가 문을 두드리자 수염을 기른 장발의 남자가 나왔다. 20대 중반 정도이리라. 승려는 아니다. 보통 옷을 입고 있었다. 내가 좀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냐고 묻자 상관없으니 들어오라고 한다. 안에는 또 한사람의 젊은이가 있었다. 이쪽은 머리가 짧고 수염도 깎고 있었다. 속에 너른 방이 있어 또 한사람은 거기 누어 담배를 피우면서 트랜지스터라디오로 부주키 음악을 듣고 있었다. 짠짜카 짠짜카 하는 예의 구슬픈 그리스 유행가이다. 그 음악과 빗소리가 뒤섞여 더욱 서글펐다.

방에는 모두 8개 정도의 간단한 베드가 있었다. 모두 최근에 사용한 흔적이 있었다. 담요는 헝클어져 있었고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그득했다. 한 베드 위에는 트럼프 카드가 흩어져 있었다. 돌려 읽은 듯한 너덜너덜한 그리스어 잡지가 베개 옆에 엎어져있었다.

[편하게 있어요] 같은 말을 수염 청년이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어 말리고 있는 동안 커피를 만들어 주었다. 조그만 냄비에 팔팔 끓여 만드는 그리스 커피다. 설탕을 잔뜩 넣어 무척이나 달다. 난 이 단 커피가 괴로운데, [설탕은 어떻게 할까요?] 라고 그리스인은 물어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그냥 마시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몸이 식어있어 따뜻한 커피는 매우 고마웠다.

 

일본인이냐고 수염청년이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일본에 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도 역시 원래는 선원이었던 것이다. [가와사키, 하코다테, 나가사키]라고 말한다. 마치 [미나토마치 부르스(엥카)]. 지금은 이곳에 돈을 벌러 왔다고 했다. 그의 집은 아토스 곁의 시소니아반도란다. 그의 현재 직업은 목수였다. 여기서 2주간 수도원 보수작업에 종사하고 나서 시소니아로 돌아간다고 했다. 전부 8명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모두 목수란다. 나머지 사람들은 지금 일을 하러 나가고 우리는 비가 와서 집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이딴 곳 있고 싶어 있는 게 아니지만] 이라는 느낌이 말끝마다 묻어나온다. 그건 그럴 것이다. 요즘 시대 젊은 남자가 이런 여자도 없고 술집도 없고 목욕탕도 없는 산속에 2주일이나 박혀있자면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술도 마실 수 없군요, 라고 하자,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라면서 그는 싱긋 웃더니 옆방으로 안내해주었다. 거기는 굉장했다. 방바닥에 온통 술병이었다. 스카치 박스가 몇개나 쌓여 있었다. 맥주 케이스 같은 건 헤일 수 없을 만큼 있었다. 거기에 와인, 우조, , 보드카, 이건 마치 술집 창고였다. 실제로 열심히 마시고 있는 듯, 엄청 빈병으로 변해있었다. 이러고도 알코올중독이 되지 않는구나 감탄할 지경이었다.

 

[우조 마시겠소?] 라고 묻기에 우린 고맙게 우조를 한잔씩 얻어마시기로 했다. 이 우조 병이 또한 무지막지하게 크다. 우조는 톡 쏘면서 따뜻하게 위에 밴다. [이거다] 하는 느낌이 든다. 왠지 점점 우조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가는 듯한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지방 술이라는 건 그 지방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맛이 있는 것이다. 캰티지방을 돌며 여행했을

때는 와인만 마셨다. 미국 남부에서는 매일 버본 소다를 마시고 지냈다. 독일에서는 시종 맥주에 절어있었다. 그리고 이곳 아토스에서는 그래, 우조이다.

목수들 숙박소에서 한시간쯤 비를 피했다. [필로세우에 가고 싶으면 이제 곧 필로세우까지 가는 트럭이 이곳에 들르니 짐칸에 태워달라면 돼요] 라고 수염청년이 말하기에 또 호의에 응하기로 한다. 그래서 우린 이곳에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하는 일 없이 허무하게 시간을 죽였다.

 

이윽고 밖에 도요타 픽업트럭이 섰다. 남자가 두명 운전석에 타고 있었고, 짐칸에도 한사람 있었다. 수염청년이 운전수에게 우리를 필로세움까지 타워주라고 말해준다. 좋아, 타요, 하고 운전수가 손짓을 했다. 빗발은 약간 가늘어졌으나 언저리가 상당히 싸늘하다. 하늘은 아직 캄캄했다. 우리가 짐칸에 타자 도요타는 바로 출발했다. 솔직히 말해 이건 상당히 힘든 여정이었다. 길은 미끌미끌 젖어있었고, 게다가 오르막의 지그재그 길이다. 커브에서 계속 엉덩이가 튀어 오른다. 그때마다 우린 짐칸에서 떨어질 것 같았다. 보통은 4륜 구동차만이 오를 수 있는 상황인데 운전하고 있는 쪽은 그런 것 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 했다. 우리와 함께 짐칸에 타고 있던 남자는 시리아인으로 이곳에 순례로 왔다고 했다. 자주 오느냐고 했더니 자주 온다고 하면서 당연하지 않느냐는 얼굴을 했다. 신심이 깊은 모양이다. 이런저런 끝에 필로세우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완전히 소모되어있었다. 몸은 얼고, 차의 스핀 탓에 머리가 흔들거렸다. 시각은 벌써 열두시가 되어있었다. 점점 예정이 늦어진다.

 

필로세우는 이브론에 비해 훨씬 규모가 작다. 보기에도 아담하고 포근한 게 어느 편인가 하면 가정적인 느낌을 준다. 수도원 둘레는 높은 담으로 쌓여있었고, 입구에 러시아풍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문탑이 붙어있었다. 전체적으로 건물 색이 밝고, 그것이 아침부터 내린 비에 짖어 차분한 색으로 변해있었다. 비는 이제 완전히 걷히고, 문 밖에는 아저씨들이 몇명 앉아서 느긋하게 세상살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담 밖은 포도원과 과수원과 야채를 심은 너른 밭으로 되어있었다.

이곳의 아르폰다이에 가자 젊고 조용한 승려가 나와 우리에게 르크미와 차와 우보를 내왔다. 이즈음부터 나도 르크미를 확실하게 전부 먹을 수 있게 된다. 약간 달지만 뭐 괜찮겠지하는 느낌으로 아직은 주저주저하면서도 모두 먹어치웠다. 차도 우보도 무척 맛있었다. 그리고 승려가 우리를 방으로 안내했다. 작은 3인용 방이었다. 우린 이곳에서 푹 젖은 캬라반슈즈를 벗고, 바지와 양말을 새것으로 바꾼 다음 점심 대신으로 크래커와 치즈를 먹었다.

거의 말없이 우물우물 먹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당연하다는 듯 푹 잠을 잤다. 그건 무척이나 기분 좋은 잠이었다. 비에 젖었을 뿐인데도 사람은 이렇게 나약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훨씬 심한 비를 사흘동안 맞는다면 어쩌면 종교로 달려갈지도 모른다. 수도원 침대는 우리에게 있어 그만큼 고마운 것이었다.

 

필로세우 수도원에서 내가 잘 기억하고 있는 건 아르폰다이 담당 승려가 친절한 사람이었다는 것과, 건물의 색이 아름다웠다는 것과, 그곳에서 매우 기분 좋게 낮잠을 잘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수도원에 대해서는 상당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외의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그다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에서 넘쳐난 듯, 지금 이렇게 무언가 쓰자고 해도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비를 만나 소모되어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너무 푹 자서 그 전후 기억이 흐려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수도원을 하루에 두세 군데 돌고 나면 모두 똑같이 보이고 만다. 미안하다고 생각되긴 해도.

 

세시 지나 날씨가 회복되어 하늘이 밝아졌기에 우린 순찰계 친절한 승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음의 칼라카르 수도원으로 향했다. 조금씩 조금씩 우린 반도의 끝을 향해 남하하고 있다. 보다 와일드한 지역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