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카르 수도원] 하루키(村上春樹)의 그리스 기행문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칼라카르 수도원]
다음 목적지인 칼라카르 수도원까지는 한 시간 정도의 편안한 길이다. 우리는 산을 내려와 다시 해변으로 내려갔다. 칼라카르 정문에 도착한 것은 저녁 다섯시 지나서였다. 오늘은 이제 이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칼라카르에서는 커피와 바닐라물이 나왔다. 바닐라물이란 물이 담긴 컵 속에 풍덩 바닐라 덩어리를 넣은 것. 바닐라가 물에 용해되어 달게 된다. 우선 물을 마시고 다음에 스푼으로 바닐라를 건져 먹는다. 아무튼 이건 무지 달다. 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벌이 냄새를 맡고 날아와 컵 가장자리에 앉아 날름날름 물을 핥는다. 그만큼 달다는 이야기다.
우리에게 바닐라 물과 커피를 가져다 준 사람은 마슈라는 이름의 젊은 승려였다. 대학의 비상근 강사 같은 안경을 끼고, 시커먼 수염을 길렀다. 자못 성실한 학구적인 외모의 남자다. 나중에 나이를 물으니 28세라는 것이었다. 상당히 정확한 영어를 구사했다. 우리가 의례적으로 불교도라고 하자, 불교 교리에 대해서 상세히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불교에 대해서는 우리도 그다지 전문지식이 없다. 불교도라고 대답하기 보다는 [하이테크교도]라든지 [고도자본주의교도]라는 식으로 대답해두었으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했다. 그런 것에 대해서라면 불교보다는 약간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 어떻게 소니 워크맨은 탄생하고 발전했는가, 라는 등.
[지금부터 한 시간 후 저녁식사를 하게 되니 그때까지 쉬시지요] 라고 마슈군은 말했다. 그동안 나는 정원으로 나가 예배당의 창문 스탠드글라스 무늬를 스케치했다. 이곳 스탠드글라스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보존상태도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정원에는 한심한 고양이 일가가 살고 있었다. 어미고양이와 다섯마리 새끼들인데, 모자 모두 말라비틀어져있었다. 거의 100퍼센트가 채식주의 수도원에 빌붙어 사는 고양이들이니(이곳 칼라카르 수도원은 보다 엄격한 세나비택식이므로 육식은 금지되어있다. 무슨 의식 같은 게 있으면 생선이 나오는 수가 있는 듯하나) 살이 찔 수 없으리라. 그런데 이 고양이들은 무엇이 좋아 이처럼 식료사정이 나쁜 곳을 애써 보금자리로 정했는지,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하필이면 수도원에 붙어살다니, 이건 미친 짓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수도원 정원에는 기묘한 모양을 한 사용처 불명의 도구가 여러개 놓여있었다. 예를 들어 양끝이 둥글게 된 목탁 같은 것이 철사에 매달려있었다. 그 밑에는 나무망치가 세워져있었고, 어떤 건물 앞에는 말발굽 모양으로 힘껏 구부린 커다란 철판이 걸려있는데, 거기에도 금속 해머가 붙어 있는데, 이 해머는 누군가가 임시변통으로 만든 듯 모양이 일그러져있었다.
그 밖에 길이 2미터 정도의 프로펠러 같은 사리탑 모양의 긴 널판이 정원 군데군데 놓여있었다. 이것도 목탁과 마찬가지로 양끝이 둥글게 되어있는데, 가운데 부분이 손으로 쥘 수 있도록 가늘게 깎여있었다. 오랫동안 사용한 듯 중앙 부분이 적갈색으로 변색되어있었다. 이런 것들은 어제 숙박한 이비론 수도원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었다.
마슈가 그 도구들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이것들은 수도원 승려들에게 기도 시간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담당 승려가 우선 말발굽모양의 금속을 두드리고, 목탁을 두드린 다음, 이어 이 사만드론이라는 프로펠러모양을 들고 두드리면서 수도원 정원을 뛰어다닌다는 것이다. [밤 12시가 되면 들립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열두시에 기도를 시작한다는 말입니까?]
[네, 밤 열두시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당신들 시간으로 말해 새벽 네 시에 해당합니다] 라고 마슈는 말한다. [그러니까 그건 한밤중의 기도가 아니라 새벽 기도이지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슈가 더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다시 말해 우리들은 당신들과는 다른 시간 속에서 생활하고 있지요. 이는 오랜 옛날부터 이어지는 시간성으로, “비잔틴 타임”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이 “비잔틴 타임” 에서 하루는 한방중의 열두시가 아니라 일몰에 시작되지요. 그러니까 당신들의 한밤중은 우리들의 새벽 네 시가 되는 겁니다].
옳거니. 아토스 수도원에서는 전부 이 비잔틴 타임이 채용되고 있다는 말인데, 오직 어제 머무른 이비론 수도원만이 무슨 이유인가 묻지는 못했지만 이를 채용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어젯밤에는 이 한밤중의 목탁이나 타종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열두시에 일어나면 우리들은 우선 자기 방에서 개인적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는 오전 한시부터 모두 모여 기도를 드리지요. 이 기도는 대개 세 시간, 네 시간 이어집니다. 특별한 날에는 열 시간 정도 계속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나면 그들은 각각의 장소로 나뉘어 노동을 하고,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고, 또 기도를 한다.
이건 어딘가 나의 일하는 시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나도 아침부터 세 시간, 네 시간 일을 한다. 그리고는 집안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한다. 특별한 날에는 열 시간 정도 일하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그렇게 한꺼번에 하지는 않는다. 대상이 무엇이건 집중력이 지속되는 시간이라는 건 대체로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섯 시 반에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우린 이교도이므로 모두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없다. 모두의 식사가 끝난 다음 우리 세 사람만 따로 밥을 제공받았다. 떳떳치 못한 것이다. 텅 빈 넓은 식당에서 우리 세사람만이 식사를 한다. 정식 저녁식사는 기도와 함께 들기 때문에 이교도는 함께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포멀한 의식이 없어 맘 편하기는 했다. 식사 정도는 편히 들고 싶었다. 저녁 메뉴는 죽 비슷한 쌀 스프와 토마토 3개, 올리브절임, 그리고 부드럽고 향긋한 빵. 한 그릇 더는 없다. 쌀 스프에는 콩도 들어있었다. 이 스프는 어제 이비론의 식탁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맛있었다. 재료는 모두가 이 수도원에서 수확한 것으로, 씹으면 싱싱한 맛이 확 입안으로 퍼진다. 말할 수 없는 궁극의 자연식이다. 무척이나 심플하고 옅은 맛이었다. 이른바 희랍요리와는 전혀 달랐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아침식사를 할 수 없는데요, 라고 마슈에게 말하니, 부엌에서 빵과 치즈와 올리브를 듬뿍 가져왔다. 그것을 비닐 주머니에 넣어 [이걸 가지고 가십시오]라고 한다. 참으로 친절한 사나이였다. 우린 고맙다고 절하면서 받았다. 빵도 치즈도 올리브도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키운 것이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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