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한 토막상식(19) 왜 게이샤(藝者)에는 남자이름이 많을까?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 왜 게이샤(藝者)에는 남자이름이 많을까?
貞奴, 音吉, 市丸, 染太郞 - 게이샤 이름에는 남자로 착각하기 쉬운 것이 많다.
이는 에도시대의 매춘업자들의 법망 피하기의 잔재다. 에도시대에는 신분제도가
확실해서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인권 경시가 심했다. 그러나 그러한
도쿠가와바쿠후(德川幕府)도 노예제(奴隸制)만은 엄중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특히 부녀자의 인신매매는 극형에 처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런데,
동서고금 어느 사회에도 있기 마련인 것이 매춘이라는 제도로서, 에도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요시와라(吉原)에서는 여성을 팔고 사기도 하여, 법률은 있어도
없는이만 못했다. 물론 들어내놓고 매춘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우선 기한부
고용살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방법으로 이렇게 하면 인신매매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 수속상 양녀로 하는 등 카모플러지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는데, 이런 방법
가운데 여성이지만 증서(證書)상 남자로 하는 방법도 있었다. 바로  이것이
현재까지 게이샤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도 관청에서
하는 일은 서류상일 뿐 현실을 보지 못하는 수가 많다(보고도 못본체하는 경우도
있지만..). 후카가와(深川)에서는 남자이름만이 아니라 그 시절 여성들은
입지 않았던 하오리(羽織)까지 입혀 남성화를 도모하였기 때문에 속된 말로
하오리 하면 후카가와 게이샤를 가리키는 뜻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 가부키계(歌舞伎界)를 왜 [리엔(梨園)]이라 부를까?
[梨園]이란 중국 당나라시대에 비롯된 말이다. 양귀비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당나라 현종은 예능 또한 즐겨 자신도 음악의 달인이었다. 그는 궁정의
坐部伎라는 음악연주자의 자제 300명을 선정하여 궁정 내의 梨園에서 자신이 직접
음악을 가르치고 춤도 배우도록 하였다. 이를 [황제 이원의 제자]라고 불렀는데,
나중에는 극단(劇壇) 전체를 [梨園]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고사(故事)를 빌어 에도(江戶)시대에 가부키세계를 [梨園]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梨園]은 원래 연극 음악 등 모든 예능을 포함하여 이르는 말있었는데 요즘은
일반적으로 가부키만을 지칭한다.

* 니마이메(二枚目), 삼마이메(三枚目)이라는 말의 유래는?
영화나 연극 배우를 니마이메(二枚目), 삼마이메(三枚目)라고 부르는 이 말은
가부키에서 비롯되었다. 옛날에는 연극장소 앞에 그 단체의 간부배우 여덟명의
그림을 그려 걸어놓는 습관이 있었다. 이 간판에는 우선 [書き出し]로 시작,
[二枚目] [三枚目] [中軸] [敵役] [實敵] [實惡]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에
[座頭]가 붙도록 정해져 있었다. [二枚目]에는 앞머리를 자른 미남자, 곧
남자역으로 인기 높은 배우의 그림이 극채색으로 그려졌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이런 역할을 하는 배우를 [二枚目]라고 부르게 되었고, 현재는 핸섬하고
미남인 남성을 ‘저 남자 니마이메(二枚目)네’ 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三枚目]는 익살꾼역에 걸맞는, 주로 조연을 맡는 배우가 그려져 있어,  
[三枚目]라고 하면 코믹한 연기자, 또는 재미있는 사람을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