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 - 이츠키 히로유키 저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증명할 수 없는 일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과학만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시장원리(市場原理)만으로 생활하고 있지도 않다. 증명할 수 있건 없건 간에 그것을 믿으면서 멋대로 살아간다고 해서 아무런 지장도 없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요즘들어 갑자기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어쩐지 그 쪽이 자연스런 삶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그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직감이다. 멋스럽게 말하면 번득임이고, 낡은 표현을 쓰자면 감(勘)이다. 예전에는 육감이라고도 했다. 동물적인 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는데, 난 그쪽은 택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감이라는 쪽이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동물적인 감이라고 하면 뭔가 코를 킁킁거리면서 주위의 냄새를 맡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별로 마음에 안든다.
그런 뜻에서 나의 지금까지의 생활을 뒤돌아 볼 때 정말 이치에 맞지 않는 일만 하고 지냈다. 내 안의 소리에 충실하게, 이렇게 말하면 시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않한다는, 그 한가지를 완고하게 지키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예들 들어 엑스레이 촬영은 하지 않기, 같은 것이다. 주사도 내 몸에는 좋지 않다는 생각에서 피해왔다. 검사도 하지 않았다. 애당초 검사라는 것 자체가 신체에 있어 환영받는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화학(위장된 학식-化學)적인 약품은 몸에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요는 병원을 되도록 가까이하지 않으면서 산다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치과에는 다니지 않느냐고 따지는 친구가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60대 중반에 들어서면 당연한 일로 이가 망가지게 된다. 인생 50년이라는 게 옛부터의 통념이지만, 아무튼 그 정도가 인간이라는 존재의 내용(耐用) 한도일 것이다. 좀 부풀려서 60세 정도가 인간의 적당한 수명이 아닐른지. 치아도 눈도 하반신도 망가지기 시작하는 건 자연의 이치이다.
그런 뜻에서 아주 가끔 치과의사의 신세를 지고 있다. 하지만 그건 원해서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치과에 가되 가능한 한 근접하지 않으려는 게 내 방침이다. 이빨 치료를 받으려면 때론 렌트겐 폭격을 입게도 되고, 문제성 있는 혈액응고제 사용을 당하게 되는 위험성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양심적인 의사는 믿지 않겠지만 이 세상에는 상당히 뒤처진 전문가라던가 엉터리 프로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들을 잘난척 쓰고 있느냐 하면 이 세상에는 필요도 없는데 무턱대고 병원이나 의사에게 의지하려고 드는 사람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입원해서 종합검사하는 것이 취미인 양 부지런히 병원에 드나드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키고자 하는 자립심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 그것이 우선 문제인 것이다.
애당초 병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기 그지없게 느껴진다. 인간이란 물체는 으앙, 하고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병을 안고 살아가게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 완전하게 건강한 인간 같은 것은 있을 턱이 없다. 죽음은 만인에게 세트 되어 있다. 포유동물에게는 동일하게 5억회 정도의 호흡과 100년 전후의 시간이 주어졌을 뿐이다.
다시말해 우리들은 모두 죽음의 캐리어(carrier)로서 탄생했다고 볼수 있어 이를 억제할 약도 의학적 수단도 없다. 만약 노화를 스톱시키는 약품이 출현했다고 칠 때 나는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것 자체가 병이라고 본다. (内なる聲を聴くということ - 五木寬之著)
* * *
五木寬之의 [大河の一滴]라는 작품의 한 꼭지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희 3남매의
생각과 똑같아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서너꼭지 더 번역해 올리겠습니다.
그런 뜻에서 요즘들어 갑자기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어쩐지 그 쪽이 자연스런 삶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그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직감이다. 멋스럽게 말하면 번득임이고, 낡은 표현을 쓰자면 감(勘)이다. 예전에는 육감이라고도 했다. 동물적인 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는데, 난 그쪽은 택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감이라는 쪽이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동물적인 감이라고 하면 뭔가 코를 킁킁거리면서 주위의 냄새를 맡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별로 마음에 안든다.
그런 뜻에서 나의 지금까지의 생활을 뒤돌아 볼 때 정말 이치에 맞지 않는 일만 하고 지냈다. 내 안의 소리에 충실하게, 이렇게 말하면 시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않한다는, 그 한가지를 완고하게 지키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예들 들어 엑스레이 촬영은 하지 않기, 같은 것이다. 주사도 내 몸에는 좋지 않다는 생각에서 피해왔다. 검사도 하지 않았다. 애당초 검사라는 것 자체가 신체에 있어 환영받는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화학(위장된 학식-化學)적인 약품은 몸에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요는 병원을 되도록 가까이하지 않으면서 산다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치과에는 다니지 않느냐고 따지는 친구가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60대 중반에 들어서면 당연한 일로 이가 망가지게 된다. 인생 50년이라는 게 옛부터의 통념이지만, 아무튼 그 정도가 인간이라는 존재의 내용(耐用) 한도일 것이다. 좀 부풀려서 60세 정도가 인간의 적당한 수명이 아닐른지. 치아도 눈도 하반신도 망가지기 시작하는 건 자연의 이치이다.
그런 뜻에서 아주 가끔 치과의사의 신세를 지고 있다. 하지만 그건 원해서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치과에 가되 가능한 한 근접하지 않으려는 게 내 방침이다. 이빨 치료를 받으려면 때론 렌트겐 폭격을 입게도 되고, 문제성 있는 혈액응고제 사용을 당하게 되는 위험성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양심적인 의사는 믿지 않겠지만 이 세상에는 상당히 뒤처진 전문가라던가 엉터리 프로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들을 잘난척 쓰고 있느냐 하면 이 세상에는 필요도 없는데 무턱대고 병원이나 의사에게 의지하려고 드는 사람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입원해서 종합검사하는 것이 취미인 양 부지런히 병원에 드나드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키고자 하는 자립심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 그것이 우선 문제인 것이다.
애당초 병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기 그지없게 느껴진다. 인간이란 물체는 으앙, 하고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병을 안고 살아가게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 완전하게 건강한 인간 같은 것은 있을 턱이 없다. 죽음은 만인에게 세트 되어 있다. 포유동물에게는 동일하게 5억회 정도의 호흡과 100년 전후의 시간이 주어졌을 뿐이다.
다시말해 우리들은 모두 죽음의 캐리어(carrier)로서 탄생했다고 볼수 있어 이를 억제할 약도 의학적 수단도 없다. 만약 노화를 스톱시키는 약품이 출현했다고 칠 때 나는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것 자체가 병이라고 본다. (内なる聲を聴くということ - 五木寬之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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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木寬之의 [大河の一滴]라는 작품의 한 꼭지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희 3남매의
생각과 똑같아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서너꼭지 더 번역해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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