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正喜の[歲寒圖] 김정희의 [세한도]   -   민속문양 [民俗紋樣]




  紙に描いた水墨畵, 23.7 × 108.2 cm, 個人所藏

<歲寒圖>は、秋史·金正喜が濟州道に島無しとなった頃の1844年に描いた絵です.
地位と權力を奪われた立場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師弟の義理を以て2回に渡り
北京から貴重な書物を求めてくれた弟子にあたる李尙迪譯官に、彼の人柄を
松柏に喩えて描き, お礼に与えたものです.
わびしは景色の中に立つ松木と柏數本を葛筆で描き, 餘白に隸書で<歲寒圖>と
絵の題目を書き入れました。
小さな字で書いた ‘(藕船是賞(藕船は李尙迪の雅號)’という款識が、確かに李尙迪に
送るために描いたものであることを明しています.
終りの方に〈歲寒圖〉を描くに至った謂れを綴った跋文が付いてあり,
翌年、この絵を北京の名士16名に披露して受けた讚詩が長く連なっています.
なお、後日この絵を鑑賞した秋史の門下生 金ソクジュンや、吳世昌·鄭寅普·
李始榮等の讚文も書かれ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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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
두루마리/종이에 수묵, 23.7×108.2 cm, 개인 소장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인 1844년에
그린 그림이다.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한 처지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제간의 의리를 지켜
2회에 걸쳐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 준 제자 역관 이상적(李尙迪)에게
인품을 송백으로 나타내어 답례로 그려 준 것이다.
스산한 겨울 분위기 속에 서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松柏) 몇 그루를 갈필로
그렸는데, 여백에 예서로 <歲寒圖>라는 그림 제목을 써넣었다.
작은 글씨로 쓴 ‘우선시상(藕船是賞, 藕船은 이상적의 호)’이라는 관지가
바로 이상적을 위해 그려진 그림임을 밝혀주고 있다.
끝에〈세한도〉를 그리게 된 연유를 담은 발문(跋文)이 붙어 있고,
이듬해 이 그림을 북경의 명사 16명에게 보여 얻은 찬시들이 길게 이어져있다.
또한 훗날 이 그림을 본 추사의 문하생 김석준의 찬(贊)과 오세창·정인보
·이시영 등의 시문(詩文) 등도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