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한 토막상식(22) 요코하마에서 비롯된 문화...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메이지(明治)시대의 개막과 함께 나라의 현관으로서 발전하기 시작한 항구도시
요코하마(橫濱)에는 바닷바람을 타고 각국으로부터 다양한 문화가 흘러들어왔다.
말하자면 일본의 근대화는 거의가 이 지역으로부터 이루어지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그 중  요코하마에서부터 비롯된 것 몇 가지를 들자면:

* 등대 - 선박의 항로에 없어서는 안될 것이 등대 불빛인데, 이것을 건설한 사람이
바로 영국의 토목기사 R.H. Brunton이란 사람이다. 이 사람은 메이지 원년(1863)에
초청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와 우선 本牧灯台를 건조하였다.
그리고 6년 후의 새로운 회전식 등대 점등식 때에는 메이지천왕도 임석하여
해안은 온통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참고로, 브란튼은 귀국하기 까지 28기의 등대건설에 임하였고, 그 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일본 문명에 공헌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 철교 - JR역의 이름으로 지금도 남아있는 [關內]라는 말은 大岡川에 가설된
吉田橋를 경계로 한 “関門の内”의 외국인 거류지를 가리킨다.  이 吉田橋는
원래 목제였던 것을 내구성이 강한 철교로 바꾸게 되었다.
이 다리를 놓은 사람 역시 R.H. Brunton으로, 당시 지사의 경비절감 지시를 받들어
일본인 대장장이들을 모아 작업을 시키고, 철재는 홍콩에서 도입하여
메이지2년(1869)에 전장 23.6미터의 철교를 완성시켰다.

* 가스등 - 가나가와현(神奈川縣)에 외국인이 가스등 건설신청을 낸 것은
메이지3년(1870), 요코하마의 실업가 高島嘉右衛門은 이권이 외국인에게
독점되지 않게 하기 위해 재빨리 [일본 가스 社中]을 설립하였고, 가스등 건설의
권리를 둘러싸고 독일상사와 이권다툼이 벌어졌는데, 외무성과 가나가와현은
어느쪽에 면허를 허가할 것인가 고민하다 결국 일본측에 교부했다.
즉각 프랑스인 기사 메르그랑이 초청되고, 영국에서 수입된 기둥과 일본기술자에
의한 燈具로 완성된 가스등은 메이지5년(1872) 무사히 점등식을 갖게 되었다.

* 가로수 - 慶應3년(1867) 거류지 외국인들의 요청으로 吉田橋에서 本町通까지
마차 전용 도로가 만들어졌다. 다음에는 마차 왕래에 따른 위험방지 대책으로
보도가 만들어지고, 거리의 경관과 녹화를 의도하여 소나무와 버드나무를 심었는데,
이것이 가로수의 시초이다.

* 서양 기와 - 요코하마에 이주해온 외국인들은 서양식 가옥을 건축하고자 했으나
일본에는 그에 맞는 기와가 없었다. 그 점에 착안한 프랑스인 알프레드 제라르는
곧 元町에 제작소를 세우고 서양기와와 벽돌 타일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공장부지내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을 요코하마항에 출입하는
배에 음료수로서 공급하였는데, 그 때문에 모두들 제라르공장을 「煉瓦屋敷」
혹은「水屋敷」라고 불렀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관동대지진으로 붕괘되었고, 그 자리에는 일본 최초의 공인풀장인
「元町풀」이 탄생되었다.

* 근대 수도 - 바다나 늪을 매립한 곳에서 살고 있는 요코하마 주민들은 우물을
파도 탁하고 찝찔한 물밖에는 나오지 않아 안전하고 좋은 물을 갈망했다. 그러나
수도를 놓기 위한 시도가 번번히 실패하여 결국 중국에서의 수도건설 실적을 가진
영국 공병중좌 파마의 협력을 빌게 되었다. 그는 영국에서 자재를 들여와 道志川와
野毛山 저수지를 연결하는 약 48km에 달하는 수도공사를 완성시켰다. 이윽고
메이지20년(1887) 10월 17일부터 시내에 급수 개시, 이것이 근대수도의 시초이다.

* 일간신문 - 에도시대까지 일본의 뉴스 전달방법은 「瓦版」, 에도 후기에는
외국신문을 번역한 [해외신문] 등이 발행되었으나, 메이지3년(1870) 12월 8일에
창간된 [요코하마매일신문]이 최초의 일간신문이다.
당시의 신문기사를 훑어보면 환전시장, 배의 출입항시간, 이사 통지, 습득물, 그 밖에
거류지에 사는 외국인의 가십 등이었다. 말하자면 지방지인데, 후에 [도쿄매일신문]
으로 발전해나갔다.
 
* 「君が代」- 「君が代」를 작곡한 인물이 영국인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메이지3년(1870) 영국의 군악대장 펜톤이 도쿄에서 실시된 천황 관람의 조련날에
연주하기 위해 가사의 뜻도 모르는 채 선률을 맞춰 작곡한 것이 최초의 [기미가요]이다.
그 후, 메이지13년에 궁내 省樂師 奥好義가 작곡하고, 해군군악대에서 고용한 독일인
엣켈트가 양악으로 편곡하여 공표하였는데, 이것이 현재의「君が代」이다.

* 철도 - 喜永6(1853)년, 러시아군함 파르라다 선상에서 테이블 위를 달리는
증기기관차의 모형을 佐賀藩士가 처음으로 보았고, 다음해 미국사절단이 선물로
가지고 온 것이 역시 모형 증기기관차였는데, 소형이지만 시속 32킬로로 달려
일본인이 처음으로 시승을 했다.
이렇게 차츰 고조되는 철도열기 속에서 메이지5년(1872) 영국인 기사 모렐의 지휘하에
요코하마~신바시 간 29킬로를 53분으로 연결짓는 철도가 개통된 것이다.
개업식이 열린 곳은 요코하마 정차장, 하지만 운임이 무척 비싸 승차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