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될 용기, 있습니까? : 唯川惠(유이가와케이)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이 나이가 되어서 말하는 건 부끄럽지만, 나는 삼형제의 막내로, 양친이 나이가 많이 든 뒤의 아이라는 것도 있어, 상당히 어리광을 부린 점이 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갈 때 까지 계속 양친과 함께 자고 있었고, 학교에서 돌아와 어머니가 안계시거나 하면, 상당히 불안했습니다. 혹시나 양친이 나를 두고 사라져버린게 아닌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러던 나도 조심씩 크고 나서 이윽고 의지를 갖게 되고, 반항기가 오기도 하고, 자신만의 비밀이 늘거나 해서, 언제부턴가 양친을 역겹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양친에게 응석을 부리는 감각도 사라지고, 더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 예를 들러 친구라던가 애인이라던가, 그쪽으로만 눈이 향하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양친에 대해 늘 이런 기분으로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나에 대한 건 내버려둬요”  귀가가 늦어지면 어디 갔었니?” 라고 묻거나, “지금 전화, 누구야?” “오늘은 어디 가니?” 그 옷, 어디서 샀니?” 라는 말 듣는 게 귀찮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아아, 이제, 부모 같은 거 필요 없어라고, 아무튼 부모로부터 떨어지고 싶어 어쩔 줄을 몰랐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난 부모에게 응석을 부릴 만큼 부리고 있었습니다.

 아침밥도 저녁밥도 짓는 건 어머닙니다. 난 그걸 먹을 뿐. 때로는 설거지도 했습니다만, 뭐가 어쩌니 하면서 모른 체 하는 것도 자주. 목욕물도 이미 끓여놓은데 들어가고, 보고 싶은 텔레비전 프로가 있을 때는 이쪽 형편으로 늦추거나 하고. 그런 상태는 오래 계속되어, 실제로 OL3년째 정도 까지는 도시락도 자주 만들어 받고 있었고, 집에는 돈도 내놓지 않았었습니다.

 나는 양친을 역겹게 생각하면서, 형편이 좋을 때는 안벽하게 응석을 부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자신은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실은 난 서른 살 까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진학도 취직도 자택에서 다닐 수 있는 범위였던 것, 계속 싱글이었 던 것 등의 이유도 있어, 밖으로 나갈 찬스가 좀처럼 없었던 겁니다. 라고 말하는 건, 실은 핑계입니다. 난 혼자가 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30세라고 하면 이제 어엿한 어른입니다. 하지만, 나는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어린이인체였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어 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나, 형편이 좋지 않게 되면 금방 어린이로 변신하여, 양친에게 응석을 부리면서 의지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30세를 넘어, 난 처음으로 혼자살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양친 가까이였기 때문에, 독립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으나, 이윽고 그 고장을 떠나, 도쿄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최초에는 이제, 이거야말로 자유! 라는 느낌으로 느긋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먹는 밥. 늦잠을 자도 아무도 깨워주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우스울 때 그치 그치할 상대도 없습니다. 열이 나도 금방 죽이 나오는 일 같은 일도 없는 겁니다.

 확실히 늦게 귀가해도 야단맞지 않고, 하고 싶을 때 목욕탕에 들어갈 수 있고, 방이 어질러져있어도 잔소리는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 맞바꾼다 해도 큰 거스름이 나올 만큼의 편안함을, 양친으로부터 받고 있었던 것이었음을 그 때 난 처음으로 깨달았던 겁니다.

 요즘, 일란성(一卵性) 모녀라고 해서 찰싹 붙어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사이좋은 모친과 딸도 있습니다. 부친에게 이상적인 남성상을 포개고 있는 딸도 있습니다. 그건 부모와 딸에게 있어, 무척 쾌적한 상태일겁니다. 응석부리는 딸에, 응석 받는 일이 기쁜 부모.

 하지만, 그것이 너무 극단적으로 달려버리면 인 자신이 지나치게 쾌적하여, 그 이외의 자기가 되는 걸 무의 중에 거부해버리는 일이 되고 마는 게 아닐는지요.

 딸로 있을 수 있는 건 부모 앞뿐입니다. 밖으로 나가면, 여러 가지 자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때로는, 억지라고 생각되는 것 같은 일에도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쪽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않으면 안될 때도. 그런 밸런스를 취하는 일을 할 수 있을 전도의, 부모와 딸 관계였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을 해도 어머니에게 지나치게 달라붙게 되어, 친정에 너무 들락거린 끝에 이혼을 하던가, 부친과 지나치게 비교를 해서 남편이나 애연 쪽이 자신을 잃고 만다던가, 여러 가지 성가신 문제가 일어나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물론, 이건 딸쪽뿐만 아니라, 부모측에도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는 결과, 이런 일이 되는 것 같습니다만.

 생각건대, 양친과 함께 있을 때는, 어느 만큼 나이를 먹어도 로서의 자신부터 빠져나올 수는 좀처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댜해도, 언젠가는 서로를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대등한 교제가 될 수 있게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도 딸도, 진덩한 의미에서의 독립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양친과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일은,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을 나가라, 라고 권할 기분은 없습니다만, 동거한다면, 의식해서 정신적으로 거리를 둘 일도 필요하겠지요. 그러한 스탠스가, 자신을 어른으로 해 주고, 이번에는, 지금까지 응석을 부리게 해준 만큼, 응석을 받아주자, 정도의 딸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양친과 부딪치는 일은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결혼에 환해서의 충돌은, 상당히 심각한 게 있을겁니다 결혼을 반대한다요즘 그런, 하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영원한 문제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무척 사이가 좋았던 모녀였으면 더욱 나의 친지도 그 한사람.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만, 양친은 허락해주지 않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학력, 회사의 위치, 가문, 뭐니뭐니 하면서 트집을 집는겁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좋은 사람이니 까, 만나면 틀림없이 잘 될거라 생각하고, 양친에게 소개했습니다. 이게, 더욱 꼬여버리게 되버린겁니다.

좋은 사람이 아니다. 믿을 수 없을 뿐이다. 그런 남자에게 너를 맡길 수 없다’  라는 일이 되고 말았던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와 어떻게 해서라도 결혼을 하고 싶어, 마침내 집을 나갈 결심을 했습니다. 그걸 안 부모는 이렇게 말했던 겁니다.

넌 부모를 버리는거냐’  그걸 듣자, 그녀의 결심도둔해집니다. 정말 이것으로 괜찮는걸까 하는 하지만, 부모의 반대를 뿌리치고 결혼하는 건, 결코 부모를 버리는 일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다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건 DNA 중에 짜여진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리고 부모도, 아이에게 행복해지기 바라는 본능이 있는 겁니다.

 하지만, 딸의 행복은 딸이 느끼는 것으로, 부모의 자로 잴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부모 또한 어린이 같은 곳이 있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딸을 곁에 두고 싶다고 원하는 경우도 있을겁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하면 좋은겁니다.

 아이는 부모를 발판으로 하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그것이 진화라는 것입니다. 부모 쪽도, 정말은 그걸 잘 알고 있는겁니다. 자신도, 어린이였을 때가 있기 때문에 그 대신, 확실히 행복해 지는 일. 그것만이, 딸이 할 수 있는 부모에게 은혜갚은 것일테죠.

 딸이 행복하게 있어준다면, 부모 역시 행복합니다. 슬픈듯한, 기쁜듯한 , 그것이 틀림없이 부모라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