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鄕新聞 : 2019年7月29日 - 번역 [飜譯]/韓日飜譯 [한일번역]
[餘滴] べグパッカー : Jo Unchan 論說委員
「一時学生達の間で無錢旅行が盛行した. 夏(冬)休みを利用して 3,4名が道ずれを成し地方を巡廻する事だが、村や呑み屋に寄れば新聞支局とか地方人士の世話も受けた. 学生に重い責任を負わせた当時の社会は、全然見た事も聴いた事も無い学生等の下宿を世話してやり、彼等の昼食代を世話してあげながらも、かえってふたとない楽しみと感じたものだ.」(金ナムチョンの ‘無錢旅行’)
小說家金ナムチョンの話の如く無錢旅行が流行った時節があった. 條件無しで宿食の提供を受けつつ旅行する事が出来たのは人情と手厚い持て成しが残っていた故だ. 日帝の强圧統治の時無銭で海外旅行をした人も居た. 作家の沈勳がそうだった. 自意半分他意半分で上海·杭州·北京をさまよった彼は「無銭旅行記、北京から上海まで」を残した. 沈勳にとって無銭旅行は文学の夢を育てた「無銭留学」だった.
無銭旅行は靑春の特権だった. 冒險と挑戰の象徵だった. 大人等にそれは「放浪癖」の他名で包裝されもした. 時代が変わった. 資本主義時代に無銭旅行は容易くない. 特に海外無銭旅行は不可能に近い. しかしながら若者等は抛棄を知らなかった. ワーキングホリデーとかバッグパッキング等、新種の無銭旅行が登場する事になった背景だ. ワーキングホリデーは現地に就業して經費を調達しつつ旅行する制度で, 国家間協定で運營されている。「物乞い(beg)」と「排囊旅行(backpacking)」の合成語である「ベグパッキン」は袖乞いをしつつ行う旅行を指す.
亜細亜の言論等が最近求乞旅行者である「ベグパッカー」の問題点を指摘して出た. 亜細亜を旅行する白人ベグパッカー等が露骨的求乞行脚で觀光地のイメージを毁損させているとの事だ.
ベグパッカー等は旅行費と遊興費を充当するために路上ライブ(道路公演)·偽の乞旅を開くといえば, 王宮·寺院等の禁止地域で物乞いをやる場合まであると言う. ベグパッカーに対する認識が悪くなりつつ一部国家では追放まで擧論されている. わが国も例外地域では無い. ベグパッカー等は肝腎の白人国家では冷遇されるそうだが、亜細亜が彼等の舞台になった理由は何なのか. 生活費が安い故か. 我等のオリエンタリズム故か.
[여적] 베그패커 : 조운찬 논설위원
“한때 학생들 간에 무전여행이 성행하였다. 방학 때를 이용하여 서넛이 작반하여 지방을 순회하는 것인데 고을이나 술막에 들르면 신문지국이나 지방인사의 신세를 졌다. 학생 위에 무거운 책을 지웠던 당시의 사회는 생판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학생들의 하숙을 주선해 주고 그들의 점심값을 알선해 주면서도 불평은 샘스러 다시 없는 즐거움으로 여겼었다.”(김남천 ‘무전여행’)
소설가 김남천의 얘기처럼 무전여행이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조건 없이 숙식을 제공받으며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인정과 환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압통치 때 무일푼으로 해외를 여행한 이들도 있었다. 작가 심훈이 그랬다. 자의 반 타의 반 상하이·항저우·베이징을 떠돈 그는 ‘무전여행기: 북경에서 상해까지’를 남겼다. 심훈에게 무전여행은 문학의 꿈을 키운 ‘무전유학’이었다.
무전여행은 청춘의 특권이었다. 모험과 도전의 상징이었다. 어른들에게 그것은 ‘방랑벽’의 다른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했다. 시대가 바뀌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무전여행은 쉽지 않다. 특히 해외 무전여행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젊은이들은 포기할 줄 모른다. 워킹홀리데이나 베그패킹 등 신종 무전여행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워킹홀리데이는 현지에 취업해 경비를 조달하며 여행하는 제도로, 국가 간 협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구걸(beg)’과 ‘배낭여행(backpacking)’의 합성어인 ‘베그패킹’은 구걸하면서 하는 여행을 가리킨다.
아시아 언론들이 최근 구걸 여행자인 ‘베그패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아시아를 여행하는 백인 베그패커들이 노골적 구걸 행각으로 관광지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베그패커들은 여행비와 유흥비를 충당하기 위해 버스킹(거리공연)·거짓 구걸을 벌이는가 하면, 왕궁·사원 등 금지 지역에서 구걸을 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베그패커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추방까지 거론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 지역이 아니다. 베그패커들은 정작 백인 국가에서는 홀대받는다는데, 아시아가 그들의 무대가 된 이유가 뭘까. 생활비가 싸기 때문일까.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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