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4명의 자식에게 쓴 인생 편지(石原愼太郎)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 부친이 되는 너희들에게 - 石原愼太郎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하는데, 장남인 노부테루(伸晃)가 태어났을 때, 병원에서 처음으로 내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는 자기라는 존재가 사슬처럼 작은 하나하나의 고리를 이은 커다란 연결 가운데 끼어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던 것이다. 그로부터 세 명의 사내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장남인 노부테루(伸晃)가 이미 30. 곧 결혼을 하게 되는 나이가 되고, 막내인 노부히로(延啓)도 대학 3학년이라는 지금에 이르고 보니, 부친으로서의 너희들과의 어울림도, 느끼지 못한 사이에 상당한 세월이 지났구나 하는 느낌이 새삼 든다.

부모 자식 여섯명이 함께 저녁식사 할 때의 이야기 가운데 너희들의 누군가가 가끔, 절반은 진지한 얼굴로,

하긴 우리 형제들 정말 제대로 자랐지. 사내아이들이 네명이나 있으면, 그 가운데 누군가 한사람쯤은 중학, 고교, 혹은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 보도(補導)를 받는다거나, 잘못하다가는 감별소에도 갈 수 있는데, 용케도 무난히 여기까지 왔네.” 라고 말할 때가 있었다.

너희들 자신이 너희 세대의 갖가지 현상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며 한 개탄이라고 생각되는데,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기분이 들고, 부모로서 고맙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바로 최근 일인데, 3남인 히로타카(宏高와 넷째 아들 노부히로(延啓)가 둘이서만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듣고 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소리 높여,

아버지도 다른 분과 비교하면 늘 꽥꽥 소리치지만, 결국 그만큼 우리들을 사랑하고 있는 거겠지라고 말하고 있었다고. , 알아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내가 너희들에게 있어 어떠한 부친이었던가는 너희들 각자에 따라 인상도 평가도 다르겠지. 어찌되었든 나는 나 나름대로 노력도 해왔는데, 너희들이 이윽고 가정을 갖게 되고 새로운 부친이 되려고 하는 이 시기에, 부모와 자식, 특히 아버지와 아이들이라는 관계가 인간에 있어, 혹은 사회에 있어 어떠한 것이어야 마땅한가를 서로 생각해보는 일은 결코 쓸데없는 게 아니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너희들이 있음직한 좋은 부친이 되어간다는 일이, 너희들의 부친인 내게 대한 책임을 다한다는 것도 되는 게 틀림없다. 나는 나대로 너희들에 대해 부친으로서의 책임을 다해 온 셈인데, 동시에 그건, 나나 유지로(裕次郞)를 더할 수 없이 사랑하면서 젊었을 때 사망한 나의 부친에 대한 책임 이행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 책임의 연결이, 내가 느낀, 그 테두리를 연결한 커다란 고리라는 게 되는지도 모른다.

부친이라는건, 도대체 무엇인가.

어쩐지 현대가 되면 될수록, 가정 안에서도, 사회 안에서도, 부친 즉 남자라는 것의 이미지는 엷어져가는듯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여자가 강하게 되고 남자가 약하게 되었다는 현대의 증후에 대해서, 어느 역사학자는 전쟁을 하고 있는 국가, 민족이라는 것 안에서는, 늘 남자가 여자보다 우위(優位)이며, 여자보다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그건 인간에 관한, 혹은 역사에 관한 하나의 공리(公理)인지도 모른다. 다행이도, 현대의 일본에서는 전쟁 염려는 거의 없으나, 그러한 적극적인 긴장감을 잃고, 이른바 소프트화 된 문명사회 속에서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전도하여 부친의 존재가 희박해진다는 것은, 가정에 있어서도 인간에 있어서도 사회 전체에 있어서도, 결코 행복한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