冬の樹木:黃東奎 (겨울나무 : 황동규) - 번역 [飜譯]/韓日飜譯 [한일번역]
葉っぱが大きくて華麗な樹木等が冬の数ヵ月間衣を抜いて立っている姿は獨特な美しさを保っている. この頃はソウル市内で見られない光景になったが, たまに德壽宮とか祕苑へ寄った時、適当に痩せた体をそのままにして楽に立っている樹木等を見ると省くもの全てを省いた、とある嚴格な美しさを感じさせてくれる. その嚴格さに惹かれて朴壽根のような画家は夏の樹も冬の樹のように絵がいたことだろう.
闊葉樹の中でも欅と柳のヌードは心を惹く. 箒のようにやぼったく立っている冬ポプラや、執念まみれの枝を四方へ差し出している桜木の裸体は我々が容易く親しめる雰囲気を見せてくれない. 街路樹である故だろうが、あちこち骨折傷を受けたプラタナスの裸も同じだ.
欅は気品があって重味がある。別々に立っていつつもあせりを感じさせない, 安らかに立っている冬欅等を見ていると樹木のとある原型のようなものを感じる. 我らの想像とか夢の中で息づく樹木, 彼らの上に冬欅が立っているのだ. 大きな枝を自然に広げ、小枝等は纖細に上を向いて立っている. 形態も形態だが、その色感や! それも所々雪をかぶり夕空を背景にして立っている時の色の質感とは!
柳の裸はモダンだ. 他の樹木等が全て空へ向かって枝を伸ばしているけれど柳は大地に向けて細い枝を垂らす. きれいに梳いた髪の毛で丸く体を隠した女の体だ. 德寿宮にある柳は言うまでもなく街路樹として立っている柳も雰圍氣を携えている. 柳が街路樹に選ばれたのは幸いな事だ. うら寂しいソウル市街をどれほど和やかにしてくれるか.
しかし同じ冬の樹木でも立っている姿に依って格好が異なる. 春夏にはさほど差が無いけれども冬の德壽宮で眺める樹木と祕苑で眺める樹木は異なるのだ. 祕苑の樹木が豊かなフォームで楽に立っているのに対し德壽宮の樹木はなんとなく捻じ曲がった不安な姿で立っている. 周圍の騷音でなければ空氣汚染のためだろう. 明洞の隅に押し込まれている樹のかっこうは話にならない.
葉っぱをまとっている間は似通っていたのがこれほど変化する. 人間も同じであろう. 各々仕事に沒頭している時は別に区別出来ないが、一旦仕事を終えて冬樹のように休む時差が現れる. 精神が全うな時に因って姿が定められるのだ. 自分が休む時、自分の雰囲気は何処に居る樹だろう? もしや祕苑の樹だろうか, 德壽宮の樹か? もしや明洞とか忠武路の隅に貧乏臭く立っている樹ではないだろうか?
겨울나무 / 황동규
잎사귀가 크고 화려한 나무들이 겨울 몇 달 동안 옷을 벗고 서 있는 모습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즈음 서울 시내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 되었지만, 어쩌다 덕수궁이나 비원에 들를 때 알맞게 마른 몸을 그대로 드러낸 채 편안하게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면 생략할 것을 다 생략한 어떤 엄격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 엄격함에 끌려 박수근 같은 화가는 여름 나무도 겨울나무처럼 그렸을 것이다.
활엽수 가운데서도 느티와 버들의 누드는 마음을 끈다. 빗자루처럼 멋없이 박혀 있는 겨울 포플러나 집념투성이의 가지를 사방으로 내밀고 있는 벚나무의 나체는 우리가 쉽게 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주지 않는다. 가로수이기 때문이겠지만 여기저기 골절상을 입은 플라타너스의 맨몸도 마찬가지다.
느티는 의젓하고 깊다. 따로따로 서 있되 조바심이 느껴지지 않는, 편안히 서 있는 겨울느티들을 보노라면 나무의 어떤 원형 같은 것이 느껴진다. 우리의 상상이나 꿈속에 숨쉬는 나무들, 그들 위에 겨울 느티들이 서있는 것이다. 큰 가지들을 자연스레 펼치고 잔가지들은 섬세하게 위로 올리고 서있다. 형태도 형태지만 그 색감이란! 그것도 띄엄띄엄 눈을 쓰고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을 때 색의 질감이란!
버들의 벗은 몸은 모던하다. 다른 나무들이 모두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는데 버들은 대지를 행해 가는 가지들을 늘어뜨린다. 잘 빗은 긴 머리카락으로 둥글게 몸을 가린 여자의 몸이다. 덕수궁에 있는 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로수로 서 있는 버들도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버들이 가로수로 택해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을씨년스러운 서울의 겨울 거리를 얼마나 부드럽게 해주는가.
그러나 같은 겨울나무들도 서 있는 것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봄여름에는 별 차이가 없으나 겨울 덕수궁에서 보는 나무와 비원에서 보는 나무는 다른 것이다. 비원의 나무가 넉넉하고 편안히 서 있는 데 반해 덕수궁의 나무는 어쩐지 뒤틀리고 불안하게 서 있다. 주위의 소음 때문이 아니면 공기오염 때문일 것이다. 명동 구석에 박혀 있는 나무의 몰골은 말이 아니다.
잎을 두르고 있을 때는 비슷하던 것이 이처럼 달라진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각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별로 구별이 되지 않지만 일단 일을 그치고 겨울나무처럼 쉴 때 차이는 드러난다. 정신이 서 있는 곳에 따라 모습이 정해지는 것이다. 내가 쉴 때, 내 분위기는 어디 있는 나무인가? 혹시 비원의 나무인가, 덕수궁의 나무인가? 혹시 명동이나 충무로 구석에 궁상맞게 서 있는 나무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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