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날   -   잡문 [雜文]

 

내일이 설날, 바빠야 할 날인데 난 한가하기만 하다.

여인들 둘이 사니 손 가는 차례 음식 준비할 일도 없다.

 

하릴없이 인터넷 서핑 하다 차례상 이미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적 설이 떠오르면서,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가 몹시 그리워진다.

섣달에 접어들면 어머닌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다.

우선 오빠들의 설 한복을 챙기신다. 명주 바지저고리 뜯어 빨아

풀 먹여 다듬이질 할 땐 난 졸린 눈을 부비면서 홍두깨를 돌려야했다.

집에서 미리 미리 준비할 음식이 왜 그렇게 많던지, 하긴 육포부터 시작해서

약과도 다식도 강정도, 아무튼 차례상에 오를 음식은 모두 어머니가 손수 만드셨으니.

섣달 그믐날 밤, 동생과 난 늦도록 어머니 곁에서 만두를 빚었지...

 

설날 아침, 큰오빠는 흰 바지저고리에 쪽빛 조끼와 마고자 차림이고

작은 오빠는 흰색 저고리 연회색 바지에 군청색 마고자였는데,

빛깔이 흰 큰오빠는 한복차림이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마치 꼬마신랑 같았지.

대청마루에서 두 오빠가 차례를 지내는 동안 나와 동생은 밖에서

분합문 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어서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렸지.....

까마득한 옛 일이 왜 이렇게 눈앞에 서언한지 모르겠다.

 

새해 새아침은 11일에 이미 맞이했고, 차례도 안 지내는 설날이

내게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그래도 섭섭하니 내일 아침은 시리얼 대신

떡국을 끓여 딸아이와 오붓하게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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