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소카리비아」(村上春樹)의 그리스 기행문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프로도롬에서 카프소카리비아 까지는 상당히 힘든 길이었다. 평지 같은 건 거의 없이 상당히 급한 오르막길이거나 아니면 상당히 급한 내리막이다. 깎아지른듯한 산을 하나 넘으면 깊은 계곡이 나오고, 또 가파른 산이다. 그걸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고 있으니 그만 짜증이 났다. 바다를 낀 절벽의 대부분은 무너져 없어지고, 잔해의 경사면을 더듬으면서 나아가야 했다. 2시간 정도 걷자 몹시 피곤해 절벽 위에서 휴식,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물을 마시고, 크레만 신부에게서 얻은 빵과 올리브를 먹었다. 피곤한 몸에 올리브의 소금끼가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기분 좋았다.
아침엔 우리들의 오른쪽에 솟아있던 아토스산이 지금은 우리들 등 뒤로 돌아가 있었다. 우리는 반도의 남단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이 들고 보니 아까까지 뚜렷하게 보이던 아토스 산정 부분이 기분 나쁜 어두운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넓적하고 묵직해 보이는 구름이다. 그리고 그 구름 밑은 회색의 그늘로 흐릿해 보인다. 필경 산 위쪽은 비가 오고 있는 모양이다. 그것도 상당히 심한 비가. 또다시 변덕스러운 날씨가 되었다. 큰일 났다, 어쩌면 이쪽도 내리지 않을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후드득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허둥지둥 일어나 걷기 시작했는데, 20분인가 30분쯤 걸었을 즈음부터 비는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잖아도 험한 길인데 비까지 내리니 아무튼 최악이다. 눈 깜빡할 사이에 모든 게 흠뻑 젖어버렸다. 그저께의 되풀이였다.
커다란 수도원을 중심으로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반도 중앙부와는 달리, 이 부근에서는 많은 수도승이 산 속에서 거의 농부와 같은 개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걷다 보면 군데군데 하나둘 인가가 보인다. 작은 밭이 있고, 가축우리가 있고, 포도넝쿨이 있고, 개가 있다.
가끔 만나는 승려는 예의 승모를 쓰고 있긴 한데, 승복이 아니라 더 힘든 육체노동에 적합한 작업복을 입고 있다. 저지 바지나 청바지를 입고 있는 승려도 있었다.
또한 더욱 힘들고 고독한 장소를 구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끝에 세운 수도오두막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 건물을 지었을까, 깜짝 놀랄만한 곳도 있었다. 그런 인가나 수도오두막 같은데서 비를 피할 수는 있었으나, 어떻게든 카프소카리비아의 선착장까지는 가보자는데 중론이 일치했다. 사실 아토스 체재허가는 오늘로 끊어지게 되어 있어서 4시에 카프소카리비아항에서 떠나는 배를 놓치면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심하게 퍼붓는 빗속을 힘내어 계속 걸었다.
카프소카리비아까지의 길은 특히 기록할 것도 없다. 비가 심하게 내리고, 길이 무섭도록 험해 우린 말할 수 없이 지쳐 말도 안하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그 정도다.
결국 카프소카리비아에 도착한 건 2시가 넘어서였다. 그 때 우리들은 강을 헤엄쳐 건너온 사람들처럼 흠뻑 젖어 뼛속까지 얼어있었다.
카프소카리비아는 잘라낸 산의 표면이라고 할까, 그러한 절벽에 가까운 경사진 곳에 만들어진 동네였다. 왜 애써 이런 고약한 곳을 골라 동네를 만들었는지 난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런 경사진 곳에는 밭도 만들 수 없고, 어디든 가려면 오르락 내리락을 해야 한다. 마을 입구에서 제일 밑에 있는 선착장까지는 아마도 빌딩 30층 정도의 높낮이 차가 있을 것 같다. 정말 기막힌 지형의 동네였다. 하긴 동네라고는 해도 가게나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수도원 관계 건물과, 독립된 수도오두막과 같은 것이 길섶에 점재해 있을 뿐이었다. 인적도 없다. 아무튼 텅 빈 쓸쓸한 장소였다. 특히 비가 쏟아지고 있으니, 세상의 끝이라고 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상당히 말단에 접근한 장소인 것처럼 느껴진다. 배가 떠날 때 까지는 아직도 2시간 가까이 있었지만 우린 걱정이 되어 ㅡ이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ㅡ 우선 선착장까지 내려가 보기로 했다.
선착장은 동네가 끝난 훨씬 밑에 있었다. 항아리 바닥 같은 곳이다. 절벽에 만들어진 급경사 계단을 맨 아래까지 내려가자, 확실히 콘크리트 제방 같은 것이 바다를 향해 튀어나와 있었다. 파도가 그 곳에 철썩철썩 부딪혀 물보라를 일으키고, 이곳저곳에서 어두운 색 수초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끝없는 바다위에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배후는 절벽이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부두 건물도 없으려니와 표시도 없다. 그저 둑이 있을 뿐이었다. 기가 막혀서, 이런 곳에서 앞으로 2시간 비에 젖으며 배를 기다려야 하는가 생각만 해도 힘이 빠진다.
하지만 살기 마련, 조금 앞으로 나가보니 동굴 같은 것이 있었다. 이 부근이 아마도 동굴이 생기기 쉬운 지형인 모양이다. 그다지 깊은 동굴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에 들어가니 비를 피할 수는 있었다. 우린 그곳에서 옷을 벗고 타올로 몸을 닦은 다음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식사를 했다. 무척이나 배가 고팠고, 어쨌거나 이제 배에 올라 아토스를 떠나니까, 하면서 나머지 식품을 거의 모두 먹었다. 토마토와 치즈와 피망을 빵에 끼워 먹고, 올리브를 먹었다. 색 속에 남은 것은 크래커 조금과 치즈 두 조각과 레몬뿐이었다.
시계가 3시를 가리켰을 때 겨우 비가 그쳤다. 비가 그치고 나자 회복은 빠르다. 눈 깜빡할 사이에 태양까지 나왔다. 아토스의 날씨는 참으로 제멋대로다. 우리는 동굴에서 나와, 햇볕에 젖은 셔츠와 바지를 말리면서 오랜만에 쇼트팬츠 한 장만 걸친 채 일광욕을 했다.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난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어찌 되었거나 이젠 배가 오는 걸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예정이 늦어져서 반도의 끝까지 돌지는 못했으나, 아무튼 앞 끝까지는 왔고, 이제 식료품도 없어졌으니 돌아갈 때다. 슬슬 수염도 깎아야겠고, 목욕도 하고 싶고, 술도 마시고 싶다.
그런데 배는 오지 않았다.
4시가 되어도, 4시 반이 되어도, 5시가 되어도 배는 오지 않았다.
“왜 안 오지?” 하면서 우린 가능성을 서로 검토했다. 그러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배가 결항할 만큼 바다가 거칠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어쩌면 배가 우리 모습을 보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린 절벽 위로 올라가, 아주 드물게 먼 해상을 가로지르는 배를 향해 외딴 섬에 유배된 남자들처럼 “어-이, 어-이” 소리를 질러보았다. 하지만 그 어느 배도 우리를 본체도 하지 않았으며, 우리가 있는 포구에 들어오는 배는 한척도 없었다. 우린 버림을 받은 것이다.
배를 탈 수 없게 되면 이젠 이곳에서 일박을 더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3박의 허가만 받았는데 4박을 해도 괜찮은가 하는 점인데 다른 방법이 없으니 머무르는 수밖에 없다.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정으로 우린 예상 밖의 4일째 밤을 카프소카리비아의 스키테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이곳은 결과적으로 말해 우리가 경험한 중에서 가장 험하고 가장 힘든 수도원이었다.
이와 같이 여행에서는 만사가 예정대로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린 낯선 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한 장소가 아닌 곳 ㅡ그게 바로 낯선 곳이다. 따라서 그곳에 있으면 만사가 우리 뜻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자면 만사가 술술 잘 풀리지 않는 게 여행인 것이다. 잘 풀리지 않기 때문에 우린 여러 가지 재미나는 일 ・ 아연실색할 일을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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