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도롬의 스키테까지] 하루키(村上春樹)의 그리스 기행문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그건 그렇고, 이 그란데 라브라는 이름에서 나타나듯 아토스반도 가운데 월등히 큰 수도원으로, 최대이며 최고의 수도원인 것이다. 따라서 설비는 크고 반듯하나 가정적인 맛에서는 많이 빠지는 듯 했다. 식당만 해도 지나치게 컸다. 그건 마치 긴자(銀座)의 라이언 비어홀 같았다. 수박 정도는 천천히 먹게 해 줘도 괜찮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이교도에게 수박을 그분 좋게 먹여줄 목적으로 수도원이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라고 O군이 말했다. 그도 그렇긴 하다.
또한 이 수도원에는 기념품 가게도 있다. 물론 무슨무슨 만두라던가 승려 인형과 같은 수도원 물품을 팔고 있는 건 아니고, 종교적인 제대로 된 것들을 팔고 있는데, 그렇긴 해도 기념품 가게인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제대로 전기가 들어와 있었다. 화장실에는 거울까지 붙어 있다. 지금까지의 수도원에는 거울이라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난 수도원에는 -외모에 일일이 신경 써서는 안 된다는 등의 이유로- 거울이 일체 놓여있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떡하니 걸려있다. 시험 삼아 들여다보니 볼이 훌쭉 패이고 수염이 자라 있었다. 아토스 반도는 휘트니스에는 안성맞춤인 토지인듯 싶다.
이곳에는 갖가지 유서 깊은 건물이나 보물이 있는 듯하다, 처음에 언급했듯 나는 그런 종류의 것에는 별로 흥미가 없고, 이곳 수도원은 내 취미로 볼 때 지나치게 컸다. 적당히 어슬렁 어슬렁 안마당을 산책하고, 프레스코화를 보는 정도로 끝. 그것으로 아토스반도에 체재할 수 있는 3박을 다 소비하고 말았다. 우리들의 심산으로는 반도의 남단을 빙 둘러볼 예정이었으나 비로 인해 예정이 몽땅 어그러져 버린 것이다. 여기서부터가 바야흐로 비경이라는데 아깝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찌되었거니 남단의 카프소카리비아의 스키테(작은 수도원)까지 가서, 그곳에서 배를 타고 다프니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일단 반도의 남단까지는 다다른 셈이 된다.
-이제 정식 수도원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 있는 건 더 작고 앙상한, 말하자면 수도원 현지 출장소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출장소는 몇 종류인가가 있어, 커다란 순으로 스키테, 케리온, 카리베, 카티스마, 헤시하스테리온이라 불린다. 수도원에는 각각 정원이 정해져 있어, 수가 정원을 넘으면 나머지 승려는 수도원을 나와 각각의 출장소로 돌리게 된다. 가장 큰 스키테는 수도원 규모를 작게 하여 약간 통일성을 줄인 듯 한 느낌인데, 맨 마지막의 헤시하스테리온쯤 되면 그건 마치 완전한 은둔자 오두막이다. 그들은 인가와 떨어진 황무지나 산중이나 동굴에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서 아무에게도 방해받는 일 없이 고독한 종교적 생활을 보내고 있다. 이른바 무투파(武鬪波)의 다이하드적 수도승이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이 그란데·라브라 끝의 반도 남단에 살고 있다. 그래서 나로서는 아토스에 온 이상 어떻게 해서라도 그 디이프 사우스(deep south) 까지는 가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 그란데·라브라 수도원을 출발했다. 고맙게도 하늘이 맑다. 구름 한점 없었다. 여기서부터 길은 점점, 그리고 이윽고 압도적으로 나빠진다. 길의 대부분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넓이밖에 없다. 그리고 군데군데 소멸되어 있다. 비가 내리면 개천으로 변해버릴 것 같은 그런 길이다. 키 큰 잡풀이 무성하여 일일이 손으로 헤치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도로표지는 빈약해지고, 몇 개의 발자국이 사람을 헤깔리게 만든다. 그래도, 적어도 이태리인 단체는 여기까지 오지 않는다.
[무라카미씨, 무척이나 이태리인에게 원한이 있는 것 같은데요] 라고 O군이 말했다.
그런 건 아니고, 애써 로마를 벗어났으니 이런데 까지 와서 이태리인과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논·네·베-로?(틀려?)
약 한시간만에 브로도롬의 스키테에 다다랐다. 해안에서 약간 내륙으로 들어간 곳에 있었다. 소수도원이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계속 온순해 보이는 개가 한 마리 따라 왔다. 부르면 도망치는데, 걸기 시작하면 다시 뒤를 따른다. 그 이외에는 아무하고도 만나지 않았다. 결국 이 개는 수도원 입구까지 따라왔다.
브로도롬의 스키테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문을 넘어 안마당으로 들어가 아르폰다이와 같은 곳으로 가서 큰소리로 불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적막하기만 하다. 마치 모두가 그 어떤 이유로 이 건물을 최근에 방치해버린 듯 했다. 청결하고, 손질이 잘 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람 그림자는 없다. 사람이 있는 낌새가 전혀 없었다. 어디선가 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것뿐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한동안 그곳에 앉아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렸다.
10분쯤 지났을까 날씬한 승려가 엷은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손에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그는 알아차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죄를 한다. 아침 여덟시 지나 이곳에 오는 순례자는 그다지 없는 모양이었다. 그가 예의 커피와 르크미와 우조를 가져왔다. 이렇게 말하면 좀 뭐한데 르크미의 맛은 카라카르 쪽이 좋았다.
승려의 이름은 크레만이라고 한다. 그는 루마니아사람으로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스키테는 그란데·라브라에 속하며(모든 스키테는 어딘가의 수도원에 속해있다), 1863년에 창설되었다는 것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15명의 수도승은 전원이 루마니아인 이란다. 그는 우리들을 스키테 부지 중앙에 있는 훌륭한 예배당으로 안내했다. 보통은 예배시에민 보여주는 건데, 크레만 신부는 친절한 성격인 듯, 우리를 위해 일부러 문을 열어주었다. 입구를 들어서자 바로 무수한 수난도가 눈에 띄었다. 과거에 종교적 수난을 당한 성인의 그림이 벽마다 천정마다 그려져있었다. 이건 후레스코화가 아니라 그저 그림물감으로 그려졌을 뿐이었다. 10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퇴색되고 금이 가 있었지만 충분히 선명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세계에는 실로 다양한 종류의 수난이 넘쳐있었구나 감탄하게 된다.
예를 들어 가마에서 삶아지는 성자가 있고, (이 사람은 약간 힘든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특별이 뜨거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한치씩 손이나 발을 도끼로 잘리고 있는 성자가 있고,(이 사람은 상당히 아파하고 있었다), 배 위에 달궈진 석탄을 올려 논 사람도 있고, (이 사람은 ‘이젠 아무래도 좋다’ 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겨드랑이 밑을 불로 지지는 사람도 있고(이 사람은 어쩐지 멍청한 얼굴로 참고 있다), 마차에 붙들어 매인 채 빙글빙글 돌리고 있으며 잔등을 너덜너덜 찢기는 사람도 있다.(무척 아픈 듯). 그리고 압권은 톱으로 가랑이를 찢는 그림이다. 거꾸로 매달려 톱으로 가랑이를 잘라내는 거다. 이건 농담 아닌데 하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것들을 보고 있으면 점점 마음이 어두워지기 마련인데,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편안한 천상의 그림이 펼쳐져있었다. 성인은 신의 부름을 받아 천국에서 쉬고 있고, 이교도는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한 고통을 받고 있다. 천사가 나팔을 불어대고, 성모는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다. 지옥도 천국도 약간은 과장되어 있고, 도식으로서도 단순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런 풍이 그리스 정교의 좋은 점이다. 제 맛이다. 가톨릭 사원에도 비슷한 설치가 있으나 이만큼 처참하지는 않았다. 베니스의 토르체로 섬에서 본 수난 그림 같은 건 이태리에서는 잔혹한 지옥도로서 유명한데, 이것에 비하면 준 천국처럼 보인다. 어찌되었거나 이러한 그림을 보고 있자니 나 따윈 아직 수난이 모자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예비평 같은 건 역시 수난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많이 상했지만 이곳 스키아는 가난해서 수복할 수도 없거든요‘ 라고 크레만 신부가 말했다.
예배당을 다 둘러보자 이 근처에 성인이 살았던 동굴이 있는데 보지 않겠느냐고 크레만 신부가 권한다. 아직 시간도 이르고 해서 그럼 좀 구경이나 하자고 했다. 우리들은 스키테 뒤쪽으로 나가 그리스도가 시련을 당한 듯한 돌맹이뿐인 거친 토지를 빠져 나와서 해안의 절벽에 다다랐다. 도중에 2,3명의 승려가 살고 있는 작은 오두막이 몇 개 있었다. 그 깎아지른듯한 절벽에는 작은 계단이 나 있었다. 도대체 몇 개단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매우 가파른 계단이었다.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천천히 내려가니 확실히 벽에 동굴이 나 있고 그 안에 오두막이 지어져 있었다. 오두막 안에는 빗자루와 목탁이 놓여있었다. 오두막 바닥이 기분 나쁘게 바다 쪽으로 기울어져있다. 절벽 위로부터의 고무호스가 유리창 밖에 매달려 있다. 아마도 그 호스로 스키테에서 물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호스가 없던 시절에는 아마도 양동이로 물을 길어 왔으리라. 끔찍한 생활이다.
오두막 뒤의 동굴 안쪽에 작고 조용한 예배소가 있었다. 제단이 있고, 짧아진 초가 촛대위에 줄지어 있었다.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바다로부터 바람이 휙휙 소리를 내면서 불 뿐이었다. 예배소 곁에 작은 구멍에는 오래된 해골이 4개 놓여 있었다. 몇백년 전의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매우 오래된것 같았다. 필경 이곳에 살면서 수행을 쌓다가 사망한 승려들의 것이리라 추측해 본다. 고마운 해골이겠으나, 한번 해골이 되어 버리면 외견적으로는 성인도 비성인도 구별이 되지 않는다. 소설가와 사진가와 편집자의 구별도 되지 않는다. 모두 똑같아 보인다. 그저 하얀 해골일 뿐이다.
프로도롬의 스키테로 돌아오자 승려 몇 명이 도서관의 오래된 책을 햇볕에 내놓고 벌레 먹은 데를 말리고 있었다. 묶은 끈이 풀려 해체된 책의 수리도 하고 있다. 모두들 매우 조용한 사람들이었다. 사진을 찍어도 괜찮은가 묻자 괜찮다고 한다. 아토스에서 승려 사진을 찍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데 (많은 승려들이 싫어하고, 화를 내는 사람도 개중에는 있어), 이곳 스키테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성격이 느긋해 보여 흔쾌히 찍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지닌 식료가 점점 적어지고 있어 뻔뻔스럽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크레만 신부에게 ‘괜찮으시다면 뭔가 먹을 것을 조금 나누어 주지 않겠습니까‘ 라고 물어봤다. 크레만신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취를 감추고, 한참 만에 식품을 듬뿍 담은 주머니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안에는 토마토와 치즈와 빵과 올리브 절임이 들어있었다. 가난한 스키테에서 이렇게 식품을 나눠 받는 건 송구스러웠으나, 이러한 친절은 고마웠고, 실제로 나중에 무척 도움이 되었다. 카라카르의 마슈라던가, 이곳 프로도롬의 크레만 신부라던가, 그들의 무상의 호의가 없었으면 우리들은 훨씬 힘든 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난 종교에 대한 건 잘 모르지만 친절이라는 것이라면 잘 안다. 사랑은 사라져도 친절은 남는다, 이 말을 한 건 카트·보네갓이었지.
우리들은 10시 45분에 이곳 브로드롬의 스키테에 작별을 고했다. 다음 목적지는 카프소카리비아의 스키테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린 돌아오는 배를 탄다. 만약 잘 풀리면... 인데.
하지만 물론 잘 풀릴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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