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寶第47號 : 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 - 민속문양 [民俗紋樣]
所在地 : 慶南河東郡花開面207雙磎寺
時 代 : 統一新羅
統一新羅後期の有名な僧侶、眞鑑禪師の塔碑.
眞鑑禪師(774∼850)は佛敎音樂である梵唄を導入し広く大衆化させた人物で,
哀莊王5年(804)に唐国へ留學し僧侶になる。興德王5年(830)歸國し、優れた道德や
法力を以て当時の王より重宝がれた。77歲でこの雙磎寺にて入寂.
碑の身石が若干損傷されたが, 下部の龜支石と上部の頭石はきちんと備えている.
統一新羅後期の塔碑樣式に従い龜支石は頭を竜頭で仕立てられ, 背は6角模様に
埋められている。背の中央には碑の身石を挟むために作られた大きな碑座があり,
横4面には雲模様が施されている.
直四角形の身石は所々が割れているなど少からず損傷された狀態
頭石には宝玉を以て争う龍の姿が力強く表現されており, 天辺に
突き出た蓮模様の形に宝玉の頭裝飾が載せられおり、前面中央に
‘海東故眞鑑禪師碑’と碑名が刻まれている.
この碑は眞聖女王元年(887)に建てられたもので, 彼が宗旨を修めていた玉泉寺を
‘雙磎寺’と名変えした後で建てたといわれる.
當時の代表的文人、崔致遠が碑文を作ったことで有名だが, 特に筆の自然な流れを
活かして書いた生動感あふれる優れた文字はあらためて崔致遠の名聲を頷けさせる.
ほとんど全貌は保っているが塔全體が罅割れている故、今後とも大切に保存すべきものと
思われる貴重な遺物である.
국보제47호: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
소재지 : 경남 하동군 화개면 207 쌍계사
시 대 : 통일신라
통일신라 후기의 유명한 승려인 진감선사의 탑비이다. 진감선사(774∼850)는 불교 음악인 범패를 도입하여 널리 대중화시킨 인물로, 애장왕 5년(804)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흥덕왕 5년(830)에 귀국하여 높은 도덕과 법력으로 당시 왕들의 우러름을 받다가 77세의 나이로 이 곳 쌍계사에서 입적하였다. 비는 몸돌에 손상을 입긴 하였으나, 아래로는 거북받침돌을, 위로는 머릿돌을 고루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통일신라 후기의 탑비양식에 따라 거북받침돌은 머리가 용머리로 꾸며져 있으며, 등에는 6각의 무늬가 가득 채워져 있다. 등 중앙에는 비몸돌을 끼우도록 만든 비좌(碑座)가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옆의 4면마다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직사각형의 몸돌은 여러 군데가 갈라져 있는 등 많이 손상된 상태이다. 머릿돌에는 구슬을 두고 다투는 용의 모습이 힘차게 표현되어 있고, 앞면 중앙에는 ‘해동고진감선사비’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다. 꼭대기에는 솟은 연꽃무늬위로 구슬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진성여왕 원년(887)에 세워진 것으로, 그가 도를 닦던 옥천사를 ‘쌍계사’로 이름을 고친 후에 이 비를 세웠다 한다. 당시의 대표적인 문인이었던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붓의 자연스런 흐름을 살려 생동감 있게 표현한 글씨는 최치원의 명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할 만큼 뛰어나다. 거의 온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나, 탑 전체가 많이 갈라지고 깨어져 있어 소중히 보존해야함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귀중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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