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寶46號: 浮石寺祖師堂壁畵 부석사 조사당 벽화   -   민속문양 [民俗紋樣]

國寶46號:  浮石寺祖師堂壁畵
所在地: 慶北榮州市浮石面 浮石寺
時 代: 高麗後期 
                         



この壁畵は浮石寺を創建し, 最初にわが国で華嚴宗を開いた義湘大師を奉っている
浮石寺祖師堂(國寶第19號)の内部壁面に四天王と帝釋天, 梵天を6幅に分て描いた
ものである. 今は壁面を取り外し硝子の箱にいれて無量壽殿に保管している.

土壁の上を緑色で塗り潰し、紅色白色金色等で彩色されている。各各の大きさは
縦205センチ、幅75センチぐらい. 両方の二つの菩薩は豊滿で優雅な貴婦人姿を成し,
真ん中の四天王は惡鬼を踏んだまま恐ろしい目付きをした健壯な姿をしている.
毁損された部分が多く、後代の上塗りで原來の姿が大分消えてしまったが、律動感溢れる
流麗な線を見ても高麗時代の佛畵の品格を感じることができる.

建物から發見された記錄に因り祖師堂を建てた年代が高麗禑王3年(1377)であることが
わかり, 壁畵を描いた年代もほぼ同じ時期であると推測される.
現在わが国に残っている壁畵中最も古い作品として繪畵史的に貴重な作品と評價されている.
 
<補充說明>
高麗時代)の繪畵は保存されている遺蹟がごく稀で、その樣相を正確に判斷するのは難しい.
浮石寺の祖師堂壁畵六面は、この建物の內陳壁面に描かれた建築當初の作品と確認され、
現在この壁面全體をそのまま剥がして安全裝置を施し浮石寺無量壽殿の中に保管している.

祖師堂建物創建年代は、この建物を重修する際發見した墨書銘文に因り西紀1377年で
あることが明らかになり、この壁畵の製作年代もこれで確認することができた.

現在國內に遺存する高麗時代の壁畵は、この祖師堂壁畵を始め、禮山修德寺大雄殿壁畵
(1308年建立)、開城水落巖洞古墳壁畵、長湍法堂坊古墳壁畵、開풍郡恭愍王陵壁畵などが
あるが、繪畵的格調や保存狀態に鑑み、この祖師堂壁畵が遺存の高麗時代の壁畵を
代表するものと言えよう.

この祖師堂壁畵は天王像各1面と菩薩像2面から成っているが、その內容を祖師堂內陣の
原位置順に列擧すると、次のようになる。
(1) 菩薩像(佛名未詳) (2) 多聞天王像 (3)廣目天王像 
(4)  增長天王像   (5) 持國天王像 (6) 菩薩像(佛名未詳)

この壁畵は土壁の上にプレスコで描いたもので、背景は深綠色系で塗り潰した後で、
紅、·紫、綠、白、茶、金彩などで像容を濃彩している.

四天王像の像容は、特に力強い運動感を現わした動的線で輪廓を描き、そのなかに
設彩することで全般的印象をすごく力強い律動感に溢れさせた.
兩菩薩像は、菩薩像が保つ靜溢感を生かせて、靜的でありながら流麗な線をうまく驅使し
高麗朝の藝術が保っている美しい線の品格を上手に生かした良い例と見なす.

當時の建築が荒廢していた為か雨漏で汚染された部分が残っており、尚、後世の
墨書や落書などで畵面が奢れているばかりでなく、近來の彩色が發見當時より若干
退色されている傾向に見え気掛かりだ
 
국보46호:  부석사 조사당 벽화(浮石寺 祖師堂 壁畵)
소재지: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9 부석사
시 대: 고려시대 후기

이 벽화는 부석사를 창건하고 우리나라에서 화엄종을 처음 시작한 의상대사를 모시고 있는 부석사조사당(국보 제19호) 안쪽 벽면에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을 6폭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지금은 벽면 전체를 그대로 떼어 유리상자에 담아 무량수전에 보관하고 있다.

흙벽 위에 녹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붉은색·백색·금색 등으로 채색하였으며, 각각의 크기는 길이 205㎝, 폭 75㎝ 가량이다. 양쪽의 두 보살은 풍만하고 우아한 귀부인의 모습이며, 가운데 사천왕은 악귀를 밟고 서서 무섭게 노려 보는 건장한 모습이다. 훼손된 부분이 많고 후대에 덧칠하여 원래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율동감 넘치는 유려한 선에서 고려시대 불화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건물에서 발견된 기록을 통해 조사당을 세운 연대가 고려 우왕 3년(1377)임을 알게 되었으며, 벽화를 그린 연대도 같은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보충설명
고려시대(高麗時代)의 회화(繪畵)는 보존된 유적(遺蹟)이 매우 희귀해서 그 양상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힘든다. 부석사(浮石寺)의 조사당벽화6면(祖師堂壁畵六面)은 이 건물(建物) 내진(內陳) 벽면(壁面)에 그렸던 건축당초(建築當初)의 작품으로서 확인되어 현재 이 벽면 전체를 그대로 떼어내어 안전장치를 한 후에 부석사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 안에 보관하고 있다.

조사당건물창건연대(祖師堂建物創建年代)는 이 건물을 중수(重修)할 때 발견한 묵서명문(墨書銘文)에 따라서 서기 1377년으로 밝혀졌으므로 이 벽화의 제작연대(製作年代)도 이로써 확인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국내에 유존(遺存)된 고려시대(高麗時代)의 벽화는 이 조사당벽화(祖師堂壁畵)를 비롯해서 예산수덕사대웅전벽화(禮山修德寺大雄殿壁畵)(1308년 건립(建立)) 개성수락암동고분벽화(開城水落巖洞古墳壁畵) 장단법당방고분벽화(長湍法堂坊古墳壁畵) 개풍군공민왕릉벽화(開풍郡恭愍王陵壁畵) 등의 유례(遺例)가 있으나 회화적(繪畵的)인 격조(格調)로 보나 그 보존상태(保存狀態)로 보나 유존(遺存)된 고려시대의 벽화를 대표하는 것은 이 조사당벽화(祖師堂壁畵)이다.

이 조사당벽화(祖師堂壁畵)는 천왕상(天王像) 각 1면(面)과 보살상(菩薩像) 2면(面)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 그 내용을 조사당내진(祖師堂內陣) 원위치(原位置)의 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보살상(菩薩像)(불명미상(佛名未詳))(2) 다문천왕상(多聞天王像)(3) 광목천왕상(廣目天王像)(4) 증장천왕상(增長天王像)(5) 지국천왕상(持國天王像)(6) 보살상(菩薩像)(불명미상(佛名未詳))

이들 벽화(壁畵)는 토벽(土壁) 위에 프레스코로 그린 것이며 배경을 심록색계(深綠色系)로써 메꾼 뒤 홍(紅)·자(자)·녹(綠)·백(白)·다(茶)·금채(金彩) 등으로 상용(像容)을 농채(濃彩)한 것이다.

사천왕상(四天王像)들의 상용(像容)은 특히 힘찬 운동감을 나타낸 동적인 선으로 윤곽(輪廓)을 그렸고 그 안에 설채(設彩)를 해서 전반적인 인상은 매우 힘있는 율동감이 넘쳐 있다고 할 수 있다. 양보살상(兩菩薩像)은 보살상(菩薩像)이 지니는 정일감(靜溢感)을 잘 살려서 정적(靜的)이고도 유려(流麗)한 선(線)을 잘 구사(驅使)해서 고려조(高麗朝) 예술(藝術)이 지니는 아름다운 선의 성격을 잘 보여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원래의 건축(建築)이 황폐(荒廢)되었을 당시 우루(雨漏)로 오염(汚染)된 부분이 남아 있고 또 후세의 묵서(墨書) 낙서 등도 화면을 더럽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래 그 채색(彩色)이 발견 당시보다 약간 퇴색되어 가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