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住寺郎慧和尙白月葆光塔碑 : 國寶第8號   -   민속문양 [民俗紋樣]

    


國寶第8號   聖住寺郎慧和尙白月葆光塔碑
所在地  : 忠南保寧市ソンジュ里80-2
時 代  : 統一新羅 眞聖女王

この石碑は、新羅憲德王時代、唐國より修學を終えてもどってきた郎慧和尙
無染(801∼888)のために建てた塔碑で、龜跌の上に碑身を立て、螭首を載せた
一般形石碑である.
全體の高さ4.55m, 碑身の高さ2.52m, 幅1.5mからなる、新羅時代の碑石では
最大のもので, うつくしい彫刻は、新羅時代石碑の傑作として数えられる.
特に、碑座の雲紋や螭首の蓮華紋, 龍紋などは當時の彫刻の極致と言えよう.
崔致遠の四山碑の中の一つで、碑文は崔致遠が作り、書は崔仁滾が書いている。
碑を建てた年代は、新羅眞聖女王4年(890)と推定される.
龜趺が大部破損されたまま土に埋もれていたものを, 1974年、解體復元した.

------

국보 8호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郎慧和尙白月葆光塔碑)
소재지 :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80-2
시  대 : 통일신라 진성여왕

이 석비는 신라 헌덕왕(憲德王) 때 당나라에 수학하고 돌아온 낭혜화상(郎慧和尙)
무염(無染)(801∼888)을 위해 세워진 탑비로 귀부 위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螭首)를 얹은 일반형 석비이다.
전체높이 4.55m, 비신높이 2.52m, 너비 1.5m로 신라시대의 비석으로는 최대의 것이며,
아름다운 조각은 신라시대 석비의 걸작으로 꼽힌다. 특히 비좌의 운문(雲紋)과
이수의 연화문(蓮華紋), 용틀임 등은 당시 조각의 극치를 이룬 것이라 하겠다.
최치원(崔致遠) 사산비(四山碑) 가운데 하나로 비문은 최치원이 짓고 글씨는
최인곤(崔仁滾)이 썼으며. 비를 세운 연대(年代)는 신라 진성여왕 4년(890)으로
추정하고 있다.
귀부가 심히 파손된 채 흙에 묻혀 있던 것을 1974년에 해체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