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先弘慶寺事蹟碣碑 봉선홍경사사적갈비 : 國寶第7號   -   민속문양 [民俗紋樣]



國寶第7號 :  奉先弘慶寺事蹟碣碑  
所在地   忠南天安市成歡邑大弘里
時  代   高麗顯宗

奉先弘慶寺は高麗顯宗12年(1021年)に創建された寺である. 寺名の前につけた‘奉先’は、
佛敎の敎理を傳播するため寺を建て始めた高麗王安宗が,その完成を見届けれず死亡したので,
息子の顯宗が寺の完成後、父上の意思を受け繼ぐという志を含めて付けたと言われる.
現在、寺跡には寺の創建に關する記錄を綴った碣碑だけが殘っている.
碣碑とは、一般的な石碑より規模の小さいものを指し, 大槪、頭石又は屋根石を載せず、
碑身の角を丸く處理しているものだが, この碑は、石碑の型式と同じく龜形敷石と
頭石を備えている.

龜形敷石は、樣式に變化をあたえ龍の頭にし, 魚鰭のような羽を兩方に刻み入れて生動感を
强く表した. 碑身前面の上方に ‘奉先弘慶寺事碣碑’という碑の題目が刻まれている.
頭石には雲に包まれた龍が彫刻されているが、その姿がすごく圖式的だ.
この碑は、碑文の內容に鑑み、寺の完成後5年にあたる高麗顯宗17年(1026年)に建てられたと
推察される. 碑文は ‘海東孔子’と呼ばれた高麗時代最高の儒學者崔忠が作り, 字は白玄禮が
楷書で書いている.

국보제7호: 봉선홍경사사적갈비
소재지   충남 천안시 성환읍 대홍리 320
시  대   고려 현종

봉선홍경사는 고려 현종 12년(1021)에 창건된 절이다.
절이름 앞의 ‘봉선(奉先)’은 불교의 교리를 전하고자 절을 짓기 시작한 고려 안종(安宗)이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목숨을 다하자, 아들인 현종(顯宗)이 절을 완성한 후 아버지의
뜻을 받든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현재 절터에는 절의 창건에 관한 기록을 담은 이 갈비(碣碑)만이 남아 있다.
갈비는 일반적인 석비보다 규모가 작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대개는 머릿돌이나 지붕돌을
따로 얹지 않고 비몸의 끝부분을 둥글게 처리하는데, 이 비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을
모두 갖추고 있어 석비의 형식과 다르지 않다.
거북모습의 받침돌은 양식상의 변화로 머리가 용의 머리로 바뀌었고, 물고기의 지느러미
같은 날개를 머리 양쪽에 새겨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비몸돌 앞면 윗쪽에는 ‘봉선홍경사갈기’라는 비의 제목이 해서로 가로로 새겨져 있다.
머릿돌에는 구름에 휩싸인 용을 새겼는데 그 모양이 자못 도식적이다.
이 비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절을 세운 지 5년이 지난 고려 현종 17년(1026)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문은 ‘해동공자’로 불리던 고려시대 최고의 유학자 최충이 짓고, 백현례가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