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모리에는 오늘도 눈이 내렸다..... - 기행문 [紀行文]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면, 몇해전에 딸아이와 가졌던 아오모리(靑森) 여행이 그리워집니다.
전에 어딘가에 올렸던 글인데, 내 홈에 다시 올려 간직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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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감기몸살로 컨디션이 엉망인 나를 보다못한 딸아이가 여행이나 가자고 꼬드긴다.
그럼 아오모리(靑森)에 온천여행이나 갈까? 나는 못이기는 체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다.
눈밖에 볼 것 없는 고장에 뭐하러 가느냐고, 아오모리는 이름 그대로 푸른 숲이 우거진 여름.가을이 제격이라고 안나니 친구가 찬물을 끼얹었지만, 난 그저 집을 떠나 맑은 공기 아래서 온천이나 실컷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오모리공항은 생각보다 협소했다. 일본 공항은 여전히 한국인에게 인색했다.
입국심사창구 3개 가운데 두 개가 내국인용이고 겨우 한 개가 외국인용이란 무슨 경우인가!
저희는 금방금방 빠져나가는데 끝도 한도 없이 줄서 있으려니 슬그머니 부아가 났다.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오니 눈발이 흩날린다.
본토의 끄트머리인 아오모리, 일명 미치노쿠(陸奧)라고도 하는 이 지방은 일기변화가 심해
맑게 개었다싶으면 가랑눈이 내리고, 그것이 눈보라로 바뀌어 모자를 뒤집어쓰면 금새
해가 나곤 했다.
며칠동안 무섭게 눈이 내려 핫코다산(八甲田山)행 로프웨이가 운행중단이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네부타 마을' 로 이동. 그러나 자연공원으로 여름에는 드넓은 잔디밭에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이곳도 온통 흰눈뿐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
자료관에서의 쇼는 큰북과 샤미센 연주가 고작이었다. 저희도 미안했던지 8월의 마츠리때 쓰는
다시(山車)라는 요란한 장식의 큰 수레를 끌어보라고 해서, 앞뒤로 나뉘어 한 5미터쯤인가
앞으로 끌었다 제자리로 돌아오니 끝이란다. 너무 기가 막혀 말이 다 안나온다.
선반에 진열해 놓은 전통 공예품들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왔다.
입구의 쯔가루 초가집에서, 옛날 목욕탕의 대나무 물바가지 같은 그릇에 담아주는 우동을
뜨거운 다시 국물에 담가 먹었는데, 국숫발은 쫄깃하고 맛있었지만
반찬 없이 그것만은 도저히 다 먹을 수 없었다.
토와다코(十和田湖)는 계절탓인가 그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그리던 상상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풍경이 나를 실망시킨다.
유람선을 탔다. 선실 안에 춥다고 피워 논 석유난로 땜에 골치가 아파 밖으로 나갔더니
예상외로 바람이 기분좋게 얼굴에 와 닿는다.
여름엔 짙푸를 삼나무, 노송나무 숲이 하얗게 흰눈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물새가 기슭에서
노닐고 있었다.
밤에 '카마쿠라(窯倉)마츠리'를 보러갔다. 넓은 공터 곳곳에 눈으로 조각품을 만들어 놓고,
눈을 다져 만든 이글루 비슷한 둥근 집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이 카마쿠라 안에 켜 놓은 촛불이 행사장의 분위기를 포근하게 감싼다.
정월대보름날 가족이 그 속에 둘러앉아 떡도 구워먹으면서 달구경을 한다는데,
눈이 하도 많이 오니까 눈을 치우는 한 방편으로 옛날 사람들이 고안해 낸 삶의 지혜이리라.
조그맣게 만들어 촛불을 하나씩 켜 놓은 건 앙증맞고 귀여웠다.
행사장 주변에는 포장마차가 들어서서 감주니 꼬치 따위를 팔고 있었다.
이윽고 보름달이 뜬 노천무대에서 전통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하여 인파 속으로 파고들었다.
템포가 점점 빨라지자 모두 흥이 나서 환호성을 올렸지만 난 그저 벌벌 떨리기만 한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라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피날레의 불꽃이 올랐다.
보름달을 향해 무수히 쏴 올리는 불꽃, 그것들이 밤하늘에 퍼졌다가 내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려온다.
이렇게 가까이서 불꽃을 보는 건 생전 처음이었다. 추위가 싹 달아날 정도로 황홀했다.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온천장으로.
노천온천은 새벽에 하기로 하고,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니 하루동안 못마땅했던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불꽃놀이만 눈앞에서 뱅뱅돈다.
딸아이와 로비에서 맥주를 앞에 놓고 기분을 내 본다. 꿈만 같다. 호텔 앞으로 흐르는 오이라세
계류의 물소리가 들릴듯말듯, 호텔 불빛을 받은 창밖의 눈꽃들은 우리를 서정적으로 만든다.
400년 전통의 야치(谷地)온천장은 너무 허름하고 누추해서 아무리 온천수가 좋다고 해도
영 찝찝하다. 오래 된 것을 그대로 보존하는 건 좋지만 눈으로 보기만 하는 건물도 아니고
매일매일 사용하는 곳이니 좀 더 연구를 해볼만도 한데, 좁고 지저분한 나무 복도에
어두컴컴한 욕실, 낡아빠진 유리문과 들창...
그래도 현대식으로 물비누와 샴푸는 비치해놓고 있었다.
우린 철철 넘고 있는 젖빛 유황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았다.
아오모리 시내는 일본의 여느 소도시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역 앞으로 곧장 뚫린 대로가 메인 스트리트, 백화점이니 상점, 술집 식당등이 양편에
늘어서 있었다.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는 100엔샵에 들어가 보았다.
오밀조밀 꾸며놓은 곳에서 아리다야키(有田燒き) 찻잔을 발견하고 500엔에 다섯 개를 샀다.
횡재한 느낌이 든다. 딸아이가 고른 조그만 코끼리인형은 자세히 보니 중국산이었다.
그런데 호텔 주변을 아무리 헤매도 문을 연 집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샐러리맨을 위한 모닝서비스 커피숍도 없는 시골 동네라고 투덜대면서 돌아서는데,
'엄마, 오늘 일요일 아냐?' 어쩐지 큰길에 가방든 남녀노소가 붐빌 시간인데도 썰렁해서
이상하다싶었지.
다행이 편의점이 눈에 띠어 커피팩과 쥬스, 빵 그리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사 가지고
호텔로 돌아와 룸서비스 받는 기분(?)을 냈다.
주위사람들 말대로 겨울의 아오모리에는 눈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린 목적달성을 했다.
아침저녁으로 온천을 하며 재충전했고, 스카이라운지에서 맥주를 마시며
멀리 보이는 불빛 찬란한 스키장과 눈 아래 깔린 아오모리시의 야경을 즐길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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