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토(能登)반도, 카나자와(金澤)의 추억 -속- - 기행문 [紀行文]
뜨끈한 목욕을 한 뒤 푹 자고 났더니 날아갈 듯 개운하다.
일본에 오면 그들의 정갈함에 난 언제나 탄복한다.
와지마는 저희들 자신이 시베리아라고 할만큼 후미진 곳인데도,
그리고 일류 여관도 아닌데도, 핑크 무드 공동 욕실엔 샴푸와 크림바스가 있었고,
청결한 화장실 창가에는 동백꽃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푸짐했던 어제 저녁밥상! 생선회에 새우 게 굴을 넣은 즉석 모듬냄비에
갖가지 튀김에 연어구이에 토란과 어묵조림에....
아무튼 먹을 것 첨 본 사람처럼 허겁지겁 다 먹고 겁이나 소화제까지 먹고 잤으니.
오늘은 혼자서 죠몽마와키(繩文眞脇)라는 온천공원을 기차를 갈아타면서 찾아가야 한다.
일본 곳곳에 '쿠아하우스' 라는 온천 휴양지를 만들어 놓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걸 NHK로
본 일이 있는데, 바로 이곳이 노토의 대표적인 휴양 온천이라는 것이다.
고대 일본인들의 유물이 다수 발굴된 유적지라고 하여 구미가 당겼다.
나는 작은 헝겊 색에 목욕용품과 화장품 지갑 우산 등을 집어넣어 둘러메고는 여관을 나섰다.
할머니가 팜플렛을 건네면서 다이죠부(大丈夫)? 걱정스런 얼굴이다. 나도 다이죠부, 라고
대답하면서,
괜찮다는 말이 왜 대장부냐고 묻던 딸아이 생각이 나서 피식 웃었다.
역으로 향하는 길에 아침시장(朝市)이 서 있었다.
인근 농사꾼 아낙들이 신선한 야채를 벌려 놓고 앉아 있고, 천막 속 좌판에는 해산물 말린 것 젓갈류
된장 장아찌 등을 늘어놓고 독특한 소리로 호객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를 가지고 팜플렛에 관광 상품이라고 커다랗게 선전하는 그네들 상술이 놀랍기만 하다.
하긴 전복을 윤기 나게 조린 것이나 굵직한 어란 말린것등은 구매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지만
눈이 나오도록 비쌌다.
조그마한 시골역은 한산했다. 나는 무작정 역무원이 앉아 있는 유리문을 열고
할머니가 주신 팜플렛을 내민 뒤 이곳을 가려는데 도와 달라고 했다.
털털하게 생긴 중년 역무원은 웃으면서 종이에 왕복 시간표와 갈아타는 역 이름을 써 주고,
자동판매기에서 대신 표까지 끊어다 준다.
일본인들의 친절을 안팎이 다른 간교함에서 오는거라고 부정적인 눈으로 흔히들 보지만,
난 그들의 몸에 밴 친절이 고맙고 다행스럽기만 했다.
와지마에서 아나미즈(穴水)까지 차량 두개가 연결된 완행열차를 이용했다.
기가 막혀, 왼 꼬부랑 할머니 부대! 아침부터 어디를 가는지 파파할머니들이 차안에 그득하다.
산허리를 끼고 단선 철길을 달리다 굴을 빠져 나오면 손바닥만한 역이 나오고,
어김없이 노친네들이 오르내린다. 바깥 경치야 우리 시골과 다를 바 없으니 볼 것도 없고
할수없이 그들의 쭈그러진 얼굴을 바라보면서 기나긴 그들의 삶을 상상한다.
아나미즈에서 마와키 쪽으로 가는 기차는 한시간 10분 후에나 있다고 해서 표를 보여주고 역 밖으로 나왔다.
조그만 항구도시인 듯, 역 앞 광장엔 이른 봄볕이 내려쬘 뿐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옆길로 접어들자 멋스런 나무 도어 위에 커피숍 간판이 보였다.
문을 열자 싱그러운 커피향과 함께 60년대 팝송이 은은히 흘러나온다.
창가 구석자리에 앉아 커피와 치즈케이크를 주문했다.
마담이 그 자리에서 커피콩을 갈아 사이폰으로 끓여다 준 커피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맛이다.
오랜만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느끼는 이 신선함과 편안함! 혼자 떠나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량 하나의 마와키행 기차는 절반이나 비어 있었다.
난 행여 내릴 역을 놓칠세라 눈과 귀를 모두 열어놓고 정신집중을 했다.
마와키에서 내린 사람은 나하고 60대 배낭차림의 교수타입 남성뿐이였다.
맞은편 산허리에 팜플렛에 있는 건물이 보이고 그곳까지 큰길이 뚫려 있는데 빤히 보이면서도 은근히 멀다.
부지런히 걸으며 그 노신사는 죠몽문화를 연구하는 고고학자일까?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공원입구 까지 와서 굽으러진 계단을 오르며 돌아보았더니 열심히 걸어오고 있는 노교수님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그의 가벼운 목례에 나도 얼른 고개를 숙였지만, 나의 경망스러운 행동이 한심했다.
야트막한 야산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모양인데
아직 박물관도 호텔도 공사 중이었고 온천만 개관된 상태였다. 죠몽(繩文) 토기를 보지 못해 실망이 크다.
하릴없이 공원을 산책한 후 온천으로 들어갔다.
나무 결을 그대로 살린 롯지풍의 건물에서 나무냄새가 솔솔 난다.
김이 뽀얗게 서린 욕탕 안은 널찍하고 깨끗했다.
바로 유리문 밖이 노천 온천이었지만 밝은 대낮에 어떻게 혼자 들어가 앉아있겠는가.
한 면이 온통 유리로 되어있는 밖을 향해 서서
툭 트인 시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경에 입을 벌이고 마냥 바라보았다.
여관 할머니의 손을 잡고 꼭 다시 온다고, 건강하시라고 말하면서 왠지
친정어머니와 헤어지는 듯 가슴이 절여든다.
인생살이에서 만남과 헤어짐은 늘 따라 다니는 것, 마음속에 조그마한 할머니의 모습도 묻어 두자.
그리고 가끔씩 친정 어머니와 오버랩 시켜 보는 것도 좋겠지.
내가 다리를 다 건널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배웅하는 할머니는, 정말 어린애처럼 쪼끄맸다.
와지마에서 가나자와까지 꼭 두시간이 걸렸다. 예약해 둔 여관에 짐을 풀고 켄로쿠엔(兼六園)으로.
일본의 3대 정원의 하나라고 선전하는 정원은 국내외 관광객들로 바글거렸다.
한군데 잠시 서 있으면 깃대든 가이드의 설명을 세 번 이상 들을 수 있다.
나는 굽으러진 노송 밑에 앉아 홍매 백매가 만개한 매화동산을 바라보면서 가이드북에 실렸던
눈 덮인 켄로쿠엔을 문뜩 떠올린다.
어느 일본작가의 세이손가쿠(成巽閣) 예찬론이 생각나 500엔을 내고 들어갔다.
대표적인 바쿠마쯔 부케야시키(幕末武家屋敷)식 건축물이라는데, 전체적으로 어둡고,
이렇다 할 가구나 장식품이 없으니 그저 썰렁하기만 하다.
소꿉처럼 조그맣게 만든 옛날 생활용품을 복도에 진열해 놓고 있었는데 그 정교함에 놀라면서
이어령교수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 생각났다.
코-림보(香林坊)의 번화한 거리는 여느 도시와 다름없이 젊은이들 세상이었다.
하지만 그 뒤안길에는 옛 성곽마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무라이들이 칼을 차고 걷는 한편에서
가마꾼이 어여쁜 여인을 태우고 헤이호 헤이호 앞 뒤 발맞춰 달렸겠지.
소란스러운 큰길과는 너무도 딴 세상 같은 고요함이 알지도 못하는 옛날 거리풍경까지 그려보게 만든다.
이른봄의 짧은 해는 어느덧 서쪽으로 많이 기울고 있었다.
해가 지고 낯선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집으로 돌아가는 거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긴 했어도 별 탈없이 혼자서 해냈다는 이 뿌듯함,
난 돌아가서 자신 있게 말하리라. 여행은 혼자 해야 제맛이 나는 거라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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