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여행 추억   -   기행문 [紀行文]

남편의 묵은 수첩에서 그의 회갑기념으로 함께 칸사이지방 여행을 갔던 메모를 발견했다.
15년이 흘렀지만 이런저런 일들이 아련히 눈앞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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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남편과의 첫 해외나들이고 또 첫번째 일본여행이었다.
주위에서 남편과 여행을 하면 싸움만 하다 돌아온다는 얘길 더러 들어왔기 때문에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남편의 거래처에서 호텔예약을 해 놓았다 했고, 오사카총영사관에 친지도 있으며
또 남편이 일본말을 잘 하니 아무 문제없으련만 그래도 막연한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다.

3월 중순경이었던 것 같다, 오랜동안 방문하고 싶었던 일본땅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은.
우린 나흘동안 머물면서 쿄토, 나라를 구경했는데, 우려했던 일이 하루에 두어번씩 일어나면서
난 남편 때문에 화가 났고, 남편은 화를 내는 나를 언짢아했다.

첫째날, 남편은 거래처에서 종일 일을 보아야했기 때문에 나혼자 친지의 안내로
오사카성을 구경하고, 신자이바시, 토톤보리 난바등을 둘러보았다.
저녁에 호텔로 돌아오니 거래처 직원들과 회식이 있어 늦을거라는 연락이 왔다.
예상했던 터라 화도 나지 않았다.
난 호텔레스토랑에서 혼자 저녁을 먹은 뒤 호텔 주변의 우메다 일대를 어슬렁거렸다.
그런데, 밤 열두시가 되어도 이 사람이 돌아오질 않는 것이다.
텔레비존을 켜고 잘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드라마도 보고, 스포츠뉴스시간에
생전 처음 벌거벗은 역사들의 한판승부, 스모라는 것도 보고, 노래도 들으면서 화를 삭히다가
기어이 폭발하려는 찰라, 그는 만취가 돼서 돌아왔다. 새벽 2시였다.

둘째날 교토에 갔을 때는 친지가 차를 내주어 편안하게 구경을 다닐 수 있었는데,
남편이 차에 오르기가 무섭게 기사에게, 볼만한 곳 골라서 안내해달라고 선수를 치는 바람에
내가 가보고싶었던 곳은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니조조(二條城)니 헤이안진구(平安神宮)니
킨가쿠지(金閣寺)와 같은 전혀 관심없는 관광코스를 돌게 되었다.
속이 상했지만 꾹 참고 따라다니다가 마지막에 기사에게 료안지(龍安寺)로 데려다달랬더니,
그게 또 못마땅했던지, 유명한 석정(石庭) 앞에서도, 팔짱을 끼고 선 채,
이까짓거 보러 자기 운전수 부리듯 했냐면서 빨리 나가자고 재촉을 해대는 것이었다.

교토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 나라(奈良)로 향할 때도 그랬다.
킨테츠(近鐵) 특급표를 사가지고 홈에 내려가니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꼭 우리나라 전철같은 것이 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여보, 어쩐지 이상하지 않아요?'
'이건 보통열차고 다음에 특급이 올거야'
'시간이 안 맞는데, 누구에게 물어봐요'
'좀 기다리라니까' 남편은 남에게 뭘 묻는걸 싫어했다.
마침 유니폼 차림의 중년남자가 지나가기에 벌떡 일어나 들고있던 티켓을 보여주자,
이곳은 JR역이고 킨테츠역은 반대편이라는 것이다.
그때 달음질하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에 식은땀이 흐른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간발의 차로 특급열차에 올라탔으니 말이다.

 

 나라에서는 운 좋게 다섯시간반짜리 tour-course에 자리를 얻을 수 있어 편안하게
호류지(法隆寺) 츄구지(中宮寺) 지코인(慈光院) 야쿠지지(藥師寺) 토쇼다이지(唐招提寺) 등을
관람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점심 후 아이스크림도 사다 주고,
기념품 고르는데도 암말않고 곁에 서있어주는게 신기했다.

헌데 짜증나는 일은 저녁에 오사카로 돌아올 때 기어이 일어났다.
지하철에서 자동판매기로 표를 사야하는데, 한번도 해 본적이 없어 난감한지
멍청히 서있으면서도 영 누구에게 물어보려는 기색이 없다.
답답해서 쿡 찌르니까 오히려 짜증을 낸다. 그럼 어쩌자는 건가. 할 수 없이 내가
젊은 청년에게 떠듬떠듬 부탁하여 표를 샀더니, 다행스런 표정이라도 지으면 좋으련만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표 한 장을 낚아채는 것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날, 오전에 친지들 작은 선물이라도 사려고 한큐(阪急)백화점엘 갔다.
호텔에서 기다리라는 데도 굳이 따라와서는 옆에서 잔소리를 퍼붓고,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빨리 하라고 재촉하는 통에 도무지 물건을 고를 수가 없다.
정말 이대로 하루만 더 있으면 돌아버릴 것 같았다.
결국 호텔로 돌아와서 친지가 보내준다는 차를 한시간 동안이나 멍청하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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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이켜 보면, 여행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었기에 그런 자질구레한 일이 모두 귀찮기만 했던 모양이다.
5년 후 내 환갑 기념 미국여행을 함께 했으니, 남편과의 해외여행은 딱 두 번으로 끝나고 말았다.